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김민영 기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뭉칫돈'이 은행에 쌓이고 있다. 이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초저금리에도 최근 두 달 새 늘어난 요구불예금은 30조원에 이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인해 세계경제가 장기침체 터널에 들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언제든 현금화 할 수 있는 예금에 돈이 잠시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주식과 부동산 투자 열풍에 맞춰 수시 입ㆍ출금이 가능한 곳에 단기 수익을 노리는 '스마트 머니'가 몰린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ㆍ신한ㆍ우리ㆍ하나ㆍ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요구불예금 잔액은 552조5864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536조6678억원) 대비 16조원 가량 증가했다. 은행 요구불예금은 수시입출금 예금, 수시입출금식 저축성예금(MMDA) 등 언제든지 입ㆍ출금할 수 있는 자금이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 자금' 성격이 강하다. 금리도 0.1% 수준으로 거의 없다.
올 1월 7조원 넘게 감소했던 요구불예금 잔액은 코로나19 확산이 본격화된 2월 무려 24조7380억원이나 폭증했다. 이후 6월(23조5667억원)까지 증가세를 이어갔다. 이 기간 늘어난 요구불예금은 80조원에 이른다. 코로나19가 진정국면에 접어드는 것처럼 보였던 7월에는 11조원 가량 빠졌다. 시장이 조금씩 살아나면서 각종 투자 자금이 나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주식시장엔 '동학개미'로 불리는 초보 투자자들까지 합세했다. 당시 SK바이오팜이 '상장 대박'을 기록하며 증시 열풍 일으킨 때와 맞물린다. 대형 공모주 이슈 등과 맞물려 연초와 같이 개인들의 증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영향 탓이다. 또 부동산시장에서는 '패닉바잉'(공황구매) 현상이 나타났다.
투자처 찾는 '대기자금'서 단기차익 노리는 '스마트머니'로하지만 잠시 뿐, 요구불예금 잔액은 8월 다시 13조3000억원 늘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한 최근 두 달 동안 증가한 규모는 30조원에 육박한다. 경기 불획실성에 대한 우려로 안전자산인 정기예금도 이 기간 8조원 가량 늘었지만 요구블예금의 증가규모는 이를 4배 이상 웃돈다.
이 기간 코스피가 주춤하고, 거래량도 덩달아 감소했다. 금융권에선 활황이던 증시가 8월 중순부터 조정국면에 들어섰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기예금에 6개월이나 1년 정도 돈이 묶어놓는 것보다 입ㆍ출금을 자유롭게 하는 요구불예금 선호 현상이 더 커지고 있다"면서 "금리가 떨어지면서 은행 예금보다 더 좋은 상품, 예를 들어 부동산이나 주식 투자 등을 위한 대기 자금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요구불예금으로 유출입되고 있는 뭉칫돈을 수익을 쫓아 움직이는 일종의 '스마트머니'로 보고 있다. 스마트머니는 고수익의 단기차익을 노리고 신속하게 이동하는 자금을 말한다. 낮아진 금리와 정부의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에는 돈이 넘쳐나지만 경제 전반의 수익성이 낮아진 탓에 돈이 제대로 움직이지는 않고 있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 때문에 단기차익에만 급급해 수십조원의 뭉칫돈이 한꺼번에 빠지고 다시 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금 부동화 팽배…향후 유동성 버블 우려자금 부동화에 이어 '유동성 버블(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중에 유동성 공급은 많이 되고 있는데 실물경제의 어려움이 크다보니 개인과 기업 자금 모두 갈 곳을 잃고 멈춰 있는 자금 부동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대기성 자금들은 자연스레 수익률이 조금이라도 높은 곳이 있으면 즉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같은 현상이 없어지려면 기본적으로 실물경제가 좋아져야 한다"면서 "기업들이 자금을 신규 사업 등에 투자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각종 규제를 완화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김민영 기자 my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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