기사입력시간 25.08.01 07:28최종 업데이트 25.08.0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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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제 도입, 한국 의료 시스템 지각변동 예상…지불제도·의사 수급추계에도 영향

기존 행위별 수가제서 성과연동제지불제·가치기반지불제 등 혼합 지불 형태 전환 예상

의료계, 수가 개선·보상체계 구축 등 제도 개혁 선행 없으면 만관제 실패 반복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공악했던 '전국민 주치의제'가 도입될 경우, 이를 기반으로 현행 의료 시스템의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향후 주치의제도 도입이 지불제도 변화부터 의사 수급 추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의료계가 아직 주치의제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다는 점은 향후 제도 정착 과정에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맞춤형 전국민 주치의 제도 도입은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이후 빠르게 드라이브가 걸린 상태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주치의 중심 맞춤형 1차 의료체계 구축 ▲주치의제 운영 및 방문·재택 진료 보상체계 강화 ▲노인·소아질환 중심 단계별 주치의 등록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전국 30개 의료기관을 사업지로 선정해 다음 해부터 주치의제 시범 운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주치의제 기반으로 행위별 수가제→성과연동제지불제·가치기반지불제 변화

1일 의료계와 학계 등에 따르면, 정부 주도 주치의 중심 1차 의료체계 개편에 따라 기존 '행위별 수가제'가 '혼합형 지불' 형태로 전환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학계 복수 관계자들은 주치의제 도입과 함께 의료 행위가 많아야 의료기관 수익이 증가하는 기존 행위별 수가제를 대체할 지불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실제로 주치의제 도입에 적극 찬성하고 있는 대한가정의학회는 주치의제 성공을 위해 ▲다학제적 진료(팀 기반 단독 및 공동 개원, 포괄 서비스) ▲혼합형 지불(행위별 수가제, 성과연동제지불제, 가치기반지불제)을 주장하고 있다. 

가정의학회 강재헌 이사장은 지난 4월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세계적인 일차의료 트렌드는 다학제 그룹 개원을 강조하는 추세다. 다학제적 진료가 환자 만족도와 보건의료 접근성을 제고하기 때문이다. 특히 지불체계 개혁도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인하대병원 임준 예방관리과 교수가 한국형 주치의 사업을 골자로 제안한 '포괄적 일차의료 모형안'을 살펴보면 상담과 포괄평가, 케어플랜, 환자모니터링, 중간점검과 평가 등은 행위별수가로 적용되고 성과연동보상을 위해 지표 달성 정도에 따라 인센티브 보상도 병행된다. 

서울의대 한 교수는 "주치의제 도입으로 인해 정부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지불제도 변화도 한 몫할 것으로 예상된다"라며 "의료 과다 이용이 만연한 상황에서 주치의가 이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충청남도에서 의료 취약지 174개 마을 대상으로 '우리마을 주치의제' 사업을 맡아 시행한 경험이 있는 충남의대 이석구 예방의학과 교수는 "의사 혼자 주치의로 모든 환자들을 다 담당하기 어렵다. 결국 의사가 큰 틀에서  영양사, 간호사, 상담가, 물리치료사, 언어치료사 등과 다학제팀으로 움직이는 프로세스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다학제 진료가 가능하려면 지불 방식도 변화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행위별 수가제) 구조론 서로 경쟁만 부추기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성과 기반 보상 이뤄지려면 주치의제 통한 지속적인 관리 전제돼야

서울의대 이혜진 가정의학교실 교수가 최근 대한가정의학회지(KJFP)를 통해 발표한 '일차의료에서 혼합수가 중심의 지불제도의 변화' 논문을 보면 주치의제에 따른 지불제도 변화 양상은 명확하다. 연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일차의료에서 다양한 지불방법을 혼합하는 것을 권유하고 있다"며 주치의제 도입을 통한 혼합형 지불제 변화를 주장하고 있다.  

주치의가 다른 의료전문가 뿐 아니라 돌봄 분야 전문가와 협업해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데, 다학제 팀 구성에 따른 환자 교육, 영양·운동 상담 등 연계에 있어 행위별 수가제가 걸림돌이 된다는 취지다. 

이런 이유로 영국은 일차의료 의사들의 수입을 행위별 수가제에서 15%로 제한하고 인두제에서 60%, 성과 보상제에서 10%, 나머지 기타 수입으로 구성하고 있다. 미국은 인두제, 행위별 수가제, 행정비용에 대한 보상, 사보험과의 협상에 따른 금액 등을 보상 받으며, 일차의료기관 수입의 66%만이 행위별 수가제에 따른 것이다. 

이혜진 교수는 "미국은 의료체계 조정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불체계 변화를 유도했는데 묶음수가가 그 방법으로 대두됐다. 미국 환자중심의료기관(PCMH)은 행위별 수가제를 벗어나 여러 지불제도를 섞어 사용하는데 성과기반 보상 인당 월정액 보상, 의료비 절감에 대한 보상 등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의 일차의료 지불제도를 개혁하기 어려운 이유는 주치의의 부재다. 주치의는 최초접촉, 지속성, 포괄성, 조정기능을 이용해 효율적인 의료체계를 유지하도록 한다. 우리나라는 주치의제가 없이 환자들이 매번 본인이 의료기관을 선택해 이용하고 의료 제공자들도 방문하지 않는 환자에 대한 관리를 수행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인두제가 이뤄지려면 환자 등록이 필요하며, 성과기반 보상이 이뤄지려면 어느 정도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국내 일차의료 지불제도 변화는 주치의제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주치의제 도입으로 전체 외래 수요 50% 커버 가능?

