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07.06 12:30최종 업데이트 17.07.06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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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부 셋방살이, 미군 원조까지

4번째 의사회관도 내년이면 역사 속으로

관훈동 첫 의협회관. 사진: 의사협회 제공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대한의사협회. 1974년 준공해 44년간 의료계와 역사를 함께 했지만 급격한 노후화로 인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한계에 직면했다.
 
의사협회는 회관신축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회관 설계 공모에 착수했으며, 내년초 회관 신축 공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의사협회가 현 회관에 정착하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고, 후진국의 비애도 있었다.

대한의사협회의 모체인 '의사연구회'가 일제강점기인 1908년 창립했지만 그 당시에는 회관이 없었다.
 
자체 회관에 입주한 것은 1955년 11월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구 의친왕궁을 매입하면서부터다.
 
'대한의사협회 100년사'에 따르면 당시 의사들의 기부금과 외부의 지원금으로 구 의친왕궁을 매입했다.
 
그렇다면 자체 회관에 입주하기 이전에는 어떻게 회무를 처리했을까?
 
기록을 보면 회관이 없어 서울대병원, 정부 부처인 사회부 차관실, 보건부(현 보건복지부) 의정국을 옮겨 다니며 업무를 수행했다고 한다. 
 
의협 관훈동 회관에 입주하면서 대의원총회와 소규모 학술강연회를 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술세미나, 축하회 등을 열 수 있었다.
 
의협은 관훈동 회관 매입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1958년 6월 정기총회에서 신입회원 입회금으로 1만 5000환을 징수하는 안을 상정, 격론을 벌인 끝에 1만환을 걷기로 결정했다. 
 
현 이촌동 회관 신축 기공식 장면. 사진: 의사협회 제공

 그러나 의협 관훈동 회관은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단 5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1960년 11월 7일 불의의 화재로 회관이 소실됐기 때문이다.
 
이 화재로 의협의 각종 서류와 비품・문헌 등이 불타 버렸고, 종로구 관철동에 있던 약사회관에 임시 사무소를 마련하는 고충을 겪었다.
 
의협은 다음해인 1961년 1월 14일 관훈동 회관 대지를 매각하고, 같은 해 3월 11일 중구 쌍림동의 4층 콘크리트 건물을 새 회관으로 매입했다.
 
쌍림동 회관 매입은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다.
 
예산이 부족한 상태에서 회관을 매입하면서 1961년 9월 말 은행부채 642만환을 포함해 총 847만환의 부채를 안게 되면서 의협 내부 마찰이 심했고, 결국 회관 매입 계약에 참여한 일부 이사들이 자진 사퇴했다.
 
1961년 10월 13일 열린 의협 정기 대의원총회는 쌍림동 회관을 매각한 돈으로 부채를 청산하고 나머지 기금으로 새 회관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의협은 1962년 5월 11일 쌍림동 회관을 3060만환에 매각하고, 같은 해 6월 초 서울역전에 있는 구 세브란스병원으로 임시 사무소를 옮겼다.
 
이후 의협은 1963년 초순 종로구 관철동 44-5번지 대지를 매입하고, 지상 3층 콘크리트 건물인 새 회관을 4개월 만인 9월 초 준공식과 함께 입주했다.
 
56평 대지 위에 145평으로 지어진 관철동 회관은 주한미군사원조계획처(AFAK)로부터 기증받은 3000달러 상당하는 철근・양회・목재 등 건축 자재와 국내 의사 회원들의 성금 등 300여 만원으로 건립됐다.
 
구 심호섭 내과의원 자리에 세워진 관철동 회관은 1층 사무실, 2층 강당소회의실 겸용, 3층 회장실 및 신문사, 옥상 4층 창고 용도로 이용했다.
 
이 회관이 완공되면서부터 의협이 안정을 찾았고, 회세도 비약적으로 커져 오늘날의 의협으로 성장하는 기틀이 마련했다고 한다.
 
현 의협회관 낙성식. 사진: 의사협회 제공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의사중앙단체로서 관철동 회관은 너무 협소했다.
 
강당도 자체 행사를 치르기에 협소했고, 제7차 아시아오세아니아의사회연맹CMAAO 총회 유치가 확실한 가운데 한국에서 처음 맞는 국제대회를 성황리에 치르기 위해서도 대규모 회관 신축이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현 이촌동 회관 신축 논의는 1969년 4월 제주도에서 열린 제21차 정기총회에서 관철동 회관을 매각하고 대형 회관을 새로 짓도록 집행부에 전권을 위임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1969년 10월 16일 2820만원에 관철동 회관을 매도하고, 같은 해 11월 6일 용산구 동부이촌동 302-75의 대지 541평을 한국수자원개발공사로부터 1893만 8500원에 매입했다.
 
1969년 12월 5일 임시대의원 총회를 소집해 회관 신축을 뒷받침하기 위해 추가경정 예산안을 의결하고, 부족한 신축회관 기금을 회원들에게 모금하기로 결의했다.
 
1970년 3월 2일 회관건립위원회를 소집해 지하 1층, 지상 7층의 당시로서는 '매머드' 건물을 신축하되 제1차로 지하 1층, 지상 1층 짓기로 결의하면서 공사에 들어갔다. 
 
전국의 의사들은 1974년 4월 26일 회관을 준공하기까지 5년여간 정성어린 성금이 보냈고, 동아제약 강중희 사장 1000만원, 한격부 회장 500만원, 재일본한국인의사회 권영범 전임회장 100만원 등이 특별희사금을 보탰다. 
 
현 의협회관 3층과 7층에 마련된 동아홀과 사석홀은 당시 동아제약사 강중희 사장과 한격부 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 명명한 것이다.
 
2000년 의약분업 반대 현수막을 내건 의사협회 회관. 사진: 의사협회 제공

'매머드'해 보였던 의협 회관이었지만 시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외벽이 갈려져 붕괴할 위험이 있는 지경에 이르렀고, 회관 옆 아파트 주민들은 의협회관 때문에 아파트 가격이 떨어진다며 회관 도색비용을 부담했다는 설까지 돌 정도로 흉물로 변해가고 있다. 
 
의사협회는 2019년 신축 건물에 입주해 새천년을 준비할 계획이다.

안창욱 기자 (cwahn@medigatenews.com)010-2291-0356. am7~pm10 welcome.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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