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4.02 06:31최종 업데이트 16.04.02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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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 합의의 결과물

6천만원으로 끝내려다 6억 배상한 병원

환자 스스로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음에도 병원이 환자 보호자와 합의하고, 환자 본인이 합의에 동의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면 합의 효력이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김모 씨는 2011년 8월 주차 중 추돌사고를 당해 B대학병원에서 우측 중대뇌동맥 분지에 22×18mm 크기의 뇌동맥류가 확인됐다.
 
B대학병원 의료진은 개두술 및 뇌동맥류 경부 결찰술을 했는데, 환자가 수술 직후 두통을 호소하고, 동공 확장현상이 나타나자 뇌지주막하출혈을 의심해 2차 응급수술을 했다.
 
환자는 2차 수술 후 우측 중대뇌동맥에 급성 뇌경색 증세를 보였으며, 11일간 혼수요법을 받은 후 의식을 회복하고, 상태가 안정돼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그러나 다시 혈압상승, 의식 저하 등의 증상과 함께 CT 검사상 뇌출혈 소견을 보였고, 의료진은 3차 응급수술에 들어갔다.
 
환자는 그 후 고도의 좌측 편마비, 정신기능 장애, 미각 및 후각 기능장애가 나타났다.

 



한편 김씨의 처인 이모 씨는 김씨의 대리인 자격으로 B대학병원과 합의서를 작성했다.
 
B병원은 위자료 명목으로 6100만원을 지급하고, 김씨는 B대학병원과 병원의 모든 의료진, 보험회사 등을 상대로 민사, 형사, 행정상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민원 제기, 언론 및 인터넷 등을 통한 호소, 면담 강요, 집회 및 시위 등을 일체 하지 않는다는 게 합의서 요지였다.
 
합의서에는 김씨의 기명과 도장이 날인돼 있고, 그 아래 김씨의 대리인인 이씨가 자필 서명하고 무인 날인했으며, 이들의 신분증 사본과 가족관계증명서가 첨부돼 있었다.
 
B대학병원은 합의금 6100만원에서 진료비 2583만원을 공제하고, 나머지 3517만원을 환자 측에 지급했고, 김씨는 며칠 후 퇴원한 뒤 다른 병원을 옮겨 다니며 치료를 받았다.
 

김씨는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1년 여 후 B대학병원이 자신을 수술하는 과정에서 의료과실이 있었다며 9억여원을 배상하라며 민사소송을 청구했다.
 
그러자 B대학병원은 김씨 측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부제소 합의 위반이거나, 민법 제827조에 따른 일상가사대리행위로서 합의가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일상가사대리행위란 일상적인 가사에 대해 부부 상호간에 인정되는 대리권을 의미한다.
 
반면 김씨는 합의 당시 이씨에게 대리권을 부여한 바 없어 합의가 무효라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씨가 남편 김씨로부터 합의 체결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합의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이 합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김씨는 3차 수술후 9개월 가량 재활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고, 이씨는 병원 측이 치료비 중간정산을 독촉하자 담당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자 담당 의사는 "원무과에 잘 이야기 해 놓았으니 만나보라"고 했고, 원무과장은 이씨가 찾아가자 합의금 이야기를 꺼냈다.
 
김씨는 이씨가 합의 사실을 말하지 않아 퇴원 직전까지 전혀 몰랐고, 합의 당시 장애가 있긴 했지만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거나 사리분별을 하지 못할 상태는 아니었다.
 
법원은 "김씨는 장애인이 된 것 때문에 '병원에 쳐들어가겠다'고 하는 등 적개심을 표출했는데, 위로금과 모든 권리 포기, 민원 및 집회 금지 등의 사실을 알았다면 합의를 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법원은 이 사건 합의가 일상가사대리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합의는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기는 하지만 병원으로부터 합의금을 받는 대신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고 향후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서 권리관계를 규율하는 측면도 있어 부부의 공동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통상의 사무에 관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이 사건 합의는 김씨에게 매우 중요한 내용임에도 병원은 합의나 이씨에게 대리권이 있는지 여부에 관해 김씨에게 한 번도 확인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합의서 작성 당시 이씨가 김씨의 도장과 신분증만 가져왔을 뿐 위임장 등 대리권을 증명할 서류를 가져오지 않았고, 병원은 김씨에게 합의에 대해 한번도 확인하지 않은 점에 비춰보면 병원은 이씨가 김씨를 대리할 권한이 있었다고 믿을 정당하고, 객관적인 사정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대리권과 합의의 효력

이와 유사한 판례도 적지 않다.
 
정모 씨는 2009년 10월 김모 원장이 운영하는 의원에서 필러를 양쪽 코옆 골주름 부위에 1cc씩, 왼쪽 입꼬리 밑 주름에 0.5cc를 주입해 팔자주름을 없애는 시술을 받았다.
 
그런데 시술후 코의 오른쪽 상처부위가 변색됐고, 이후 치료를 계속 받았지만 오른쪽 콧구멍이 없어지는 의료사고로 이어졌다.
 
또 안면부에 길이 11cm, 폭 0.5cm의 선상반흔 1개, 길이 2cm, 폭 0.5cm의 선상반흔 1개, 길이 5cm, 폭 0.6cm의 비후성 반흔 1개가 남았다.
 
그런데 정 씨의 남편은 김 원장에게 '시술로 입은 피해와 관련해 그 보상 및 합의금으로 517만원을 수령하고, 향후 어떠한 법적 조치 및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을 확인합니다. 처와 합의사항임'이라고 기재한 확인서를 교부했다.
 
이런 합의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김 원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고, 법원은 소 제기가 부적합하다는 김 원장의 주장을 기각하고, 정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김 원장에게 확인서를 교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정씨 본인이 작성한 것이라거나 정씨가 합의서 작성을 위임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확인서 내용이 정 씨에게 효력이 미친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재판부는 "김 원장은 정씨의 남편이 정당한 대리권을 가지고 합의서를 작성했다고 믿을 만한 정당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합의의 효력이 미친다고 주장하지만 정 씨의 남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판부는 "비록 합의서의 권리포기조항이 있어 문언 상으로는 나머지 일체의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볼 수 있지만 추후에 생긴 손해 범위를 현저히 일탈할 정도로 중대하다면 그 권리포기조항이 합의 이후에 발생한 손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환기시켰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B대학병원이 김씨를 1차 수술하는 과정에서 일부 과실이 있었다며 5억 87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의료진이 1차 수술을 하면서 클립으로 동맥류 경부를 완전히 결찰하지 못한 과실이 있고, 그로 인해 지주막하 출혈 등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병원 측이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서둘러 합의를 유도하다가 오히려 더 큰 손해를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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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욱 기자 (cwahn@medigatenews.com)010-2291-0356. am7~pm10 welcome.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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