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금융당국이 은행들로부터 가계신용대출을 월 2조원대로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제출받았다. 전셋값 폭등과 빚투(빚내서 투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열풍에 신용대출을 조이라는 지침을 받은 은행들이 일제히 자율규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은행들은 한도 하향, 우대금리 축소 등으로 고신용ㆍ고소득자를 핀셋 규제 한다는 입장이지만 높아진 대출 문턱에 생활자금을 빌리려는 서민들까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4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을 포함한 국내 18개 은행은 올 연말까지 매월 신용대출 증가 폭을 2조원대로 유지하겠다는 계획을 냈다.
이들 은행은 지난해와 올해 신용대출 잔액 현황과 증가율 관리 목표 등의 구체적 자료를 금감원에 제출하면서 10~12월 증가액 목표치를 ‘2조원대’로 못 박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취급한 은행권 신용대출 잔액은 21조3000억원으로 월별 증가액은 지난 5월 1조2000억원, 6월 3조3000억원, 7월 3조4000억원, 8월 5조3000억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신용대출 폭증에 우려를 표했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달 8일 금융리스크 대응반 회의에서 “최근의 신용대출 증가가 은행권의 대출실적 경쟁에 기인했는지 살펴보겠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지난달 신용대출 증가액은 8월의 절반 수준인 2조9000억원까지 내려왔다.
다만 신용이 좋은 고객이나 전문직 등이 신용대출을 신청한 것을 인위적으로 거절할 수는 없다. 은행들은 주력 신용대출 상품을 중심으로 대출 한도ㆍ우대금리 축소 등의 방안을 꺼내 들었다. 상품별 최대 대출 한도를 종전 2억~4억원에서 1억5000만~2억원으로 축소하는 방안이나 신용등급 1~2등급의 고신용자 기준으로 연 소득 대비 대출 한도는 200%에서 150% 이내로 조였다. 우대금리도 은행별로 0.1~0.4%포인트가량 축소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월별 신용대출 증가액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한 건 매우 이례적”이라며 “고소득 전문직의 신용대출 한도를 2억5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내렸고, 우대금리 조정은 다음 주쯤부터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직장인 신용대출 전반에 대한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고소득자 핀셋규제가 아니라 생활자금을 빌리려는 서민의 한도가 줄고 금리도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이 최근 진행한 ‘2020년 3분기 대출행태서베이’ 결과에서도 이 같은 대출 억제 흐름이 나타났다.
이 조사에 따르면 가계주택(-6)과 가계일반(신용대출)(-9)에 대한 대출 태도가 특히 보수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 지수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은행들이 올 4분기에 대출을 더 엄격하게 심사한다는 얘기다. 은행권 관계자는 “신용대출 속도조절은 필요하다고 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종식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출 총량이 줄면 생활비 충당을 목적으로 신용대출을 쓰는 서민들의 한도가 줄거나 대출 연장이 거부될 수 있다”면서 “이들이 제2금융권으로 옮겨가게 되면 실질 금리가 크게 오르거나 연체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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