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요금 6년10개월간 동결…물가상승 따라 소비 왜곡 심화韓電, 국제유가 따라 요동치는 재무안정성 결국 리스크로 돌아와에너지 전환따른 환경비 뜨거운 이슈…선진국 대다수별도 부과중
[아시아경제 문채석 기자]전기 원재료 가격에 따라 전기요금을 조정하는 '연료비 연동제'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환경비용 부담금을 별도로 부과하는 요금 체계 개편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5일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상위 30개국 중 자원 빈국으로 꼽히면서 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지 않은 나라는 5개국으로 파악된다. 이중 멕시코, 사우디아라비아, 아르헨티나, 이란은 연료비를 통제할 수 있는 산유국이며 스위스는 수력 발전 비중이 크고 화석연료 비중이 낮아 연료비를 연동할 유인이 부족하다.
연료비 연동제는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에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하는 제도다. 한국전력과 발전 자회사들은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등 원재료를 해외에서 사 온 뒤 이를 태워 전기를 만들고 이를 국내 소비자에게 팔아 수익을 낸다.
시장 원리에 따르면 원재료 가격에 따라 가공품인 전기요금이 오르내리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나 정부는 물가 안정, 소득 재분배, 산업활동 지원 등을 이유로 전기요금 조정을 제한해왔다. 전기요금은 지난 2013년 11월 이후 6년10개월간 동결된 상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7~1.9%였다. 이 기간 전기요금은 제자리 걸음이었으니 물가가 오른 만큼 소비자 왜곡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할 경우 소비 왜곡을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전기를 제값에 거래해 불필요한 경제·환경적 악영향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왜곡된 전기 요금 체계를 지속할 경우 국내 전력 산업의 부실도 우려된다.
◆"연료비 연동제, 소비 왜곡 방지"= 연동제를 도입하면 요금 흐름을 예측하기 쉬워지기 때문에 고유가 시 전기요금 폭등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지금 같은 저유가 기조에선 연료비가 급감하지만 현 체계대로라면 유가 하락분을 전기료에 반영할 수 없어 소비자들이 요금 인하 혜택을 누리기 어렵다. 반대로 유가가 올라 한전이 적자 늪에 빠지면 이후 유가가 하락해도 적자 때문에 전기료를 낮추기 어려워진다.
연동제를 적용하면서 전기료 상승 폭에 대한 상한선을 두고, 비상시 제도를 유보할 제동 장치를 걸면 '고유가 리스크'의 경우 해결할 수 있다.
앞서 정부는 2011년 연동제를 추진하려다 물가 부담으로 철회했지만, 당시에도 요금 조정 상한, 유보 등 소비자 보호장치를 계획안에 포함했었다.
선진국도 안전 장치를 두고 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다. 1996년부터 연료비 연동제를 시행한 일본의 경우 유가가 하락했는데도 전기요금이 30% 이상 올라 연동제를 도입하게 됐다.
일본은 3개월간 유가 평균값을 계산해 2개월 뒤 전기요금에 적용한다. 급격한 요금변동 방지를 위해 조정액 상하한선을 설정하는 등 안전장치도 마련했다. 이렇게 되면 전기요금 등락에 대한 정보를 미리 알 수 있게 돼 대규모 정전(블랙아웃) 등 리스크를 줄이고 합리적인 에너지 소비를 유도할 수 있게 된다.
국제 유가에 따라 실적이 널을 뛰는 한전의 재무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연동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국제 유가는 산유국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언제든 오르내릴 수 있어 우리가 가격을 통제하기 어렵다.
한전은 지난해 1조2770억원의 적자를 봤다가 올 상반기 820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유가가 떨어진 것 외에 마땅한 성장 동력(모멘텀)이 없는 가운데 깜짝 실적을 기록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잠잠해지면 연동제를 도입할 명분이 크게 약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고유가 기조에선 소비자 저항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에 전기료 인상이 겹치면 거센 반대 여론이 일 수 있다.
◆에너지 전환에 따른 환경 비용 부과 관건= 환경 비용 부과 여부도 관심거리다. 기본요금과 전력량 요금에 환경 비용까지 더하는 것이라,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 때문에 전기료가 오르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 수 있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와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등 환경 비용을 내고 있다. 한전은 올 상반기에 RPS 비용으로 약 1조2000억원, ETS 비용으로 약 900억원을 부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 선진국에선 환경부담 체계를 요금제에 반영하고 있다. 미국 일부 주와 영국,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환경 비용을 계산해 요금에 적용하거나 별도로 부과하는 체계를 적용 중이다.
우리나라도 석탄과 원자력 발전을 줄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더는 친환경 에너지 비용을 국민에게 숨기기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환경 부담금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소비자와 투자자들이 한전의 경영 효율성 수준을 파악하고 책임경영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9차 전기본) 자문기구인 워킹그룹 위원장인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는 최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주최한 '2020 합리적 전기요금 체계로의 이행을 위한 정책과제 세미나'에서 "기후비용을 명확히 드러내지 않는다면 국민은 속았다고 생각하며 재생에너지 보급과 기후변화 대응이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며 "독일의 전기요금 중 재생에너지 활성화 등을 위한 제세부담금이 절반 수준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전기요금을 개편하려면 한전 이사회 통과 후 정부 전기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친 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세종=문채석 기자 chaes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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