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1.02 20:32최종 업데이트 22.01.0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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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료 강화 정책 실현되려면…의대·전공의 교육비용부터 국가가 지원해야

[칼럼] 안덕선 전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대통령 선거 정책 공약으로 의학교육 분야가 포함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공공의대 신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의료 관련 정책이 보장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치권은 의료의 평등성 문제나 지역 간 격차로 사회적 갈등을 은근히 부추기며 이를 교묘히 정치적으로 구호화하고 있다. 이런 자극적 구호와 함께 등장하는 것이 공공의료 강화, 혹은 의료의 공공성 강화라는 명목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한다.

'공공'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만병통치약과 같은 힘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전국을 마치 바둑판을 정리하듯이 진료권역으로 나누고 구역마다 일정 규모의 공공 병원과 의료진을 배치한다는 전략이다. 누가 봐도 그럴듯한 정책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람도, 사회도 기계는 아니어서 물리적 구획에 의한 의료제공으로 의료가 지니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물론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며 새삼스럽게 의료의 공공성에 대한 중요성과 이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공이 무엇인지는 사람마다 그 생각과 셈법이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사립 의과대학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나라다. 전체 의과대학의 75%는 사립이다. 사립 의존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일본도 알고 보면 사립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25% 정도이다. 그러나 등록금은 사립이 공립의 10배 정도 되는데, 일본사회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수년 전 일본 동경여자의과대학의 국제평가인증 단장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었다. 벌써 10년이 지난 일이기는 하나 당시 동경여자의과대학생의 1년 치 등록금은 우리 돈으로 약 1억원을 상회했다. 한 학년 100명에 6학년까지 있으니 동경여의대는 의과대학생 학부 등록금 수입만 해도 연간 600억원 이상으로 추산할 수 있다. 반면에 국립의대는 연간 1000 만원 정도로 국립과 사립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대학이었다. 

 공공성 인식 부재에서 대중의 논리로만 정책 강행 시 왜곡된 부작용만 양산 

공공의료가 잘 발달된 나라는 의과대학생의 학비가 거의 없거나 아주 낮다. 물론 졸업 후 전공의교육의 급여와 교육비도 공공재원에 의존한다. 이런 나라에서 학생에게 의료의 공공성이 무엇인가는 별도로 교육시킬 필요가 없다. 의과대학과 졸업 후 교육, 그리고 의료제도가 하나로 묶여진 나라에서 공공성에 대한 이해는 저절로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나라들은 대부분 의사수가 많고 역으로 의사 1인당 총 근무시간이 우리나라 의사보다는 훨씬 적어 보인다.

공공의료라면 떠오르는 영국은 최근 의사수를 많이 늘렸음에도 환자가 자신을 담당해줄 주치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주치의 한 명당 2000명의 환자를 담당해야 한다고 한다. 캐나다 쾌백주 의사는 평균 1000명이 안 되는 환자를 담당한다. 공공성 강화가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문제를 해결 하리라는 것은 매우 단순한 가설에 불과해 보인다. 

공공성 강화를 공공소유의 의료기관 설립을 주장하는 논리로 의료불균형이나 보장성강화의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을 보며 선진국의 공공성과는 ‘인식의 출발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공공성 강화는 첫걸음은 우선 의학교육에서 학생에게 별도로 교육을 시키지 않아도 공공성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제도가 받침돼야 한다. 몇 년 전 국제적인 의학교육학회에서 캐나다 의과대학장협회의 의장이 “우리를 키워준 사회를 잊지 맙시다”라고 강조하는 것을 듣고 매우 인상 깊었다. 사회가 요구하지 않아도 사회적 책무성에 대한 감각이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의사가 되기 위한 모든 비용을 사회가 부담한 나라의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제도에서 사립이건, 국립이건 의과대학을 다니며 자신들이 사회로부터 공공성에 대한 배려나 투자를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 학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지 자문해 본다. 최근 의사과학자 양성과정 등 석박사 과정에서 장학금을 수여하는 기회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직도 대부분의 석박사 과정도 대개는 학생들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즉 의학교육 자체가 자신의 발전을 위한 지속적 자기 자본의 투자를 의미한다. 물론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의 몫이다.

이런 환경에서 의학교육의 산물은 의료서비스의 생산주체로 인식되고 있어 공공성 강화와는 반대의 개념을 보여준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에서 개원을 할 때 들어가는 초기 투지비용도 적지 않다.

이런 환경은 공공성이 강한 나라의 의사 연평균 소득과 우리나라 의사의 연평균 소득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의사와 다른 나라 의사의 도시근로 노동자와 소득 비교에서 우리나라 의사의 소득이 너무 높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하면서 노동단체의 열렬한 지지와 박수를 받는 학자도 종종 언론에 등장한다. 이런 경우 도시근로 노동자와 우리나라 의사의 투입자산의 격차는 얼마나 높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진정한 의미의 공공성 활착하려면 의학교육부터 공공지원 강화돼야 

공공성 강화가 중요한 쟁점이라면 공공성 강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되새겨 보고 정의하기 어려운 애매한 용어인 공공의료라는 정치적 수사도 없어야 한다. 사립이나 국립이나 의과대학의 등록금 차이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에서 민간의료와 공공의료를 억지로 구분하려는 무리한 시도도 문제로 보인다. 공공성 강화의 방침이 물리적인 시설과 배치의 의료제공 정책이 아닌 환자의 의료선택의 시각인 의료사용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공공성 강화를 위해서는 공공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를 위한 별도의 병원 설립보다는 공공병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위해 정부의 직접적인 의료비 지원으로 이들도 다른 환자와 같은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형평성을 위한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의료의 지역역차가 적은 나라로 회자되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는 마치 우리나라의 의료격차가 끔찍한 것으로 왜곡시키고 있다.  

의학교육이 현재와 같은 생산주체 양성을 위한 자기투자에서 사회적 책무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위해서는 의학교육에 대한 공공의 투자가 선행되지 않는 한 공공성 강화는 영원한 공염불이 될 것이다. 물론 새 정권이 들어서도 갑자기 모든 의학교육에 대한 공공의 직접적인 투자는 불가능할 것이다. 극복해야할 과제도 엄청날 것이다.

그럼에도 의학교육에 대한 공공의 투자 없이 더 이상 의료전달체계 확립이나 필수의료와 적정 의료인력 양성 등 현재의 의료가 갖는 복잡한 문제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잡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다수의 의사는 의료나 의학교육에 성숙한 공공성의 강화에 대해 반대보다는 공감과 지지를 보낼 것으로 생각된다. 

새 정권이 기존의 정권과 차별된 모습을 보이려면 최소한 의학교육에 대한 공공의 투자를 어떻게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그리고 투자의 우선순위에 대한 합리적인 이정표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노력 없이는 의료현안에 대한 근본적 해결은 요원해 보일 것이고, 정권과 전문직의 충돌과 갈등, 그리고 전문직과 사회의 긴장상태도 쉽사리 조정되거나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될 뿐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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