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업데이트 22.04.28 16:49

애그플레이션과 식량안보 '적신호'…尹정부, 곡물 자급 기반 다진다(종합)

[아시아경제 세종=김혜원 기자, 세종=손선희 기자] 새 정부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밀과 콩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새롭게 제시하고 식량안보 차원에서 적극적인 농정 지원에 나선다. 저장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밀 등 일부 곡물은 국내에 전용 비축 시설을 구축하기로 했다.
28일 관계 부처와 업계에 따르면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현재 0.8%에 불과한 밀 식량 자급률을 2027년 7%로 높이고 곡물 전용 비축 기지를 신규 설치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한 식량안보 강화 계획을 국정과제에 담을 예정이다. 윤석열 정부 기한(2022~2027년) 내 보다 구체적인 식량안보 정책을 수립한 것이다.
새 정부 식량안보 정책 방향성은 국내 밀·콩 자급률 제고와 민간의 해외 곡물 공급망 확보 등 크게 두 가지로, 결은 이전 정권과 비슷하다. 그동안 정부는 밀 산업 육성법 제정(2020년 2월)과 밀 산업 육성 기본계획(2020년 11월) 수립 등을 통해 자급률 제고 기반을 닦았으나 수입산과의 가격 경쟁력 격차가 심해 농가가 재배를 꺼리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는 식량안보 측면에 정책 집행의 우선순위를 두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기조로 알려졌다.
해외 공급망 대응을 위해서는 포스코인터내셔널 등 민간 모델을 활용할 방침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에 곡물 터미널을 운영 중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은 북미와 남미권에서 현지 기업 지분 투자 등 방식의 물량 확보 계획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비상 시 국내 곡물 반입 명령 이행으로 인한 사업자 손실 보상 근거를 마련하는 등 후속 지원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소비는 늘어나는데 자급률이 낮은 밀과 콩을 중심으로 한 식량안보 강화 중장기 계획을 연내 수립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尹정부, 초기 국정과제로 '식량안보 강화' 채택
윤석열 정부가 초기 국정과제로 채택한 식량안보 강화 정책 방향은 크게 밀·콩 기반의 식량 자급률 제고와 민간 자원을 활용한 민관 협력 모델로 요약된다. 국내에서는 소비량이 줄고 있는 쌀을 대신해 논에 밀과 콩을 심도록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급 기반을 확충하겠다는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 해외에서는 민간 기업이 현지 곡물 유통·수출 시장에 진출하도록 도와 우회적으로 수입 물량을 확보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문제는 적극적인 재정 투입인데, 세계적으로 식량안보를 둘러싼 자국 우선주의 바람이 거센 가운데 새 정부가 정책적 대응 강도를 높일지가 성패를 가를 관건으로 꼽힌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애그플레이션 위기를 부채질하면서 안정적인 곡물 물량 확보가 식량안보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전쟁발(發) 강한 충격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국제 곡물 가격 급등이 배합사료(10.6%)와 가공식품(6.8%), 축산물(5.9%) 등 국내 물가를 단기간에 끌어올릴 것으로 봤다.


