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서소정 기자, 세종=손선희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5월에 이어 두세 번 더 ‘빅스텝(0.5%포인트 인상)’을 예고하면서 이르면 오는 7월 한미 간 금리가 역전돼 대규모 투자자금 유출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미국의 긴축 통화정책에 대비해 기준금리 인상과 동결 카드를 번갈아 쓰며 선제적으로 대응해왔다. 지난달 한은 총재 부재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기준금리를 올린 것도 고물가 대응과 함께 한미 간 금리역전을 최대한 늦추겠다는 의도가 컸다.
그러나 한미 간 금리역전은 다가올 미래가 아닌 눈앞의 위기가 됐다. 만약 오는 26일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하고 미 Fed가 6월 14~15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0.5%포인트 올린다면 한미 금리는 1.50%로 동일해진다. 한미 간 금리역전은 당장 7월부터 닥칠 위기가 될 수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한미 간 정책금리가 역전되면 국내 주식시장에서 263억달러가 유출됐던 2005년 8월부터 2007년 9월 당시보다 자금이탈 강도가 더 셀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번째 금리역전 눈여겨 봐야= 6일 한은에 따르면 그동안 한미 간 정책금리가 역전된 사례는 총 세 차례로 각각 △1999년 6월~2001년 3월 △2005년 8월~ 2007년 9월 △2018년 3월~2020년 2월이었다.
이 세 차례의 한미 금리역전 상황이 당시 국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대체로 제한적이었지만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이탈 강도가 컸던 두 번째 사례를 눈여겨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2005년 8월부터 2007년 9월 중 국내 주식 시장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금은 263억4000만달러였다. 미국 금리인상으로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달러 등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했다는 게 투자업계 분석이다.
세 번째 기간 중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탈한 외국인 자금은 83억6000만달러였다. 반면 첫 번째 기간엔 209억3000만달러의 외국인 자금이 국내 증시로 유입됐다. 당시 국내 주식시장 개방 확대의 영향으로 외국인 주식 자금이 유입된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다가올 네 번째 한미 금리역전 상황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국내 금융시장 개방이 지속적으로 확대, 외국자본 유출입이 과거보다 훨씬 용이해지면서 단기간에 외국인자금이 대규모로 이탈할 수 있는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원화 약세도 자금이탈 우려 키워= 특히 최근 환율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과거 정책금리 역전을 경험했던 신흥국 사례를 보면 금리역전 현상이 심화되고 외환시장 내에서 해당국 통화의 가치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될 때 해당국 투자에 대한 기대투자수익률이 낮아지면서 외국인 자금 유출이 늘어났다"며 "우리나라도 원화 가치 하락에 대한 전망이 외환시장 내에서 확산될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 금리인상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른 데다 아직 금리역전이 현실화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원화 약세 흐름이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는 점은 자금이탈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다. 향후 원·달러 환율이 계속 상승할 경우 외국인 자금 유출이 더 확대되고 주가 하락, 시중금리 상승, 원화가치 추가 하락 등이 심화될 수 있다.
물론 한미 간 역전금리로 인한 대규모 자금이탈 우려가 과도하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 세 차례의 한미 금리역전 기간에 일시적으로 주식·채권 등의 자금이 빠져나가긴 했지만 전체 증권투자자금 규모(국제수지 기준)를 보면 각각 168억7000만달러, 304억5000만달러, 403억4000만달러 순유입을 기록했다는 게 근거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역전됐다는 자체보다 역전 현상이 얼마나 지속될지가 중요하다"면서 "역전 지속기간 전망에 따라 자본이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인사청문회에서 "자본 유출의 경우 금리뿐 아니라 환율 변화에 대한 기대 심리, 경제 전체의 펀더멘털(기초체력) 등 여러 변수에 달려있기 때문에 반드시 금방 유출이 일어난다고 볼 수 없다"면서 "금리 격차가 커지면 원화 가치가 절하될 텐데, 그것이 물가에 주는 영향을 조금 더 우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 등 불확실성에 대응해 필요할 경우 즉각적인 조치에 나설 방침이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국제금융센터 등이 참여한 거시경제금융 점검회의에서 "앞으로 각별한 경각심을 가지고 시장 상황과 주요 리스크 요인을 점검하는 한편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대응체계를 유지하며 필요할 경우 과감하고 신속하게 시장 안정조치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한은의 기준금리인상 속도도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 교수는 "지난달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8%로 금융위기 이후 13년 반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물가상승세가 거세다"면서 "당분간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돼 5월 금통위가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서소정 기자 ssj@asiae.co.kr
세종=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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