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8.07.15 21:29최종 업데이트 18.07.1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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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 실려오는 '술꾼'을 대하는 소회

[칼럼]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여한솔 칼럼니스트] 현재 일하는 지역에선 119 구조대가 만취자 신고를 받고 출동하면 무조건 응급실로 이송한다. 구조대원들도 만취자를 받는 필자의 이해하기 어려운 표정을 아는 듯 '죄송하다, 우리도 어쩔 수 없다'라고 한다. 구조대원들이 죄송할 이유가 무엇인가. 필자는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아마 그들도 길바닥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 이유가 질병 때문인지, 아니면 만취 상태 때문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만취자라는 이유만으로 원인 추적이 불가능하다며 그저 ‘술꾼’이라고 환자를 소홀히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지 만취자들은 사람만 바뀔 뿐, 매일 밤 신기할 만큼 똑같은 상태로 온다. 이들은 의료인에게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을 하거나 술기운에 침대에서 소변을 받아 달라고 한다. '집에 갈테니 수액 줄을 뽑아주고 그냥 보내 달라(보통 이런 경우에 보호자는 절대 집에 못 가게 한다)', '술 깨는 약을 빨리 넣어 달라'며 소리를 꽥꽥 지른다. 만취자들은 다른 환자들의 안정이 담보돼야 할 응급실 진료현장을 순식간에 시장통 장날로 만들어버린다.
 
응급실 의료진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만취자들의 입장을 거부할 수 없다. 혹시 모를 다른 질병 때문에 의료진의 물음에 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구토로 갑자기 숨을 못 쉬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모로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의료진은 한 명의 만취자가 다른 환자들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그날 받을 모든 스트레스를 한 순간에 받는다. 만취자를 상대한지 3~4시간이 넘어가면 그날 근무는 소위 ‘똥 밟았다’고 생각한다(이상하게 응급실 당직 때마다 필자는 똥을 밟았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편안한 잠자리에 들 시간에 응급실을 지키는 의료진은 만취자들의 응석받이인 것일까. 응급실을 지키는 본인이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이 맞는지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객관적인 통계 정보를 갖고 있진 않아 함부로 말하긴 어렵지만, 경험상 진료현장에서 벌어지는 의료진에 대한 언어적·신체적 폭행에는 항상 '술'이라는 교집합이 있었다.
 
그러나 의료법 제 15조 의료인의 진료거부 금지 조항에 따라 의료인은 주취 여부, 정신병력, 전과 유무에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환자를 진료해오고 있다.
 
지난 1일 전북 익산의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술에 취한 환자로부터 폭행을 당한 다음 용기 있는 결단으로 문제를 공론화했다. 응급실 의료진 폭행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점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들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 정치계 등으로부터 의료진을 만족시킬 만한 근본적인 폭행 방지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의료진이 복잡하고 어려운 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의료진이 함부로 환자 진료를 거부할 수 없듯, 환자들도 의료진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진료현장에서 의료진을 폭행할 때 엄격한 법 집행은 물론, 만취자들의 난동에 대비하는 경찰의 적극적인 의료진 보호, 국민의 응급실 폭행 위험에 대한 인식 개선 캠페인 등 어떤 방법이라도 좋다. 술에 취한 환자 등으로부터 비상식적이고 저급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다시 한 번 재발 방지대책을 요구한다.
 
의료진 폭행 근절의 답을 얻기 위해 의료계가 이제라도 넋 놓고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다. 필자도 앞으로 이런 상황이 생기면 그냥 당하고 있지 않기로 했다. 의료진 모두가 줄기차게 폭행 근절을 위한 문제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 바로 '나'부터...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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