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5.01 16:25

[송승섭의 금융라이트]600억 우리은행 횡령사고…어떻게 가능했나

금융은 어렵습니다. 알쏭달쏭한 용어와 복잡한 뒷이야기들이 마구 얽혀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알기 위해 수십개의 개념을 익혀야 할 때도 있죠. 그런데도 금융은 중요합니다. 자금 운용의 철학을 이해하고, 돈의 흐름을 꾸준히 따라가려면 금융 상식이 밑바탕에 깔려있어야 합니다. 이에 아시아경제가 매주 하나씩 금융이슈를 선정해 아주 쉬운 말로 풀어 전달합니다. 금융을 전혀 몰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는 ‘가벼운’ 이야기로 금융에 환한 ‘불’을 켜드립니다.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우리은행에서 600억원대 규모의 횡령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수년에 걸쳐 돈이 빠져나갔는데 우리은행은 해당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지, 다소 복잡하게 얽혀있는 사고 경위와 배경을 3가지 질문으로 구분해 풀어 드립니다.
우리은행 횡령사고는 2012년 시작됐습니다. 6년간 3차례에 걸쳐 돈이 인출됐는데 규모는 614억원에 달합니다. 돈을 빼돌린 사람은 우리은행 기업개선부 소속 차장급 직원 A씨였습니다. 기업개선부는 기업매각이나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입니다. 빼돌린 자금도 업무 중 생긴 계약금이었고요.
횡령자금 600억원의 출처는?계약금의 출처를 알려면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이란의 가전업체인 ‘엔텍합’이라는 회사가 한국의 ‘대우 일렉트로닉스’라는 기업을 인수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대우 일렉트로닉스의 최대 주주는 지분 57.4%를 가지고 있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였죠.
인수절차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면 기업을 사려면 계약금이 필요합니다. 이 기업을 인수하겠다는 증거로 미리 내는 일종의 보증금이죠. 계약금은 기업 사이에서 매각을 주관하는 금융사가 보관하고요. 그 뒤에 투자금 규모와 조건을 문서로 작성하는 ‘투자확약서(LOC)’를 쓰게 됩니다. 당시 계약금은 약 578억원이었고, 이를 맡았던 금융사는 우리은행이었습니다.
만약 정상적으로 기업인수가 진행됐다면 엔텍합은 보관된 계약금과 함께 추가금액을 내고 대우 일렉트로닉스를 인수했겠죠.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캠코를 비롯한 채권단은 엔텍합이 보낸 투자확약서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엔텍합에 계약해지를 통보했고 계약금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계약금을 어떻게 빼돌릴 수 있었나



돌려주지 않은 계약금은 우리은행이 별도 계좌에 계속 관리해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계약금은 이자를 고려해 약 614억원 규모였고요. 우리은행 내부에서 이 별도 계좌관리를 맡았던 사람이 바로 A씨였습니다. 다시 말해 채권단이 엔텍합에 돌려주지 않기로 한 계약금을 A씨가 빼돌린 겁니다.
그런데 대형은행에서 개인직원이 어떻게 돈을 빼돌릴 수 있었을까요? 2018년 마지막으로 돈을 빼돌렸을 때 활용한 수법은 문서위조였습니다. 대우 일렉트로닉스 최대 주주인 캠코에 계약금 관리업무를 넘기는 것처럼 서류를 조작했습니다. 위조문서에는 캠코로 돈을 송금하는 것처럼 나와 있었지만 실제로는 본인이 원하는 계좌로 빼돌리는 거였죠. 범행 후 원래 우리은행 계좌는 해지됐고요.
횡령사실은 어떻게 발견했나이 사실은 약 10년간 아무도 모른 채 묻혀있었습니다. 우리은행이 횡령사실을 알게 된 건 한국과 이란과의 소송 때문입니다. 계약금을 빼앗긴 엔텍합의 대주주는 2015년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합니다. 계약금과 이자 730억원을 돌려달라는 내용이었죠. 2019년 한국정부가 최종 패소하면서 돈을 돌려줘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시행하면서 일정이 꼬였습니다. 이란과의 외환·금융거래가 제한되면서 계약금을 돌려줄 수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 올해 초 미국의 송금허가가 떨어졌습니다. 이에 우리은행은 엔텍합에 돈을 돌려주기 위해 계좌를 확인하던 중 횡령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엔텍합에 돈을 돌려줘야 하는데, 돌려줄 돈이 사라져버린 금융사고가 된 겁니다.



경위를 파악한 우리은행은 지난달 27일 오후 A씨를 상대로 경찰에 고소장을 냈습니다. A씨는 몇 시간 동안 잠적했지만 같은 날 10시30분쯤 경찰에 자수했습니다. 경찰은 A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긴급체포했고요. 해당 직원은 구속됐고, 함께 돈을 쓴 혐의를 받는 A씨의 동생도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태입니다. 횡령자금은 뉴질랜드 골프장 개발사업 추진, 파생상품 투자 등에 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편 금융당국도 사태파악에 나섰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 횡령사고와 관련해 내부통제에 허점이 있었는지 등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은행의 회계를 감사했던 법인에 대해서도 감리에 착수하기로 했습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전체 뉴스 순위

칼럼/MG툰

English News

전체보기

유튜브

전체보기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