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5.10.08 06:47최종 업데이트 15.10.13 05:53

제보

차등수가 폐지, 모든 의사가 좋아할까?

일부 봉직의, 일자리 줄까 신변 걱정

정책 변화에 따른 의사들 일희일비, 패 가르기 하기도

"물론 의료계에서 다들 바라던 폐지고, 환영하는 분위기인 것도 압니다만..."
 
전공의 수련을 중도 포기하고 '월급쟁이'로 근무하는 일반의 L씨는 차등수가제 폐지에 관해 담담하게 생각을 말했다.
 
"당연히 없어져야 하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당장 봉직 자리가 줄어들까 걱정입니다."
 
 
15년간 지속한 비합리적인 법안이 사라짐에 따라 의료계의 오랜 바람 하나가 이뤄진 것 같지만, 사실 모든 의사가 폐지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L씨처럼 부원장으로 근무하는 봉직의 중 일부는 차등수가제 폐지가 고용을 위축시킬까 걱정이다.

 
"결국, 차등수가제가 폐지되더라도 원장 혼자 물리적으로 환자수를 감당하기 힘든 의원은 지속해서 부원장을 고용하겠지만, 문제는 그 이하 규모입니다."
 
 
차등수가제의 뜻하지 않은 고용효과



 
'차등수가제'는 의사 한 명이 진료하는 외래 환자가 일정수를 초과하면, 진료 수가를 할인하는 제도다.
 
의료계로부터 지탄을 받아온 이 제도는 건강보험 재정안정을 위해 2001년에 한시적으로 도입됐지만,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유지되다가 지난 2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폐지가 결정됐다.
 
 
"박리(낮은 의료수가)를 만들었으면 다매(환자를 많이보는 것)라도 하게 해줬어야죠."
 
한 이비인후과 개원의는 제도 폐지가 늦게나마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동안은 '다매'마저 제대로 보상받지 못했습니다."
 
 

 
 
차등수가제는 의사 1일 진료수에 따라 환자 1인당 수가가 차이 나는 비합리성 때문에 모든 의사가 반대했지만, 전혀 뜻하지 않은 효과(?)를 만들기도 했다.
 
일부 개원의들이 진료한 만큼의 수가를 못 받게 되자, 수입 일부를 지출해서라도 봉직의를 고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원장 입장에선 의사를 고용하게 되면 봉직의 급여는 지출해야 합니다만,"
 
봉직의 L씨는 고용 효과가 일어났던 원인에 관해 설명했다.

 
"부원장 면허등록만으로 차등진료비(추가환자분에 대한 삭감비)에 대한 보상비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는 개원의가 고용을 고려하게 한 '보상비용'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예를 들어 150명의 환자를 원장 혼자 전부 진료하면, 75명 초과분에 대해서는 차등 수가가 적용돼 일종의 수가 삭감을 받지만,
 
부원장을 고용해 환자를 75명씩 배분해 진료하면 봉직의 월급은 나갈지언정 모든 수가는 온전히 다 받을 수 있죠."
 
 
투석실을 운영하는 일부 의원의 경우 차등수가제로 인한 초과 환자 할인액이 신장내과 의사 1명 월급과 맞먹어 고용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한다.
 
개원의는 봉직의 1명을 늘려 발생하는 급여 지출을, ▲차등 수가 삭감 비용 회수 ▲추가 환자 유입 ▲본인의 로딩 감소(라이프 퀄리티)라는 이점과 비교하여 고용을 결정하는 것이다.
 



 
#견해 차이 #음모론 #적응
 
이런 뜻하지 않은 효과 때문인지 차등수가제 폐지에 대한 의사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일방적이진 않다.
 
전문과나 근무 형태에 따라 폐지를 받아들이는 입장이 각양각색이다.
 
일부 의사들은 '노의 VS 젊은 의사' 구도로 나눠, 결국 제도의 폐지가 개인 의원을 소유한 노의들에겐 유리하고 봉직 자리를 찾는 젊은 의사들을 더욱 힘들게 할 거라는 의견을 내비치는가 하면, 부원장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젊은 여의사들의 처우를 우려하기도 한다.
 
또 의사들 사이에선 폐지에 따른 과별 이해득실을 따진 '수혜과 리스트'가 돌고, 어떤 의사들은 원격의료를 위한 준비단계로 해석한다.
 
심지어 가장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비인후과와 의사협회 회장의 전문과를 연결하는 음모론까지 제기하는 의사도 있다.
 
 



"한 마디로 말도 안 되는 거죠."
 
익명을 요구한 한 의사는 이런 반응을 보였다.
 

"(좋은 정책으로) 의료 전체 파이를 키울 생각을 해야지, 다른 과 잘 되는 거 배 아프다고 억지 부려 벤틸레이션(표출)하면 의료계 발전이 있겠습니까?"
 
그는 의료계에 떠다니는 차등수가제 폐지에 관한 불평불만에 대해 한 마디로 일축했다.
 



 
반면 다른 의견도 있다.
 
"파이가 아무리 커진들 본인한테 부스러기 하나 떨어지는 게 없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한 소아청소년과 봉직의의 주장이다.
 

"당장 자기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에게 대의를 먼저 생각하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대의'에 진절머리가 난다는 의사의 말을 들어보자.
 

"결국, 개원 시장에 나온 의사들은 개인사업자고, 봉직의 역시 대부분 잠재적인 개인사업자인데,
 
다들 그냥 자기를 위해 사는데,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변화'보다는 '적응'하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원래 생기지 말았어야 할 제도가 생기면서 많은 의사에게 피해를 줬고, 의사들은 무기력하게 그 제도에 적응했습니다만,
 
적응 말고 다른 방법이 있었나요?"

 
소아청소년과 봉직의는 씁쓸하게 말을 건넸다.
 
"근데 정책이 다시 뒤집혀 '리셋'됐으니, 의사들은 또다시 그냥 적응해야만 하는 거죠."

#차등수가제 #차등수가제폐지 #메디게이트뉴스

김두환 기자 (dhkim@medigatenews.com)
댓글보기(0)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

이 게시글의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