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자금 관리 체계가 가장 엄격해야 할 시중은행에서 600억원대의 대형 횡령 사건이 발생해 파문이 일고 있다. 이번 횡령은 신용이 생명인 제1금융권 은행에서 일어난 데다 장기간에 걸쳐 돈을 빼돌렸음에도 발각되지 않아 내부통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횡령 규모가 은행 금융 사고로서 매우 커 이례적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우리은행 등에 따르면 직원 A씨는 2012년 10월12일, 2015년 9월25일, 2018년 6월11일 등 3차례에 걸쳐 회사 자금 614억원(잠정)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A씨는 우리은행에서 10년 넘게 재직한 차장급으로, 횡령 당시 구조개선이 필요한 기업을 관리하는 기업개선부에 있었다. 그는 최근까지도 이 부서에서 업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A씨의 계좌를 통해 자금 흐름을 파악하던 중 횡령금 일부가 A씨 동생인 B씨의 사업 자금으로 흘러간 단서를 포착해 지난달 29일 같은 혐의로 B씨를 체포했다. B씨는 뉴질랜드 골프장 리조트 개발사업을 추진하다 80억여원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횡령액 614억원 중 A씨는 500억 가량, 동생 B씨는 100억가량을 나눠 쓴 것으로 추정된다. 횡령금 대부분은 옛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 참여했던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에 우리은행이 돌려줘야 하는 계약보증금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횡령 사건을 두고 은행 금융 사고 단일 건으로는 이례적일 만큼 큰 액수라는 반응이 나온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2021년 업권별 유형별 금전사고 현황' 중 '횡령 유용' 항목을 보면 7개 은행(신한·KB국민·하나·우리·기업·농협·SC제일)의 전체 횡령 금액은 지난해 67억6000만원(16건)에 불과했다. 즉 지난해 은행권에서 발생한 횡령·유용 사고액을 모두 합친 67억원보다 9배가 넘는 금액을 A씨가 횡령한 셈이다.
과거 대규모 횡령 사건을 살펴보면 2005년 조흥은행 면목남지점에서 자금 결제 담당 직원이 공금 412억원을 빼돌린 사건이 있다. 당시 금융감독원은 자금결제실 등 사고 관련 부서에서 내부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점을 확인하고 사고 관련 임직원 20명에 대해 문책 등 조치를 취했다.
또 2013년에는 KB국민은행 직원이 국민주택채권 등 채권을 시장에 내다 파는 수법으로 약 90억원 규모의 자금을 횡령한 바 있다. 국민주택채권은 채권 만기가 도래하면 원리금을 받을 수 있지만, 소멸시효가 지나면 국고에 그대로 귀속된다. 이 직원은 만기가 지나 국고로 귀속되기 직전의 국민주택채권을 위조한 뒤, 친분이 있는 영업점 직원의 도움을 받아 현금 상환하는 수법으로 약 90억 원을 횡령했다.
이외에 2017년에는 KEB하나은행 직원이 13억원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충남 천안 모 지점의 출납 업무를 담당하던 2년 차 직원은 당시 정상 화폐를 사용 불가능한 손상 화폐로 분류하는 수법으로 은행 자금을 횡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해당 지점이 정기적인 자체 감사를 벌이던 중 발각됐다.
한편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우리은행의 600억원대 횡령 사고와 관련해 회계법인에 대한 감리 착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 금감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밀레니엄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외국계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후 취재진과 만나 "기본적으로 회계법인은 회계감사를 하면서 시재가 확실히 존재하느냐, 재고자산으로 존재하느냐를 봐야 한다"며 "하지만 어떤 연유로 해서 이 부분이 조사가 잘 안됐는지 이런 것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회계법인의 감리착수를 검토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검토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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