쌀 대신 밀·콩… 갈 길 먼 농가 ‘규모의 경제’
윤석열 정부의 식량 자급률 제고 집중 품종은 양곡 소비 비중은 커지는 데 반해 해외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국내 생산 기반은 태부족한 밀과 콩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밥 대신 빵을 찾는 식생활 서구화로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2020년 기준 57.7㎏으로 매년 감소 추세다. 하지만 쌀 다음으로 소비량이 많은 식량 작물인 밀 자급률은 1%에도 못 미친다. 새 정부는 이 수치를 5년 내 7%로 끌어올리고 콩 역시 37.9%까지 자급률을 올리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문제는 국산 밀의 가격과 품질 경쟁이 외국산에 비해 열위에 있다는 데 있다. 이는 농가 소득과 직결된 만큼 선결이 필요한 대목이다. 농가 입장에서는 같은 면적 단위당 소출량이 적고 가격 경쟁력이 낮은 밀을 쌀 대신 재배할 경제적 유인이 없는 셈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국산 밀은 민간 자율 수매로, 무관세인 수입 밀보다 가격이 2.1~3.7배나 높다. 일정 수준의 농가 소득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 확보가 시급한 과제인 이유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논 활용(이모작) 직불 제도를 개편해 밀과 콩 지원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밀·콩 재배를 늘리는 방향으로 전방위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100% 수매나 비료비 지원, 계약재배 물량 확대 등 다양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생산 기반을 넓히는 데 우선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안정적인 수급 및 품질 관리를 위해 국내 곡물 특화 비축 기지도 신설한다. 공공비축 매입량은 지난해 밀(1만t)·콩(2만5000t)에서 2027년 밀(5만t)·콩(5만5000t)으로 늘릴 계획이다.
"民 뛰도록 官 돕겠다"
전문가들은 식량 자급률 제고가 식량안보 측면에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 국책과제이나 방법론에서는 묘수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데 공감한다. 실제로 수십년 전부터 쌀이 아닌 다른 식량 작물의 자급률 높이기는 정권마다 정책과제로 등장했으나 뚜렷한 성과를 낸 사례는 없다. 특히 국내 농지 면적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면 해외 공급망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정부와 전문가 집단의 공통 견해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우크라이나에 곡물 터미널을 운영하면서 세계 각국으로 수출 비즈니스를 수행하고 있고 유사 시 국내로 물량을 들여오고 있지만 규모가 미미해 식량안보 측면에서는 상징적 수준에 그친다.
김종진 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농가 입장에서는 경제적 유인이 있어야 하는데 막대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1차적인 문제"라며 "국내에서는 농작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자급률을 최대한 높이되 이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추가적으로 수입 안정화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곡물 수입의 주체인 민간 기업이 경영권 인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국제 곡물 유통망(가치사슬)에 진출하거나 해외 농업 직접 개발 등을 통해 국내 곡물 수요와 연결될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얘기다.
앞으로 정부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가는 민간의 해외 공급망 확보에 필요한 자금 및 세제 지원을 검토하고 곡물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전문 기업의 해외 진출 시 수익 보전 차원의 판로 확보를 뒷받침할 계획이다. 이달 초 포스코인터내셔널과 팬오션, CJ 등 곡물 수입과 유통, 해외 농업 개발 담당 기업은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저리 자금 지원과 세제 감면 등을 건의한 바 있다.


애그플레이션 위기…식량 빗장 거는 세계
세계 주요 농산물 수출국들이 자국의 식량 안보를 위해 곡물 수출에 ‘봉쇄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처음 터진 2020년부터 중동지역의 오만, 아시아지역의 타지키스탄, 키르키즈스탄 등 일부 국가가 밀·옥수수·쌀 등 주요 곡물에 대해 일찌감치 ‘무기한’ 수출금지령을 내렸다. 그러다 올해 들어 터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세계 각국에 ‘식량안보’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트리거가 됐다. 전쟁이 터지자 10여개 국가들이 너나할 것 없이 핵심 곡물에 대해 빗장을 걸어잠근 것이다.
이달 25일 기준 러시아·우크라이나를 비롯해 16개 국가가 주요 농축산물에 대해 수출금지 및 허가제 등 제한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같은 움직임은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급격히 확산하는 모양새다. 수출제한 품목도 밀, 옥수수, 보리, 귀리, 콩 등 식량용 곡물에서 해바라기유, 팜유 등 1차 가공품으로 번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국제적 ‘식량 창고’ 역할을 해 온 러시아에 대한 수출입 제재에 나서자 되레 수입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을 중심으로 ‘식량 안보’가 뜨거운 화두가 된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인도네시아의 팜유 수출금지 조치다. 세계 각국에 팜유를 가장 많이 수출하는 인도네시아가 갑작스레 수출 중단을 선언하자 한국을 비롯한 다수 수입국에 즉각 충격이 가해졌다. 당장 수입 팜유 가격이 급등했고 과자와 라면 등 팜유를 활용해 만드는 가공식품 기업들은 급히 재고 확보에 나서는 등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인도네시아가 이처럼 강도 높은 조치를 취한 배경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우크라이나는 세계 최대 해바라기유 생산국이자 수출국으로, 세계 수출량의 43%(597만t, 2018~2020년 3개년 평균)를 차지한다. 러시아 역시 해바라기유 연간 수출량 280만t으로, 그 비중이 20%다. 두 나라의 해바라기유 수출 비중만 총 63%에 달하는 셈이다. 해바라기유 최대 공급국가들이 전쟁으로 수출을 멈추자 국제적으로 식용기름 값이 대폭 뛰었다. 그러자 인도네시아 팜유 수출업자들이 비싼 값에 물량을 과도하게 내다 팔면서 정작 내수용이 부족해졌고, 이에 정부가 ‘강제 수출금지’라는 극단적 조치를 취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수출제한 조치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가늠하기 어렵고, 당장 ‘플랜B’도 없다는 점이 문제다. 나아가 이 같은 식의 수출봉쇄 정책이 언제 어디서 더 취해질 지도 예상하기 어렵다. 수출입품목 공급망 상황을 전반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지만, 현재 3~6개월분의 재고량을 보유하고 있어 당장 매대에서 물건이 사라지거나 수급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팜유뿐 아니라 최근 이와 같은 이슈가 산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우려했다.




세종=김혜원 기자 kimhye@asiae.co.kr
세종=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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