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차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가 열렸던 2017년 당시 종합학술대회 특별회계 운영성과표. 해당 자료는 매년 대의원총회에서 공개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에드워드 H. 카의 말,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다”라는 문장을 떠올리면, 과거의 수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오늘의 질문과 해석 속에서 다시 읽히는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숫자는 변하지 않아도, 그 숫자를 둘러싼 맥락과 선택은 현재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수치가 왜곡되는 방식은 대개 조용합니다. 어떤 해에는 늘어난 수치만 강조되고, 어떤 해에는 비교 기준이 바뀝니다. 그러면 숫자는 사실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결론을 유도하는 장치가 됩니다. 카가 말한 역사 서술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 즉 과거의 사실 자체보다 그것을 어떤 시선으로 배열하고 해석하느냐에 있습니다.
최근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 비용 문제가 화제입니다. 학술대회가 호화롭게 진행됐다는 보도가 나오자 의협은 곧바로 해명자료를 내고 2017년 학술대회에선 22억 원을 썼으니 올해 학술대회 예산 15억 원은 많은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얼핏 수치상으론 맞아 보입니다. 그러나 이를 현재 기준에 그대로 적용시키기엔 오류가 있습니다. 2017년 당시 학술대회는 3년에 한 번씩 열리던 행사로, 1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지금과는 기간, 회계 성격이 달라 단순 비교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일반회계로 운영되는 현재와 달리 당시엔 학술대회 예산이 특별회계로 분리돼 있었습니다. 별도로 운영되다 보니 현재와 달리 학술대회 수입·지출 과목이 함께 존재했고, 학술대회 직전 2개 연도는 흑자, 학술대회 개최 연도에 대량 적자가 나는 구조였습니다.
제35차 학술대회 지출 내용은 2017년 당시 '종합학술대회 특별회계 운영성과표' 참고, 제43차 학술대회 예산은 '의협 2026년도 고유사업 회계 세출 예산' 참고. 사진=제미나이
정책적 문제가 아니라 비생산적인 추가 논쟁은 하고 싶지 않지만 팩트체크 논란이 확산되고 있으니 굳이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겠습니다. 2017년 제35차 종합학술대회는 6월 30일부터 7월 2일까지 개최됐습니다.
당시 시점을 포함하고 있는 종합학술대회 운영성과표를 보면, 해명자료대로 '2017년 학술대회에서 쓴 돈이 22억 원'이 되려면 장부상 2년치(2016년 4월~2018년 3월 31일) 지출총계를 모두 떼다 합치면 21억 9000만 원이니 대략 합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 비교의 함정입니다. 올해 의협 학술대회 교유사업 회계 세출 예산은 1년 기준이고, 35차 학술대회 운영성과표는 2016년 4월부터 2018년 3월 31일까지 2년 간 지출 내역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단순히 비교하자면 35차 학술대회 2년치 지출 총계 22억 원에서 반을 나눠야 1년 기간으로 비교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같은 논리로 굳이 단순 비교해 따지자면, 당시엔 학술대회 1년 예산에 회원 회비는 5억 원 정도 밖에 쓰이지 않았으니 오히려 옛날이 더 '많이 절약할 수 있는 구조였다'고도 볼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세부적인 지출 내역도 살펴보겠습니다. 역시 현재와 단순 비교하기 힘든 부분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2017년 당시엔 학술대회 예산이 특별회계로 별도로 운영되다 보니 현재와 달리 인사, 관리, 예비비까지 잡다한 여러 비용이 지출에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일례로 운영성과표에 나와 있는 당시 학술대회 2년 간 인사관리비만 따져봐도 3억 8000만 원 수준이고 예비비도 3억 원입니다.
특히 당시엔 권역별로 여러 학술대회를 의협 종합학술대회와 함께 진행했습니다. 학술대회 준비를 위한 특별위원회까지 구성돼 의협 집행부 보단 의학회가 주도하는 모습까지 있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기초의학학술대회에 5000만 원, 권역별 학술대회 4곳 지원에 2억 원이 추가로 지출됐습니다. 현재는 종합학술대회 예산과 의학교육사업이 분리돼 운영됩니다.
결론적으로, 2년치 총 지출총액 21억 9000만 원에서 인사관리비, 예비비만 우선 빼고 다시 기초의학학술대회, 권역 학술지원 등 비용을 제외하면 12억 7000만 원이 됩니다. 이를 1년치 기준으로 평균을 내면 학술대회를 위해 1년에 6억 3000만 원 가량이 쓰였다고 단순 비교해 볼 수 있습니다.
다 제쳐두고 단순 비교가 힘들다면, 현재와 과거 모두 같은 이름의 지출 항목으로 존재하는 '장소 대관', '행사대행(PCO)' 비용 부분만 동일 기간(학술대회 개최 연도 기준)으로 핀셋 비교를 해볼 수 있겠습니다.
장소 대관료의 경우, 2017년엔 2억1000만 원이 지출됐고 2026년엔 6억 원이 예산으로 잡혔습니다. 행사 대행비는 2017년 학술대회 개최 년도 기준으로 4400만 원, 2026년엔 4억 원입니다. 각각 대관료는 3배, 행사 대행비는 10배 가량이 늘었습니다. 물가 상승분을 고려하더라도 올해 학술대회가 더 고비용인 이유입니다.
이왕 글을 적었으니 끝으로 몇자만 더 써보겠습니다. 이번 논란이 단순한 의협 집행부 흠집 잡기로 전락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의제는 형성됐으니 이를 계기로 여러 다양한 목소리가 모여 토론하고 장기적으로 종합학술대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갈 수 있는 공론화의 장이 됐으면 합니다.
진실은 대개 친절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감추기 보단 계속 들추고 토론해야 썩지 않습니다. 숫자는 맥락을 요구하고, 사건은 예외를 품고, 인물은 한 줄로 재단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기자라는 직업은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는 사관(史官)과 이야기를 퍼뜨리던 이야기꾼 사이의 간극과도 닮아 있는 듯합니다.
앞으론 저도 독자들이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 지 보단 무엇을, 어떻게 사실로 남겨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을 좀 더 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