주치의제 도입이 의사 수 확보와 연관된다는 주장도 있다.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가 2020년 발표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는 주치의제 도입이 의사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주치의제 도입으로 인해 2030년 면허 취득자부터 30% 정도가 주치의 역할을 한다고 가정할 때, 그렇지 않을 경우와 대비해 2035년 1만800여명의 의사 부족 분이 3000여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는 30% 가량의 주치의가 전체 외래 수요의 50%(입원 수요 0%)를 커버하기 때문이다. 

해당 보고서는 보건복지부가 2024년 의과대학 정원 증원 정책을 추진하며 근거로 제시한 연구다. 같은 맥락에서 만약 주치의제 도입에 따라 노인·만성질환 환자 외래 수요를 큰 의사 수 증원 없이 주치의가 커버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될 경우, 해당 통계가 2027년 의대 정원 규모 결정에 영향을 줄 여지도 충분하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는 8월 이후 출범하고 추계 결과를 토대로 내년 4월까지 2027학년도 의대 정원 규모를 결정할 예정이다.  
 
서울의대 홍윤철 교수가 2020년 발표한 '의사인력 적정성 연구'에 따르면 주치의제 도입이 의사 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보고서에 담겨 있다. 사진=서울의대 교수비대위, 홍윤철 교수 연구 재가공. 


의사·환자 만족도 괜찮을까…의료계 반대 여론 적지 않아

반면 의료계가 주치의제에 대한 반대 여론을 거세게 표출하고 있다는 점은 향후 제도 도입의 변수다. 

실제로 주치의제와 취지와 성격이 비슷한 만성질환관리 사업(만관제)은 2019년부터 109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거쳐 지난해 9월 본사업으로 전환됐지만 평가가 좋지 않다. 환자 본인부담금 증가와 검진 바우처 지급 중단, 의료진 유인 동기 부족 등으로 의사, 환자 모두에게 참여율이 저조한 것이다.  

대한의사협회 만성질환관리중앙운영위 백재욱 간사(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주치의라는 단어를 쓰면 대중들은 '대통령 주치의'를 떠올린다. 이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할 때 주치의를 만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실은 환자 선택권을 제한하자는 뜻과 다르지 않다. 이는 대중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백 간사는 "고혈압이나 퇴행성 관절염 등 만성질환에만 국한된 주치의제라면 도입이 가능하겠지만 환자들의 진료 선택권을 제한하는 제도라면 의사도, 환자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만관제도 비슷한 이유로 외면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내과의사회 김태빈 부회장(경기도내과의사회 회장)도 "주치의제가 어떤 방식으로 도입될 것인가 방법이 문제이겠지만 주치의제가 우리나라 현실과 얼마나 적합한가를 따져보면 아직 시기상조"라며 "주치의제를 시행하는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일반의(GP)가 거의 없고 대다수가 전문의 중심이다. 전문의가 게이트키핑 역할만 하고 있는 것도 의료 자원의 낭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비슷한 맥락에서 선택의료급여기관제를 보면 중복 진료를 막기 위해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선택된 의료급여기관을 우선 이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환자들의 불만이 굉장히 크다. 돈을 더 내더라도 이런 불편을 감수하려는 이들이 적다"고 전했다. 

수가 개선·보상체계 구축 선행 없으면 만관제 실패 반복

한국의 의사들이 주치의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의료계는 주치의제 도입에 앞서 수가 개선과 보상체계 개선, 의료진 간 역할 부담 등 제도적 개선이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태빈 부회장은 "영국 같은 경우 환자 진료와 상관 없이 주치의에게 일정 급여가 지급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개념이 아예 없다. 과연 주치의제를 하면서 적정한 재정 투자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성남시의사회 김경태 회장은 "주치의제가 만관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반복할 수 있어 우려된다. 만관제는 의료 현장에서 형식적인 15분 상담과 지표 채우기에 급급한 행정 절차가 의료 본연의 가치를 왜곡하고 있으며, 환자 교육 없이 단순히 서류 작성에만 그치는 사례도 빈번하다. 환자들 또한 제도의 취지보다는 바우처 수령에 더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실질적인 건강 개선 효과는 미미한 반면 시간과 인력, 재정은 낭비되고 의료진과 환자 모두에게 불만만 쌓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사한 방식의 주치의제를 도입한다면 제도만 바뀌었을 뿐 같은 실패를 반복할 수 있다"며 "충분한 상담 시간 보장과 수가 개선, 의료진 간 역할 분담, 형식보다 성과 중심의 보상체계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석구 교수는 "결국 수요자 중심 정책이 돼야 한다. 주치의제 도입 과정에서 공급자가 알아서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 아닌 시범사업 단계에서 충분히 환자들의 수요와 니즈를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환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방식이라면 수요자들이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가정의학과의사회는 주치의제에 부정적인 의료계 여론 등을 의식해 한국형 '선택적 주치의제'라는 명칭으로 주치의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가정의학과의사회 강태경 회장은 "선택적 주치의제도가 대안이 될 수 있다. 환자가 자유롭게 원하는 주치의를 등록 변경할 수 있고 기존 지불제도인 행위별 수가제의 변경 없이 장기질환자에 대한 정액 보상과 특수 진료에 대한 추가 보상을 가능하게 하는 프랑스 주치의제가 좋은 예"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는 7월 30일 상임이사회의를 통해 신속한 주치의제 관련 대응 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주치의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TF 위원장은 좌훈정 부회장이 맡을 예정이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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