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0.10.06 11:50

[뉴웨이브] 상생법 '비밀유지계약 의무화'의 오해와 진실


지난 7월9일 입법예고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법)' 개정안에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특히 중소기업이 거래 중인 대기업에 기술 자료를 제공할 경우 '비밀유지계약(NDA·Non-disclosure agreement) 체결'을 의무화하도록 한 것에 대해 기업 거래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해외 선진 기업이 기술 거래를 할 때는 NDA를 관행적으로 체결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문화가 정착되지 못했다. 흥미로운 것은 대기업이 해외 기업과 거래할 때는 NDA를 반드시 체결하는 반면 국내 중소기업과 거래할 때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띤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의 NDA 요구를 거절한 사례가 적지 않고 또 이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본거래 자체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기술탈취는 의외로 거래 관계가 아직 형성되지 않은 사업 제안·입찰·공모 등 거래 교섭이나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특허청에 신고된 부정경쟁행위 218건 가운데 아이디어 탈취는 56건(26%)이었다. 그중 30%가 대기업에 의해 발생했으며 다른 부정경쟁행위와 비교해 대기업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디어 탈취가 발생하는 것은 최초로 아이디어를 창출하기까지 상당한 투자와 시간이 소요되는 반면 교섭 과정에서 상대 측 기술 숙련자가 해당 아이디어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해당 아이디어를 쉽게 이해하고, 자신들이 실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며 나아가 상대 측의 아이디어를 별스럽게 생각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기술탈취는 사업 제안을 한 중소기업의 거래 기회를 박탈할 뿐 아니라 기술을 빼앗아 장래 사업 기회에까지 타격을 입게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비밀유지계약의 체결 의무(개정안 제21조의2)'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는 것은 법조문의 표현이 다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동 조 제1항에서 "수탁기업이 위탁기업에 기술 자료를 제공하는 경우 수탁기업과 위탁기업은 …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기술 자료가 제공되는 '모든' 경우에 NDA 체결 의무가 생기는 것으로 해석돼 현행 상생법상 '서면 발급' 의무와 중복 규제가 될 우려를 일으킨다.
현행 상생법은 수탁기업에 대한 기술 자료 요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예외적으로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 적법한 형식의 서면이 교부된 경우(서면 발급)에만 적법한 기술 자료 요구가 성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25조 제1항 제12호). 기술 자료 탈취는 수·위탁 관계 형성 전후로 발생하지만 현행법은 수·위탁 관계 형성 이후만을 규율하고 있다.
따라서 '비밀유지계약 체결 의무'를 수·위탁 거래를 위한 사업 제안, 입찰과 같은 '본계약 체계 전 단계'에서 발생하는 기술 자료 제공 시에 한정해 부과하도록 개정안을 명확히 한다면 기존 서면 발급과의 중복을 피하고, 소기의 입법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기술탈취 근절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초부터 추진하고 있는 '공정경제'의 주요 국정과제다. 한국 경제는 세계 10위권으로 위상이 격상했지만 여전히 뿌리 깊은 불공정으로 시장질서가 올바르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전환을 맞아 이제는 우리도 중소기업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존중하고 대기업은 사회로부터 존경받는 건전한 경제로 전환돼야만 한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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