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 정책으로 코로나19 전부터 세수 감소인프라 투자 늘리며 중국에 빚 급증반정부 시위 격화하자 통금에 SNS 금지까지

[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코로나19로 관광 산업이 마비되며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최악의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리랑카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수순을 밟고 있다. 물가급등과 식자재 부족 등에 항의하는 시위가 잇따르자 정부는 국가비상사태와 통행금지령을 발동한 데 이어 내각 교체까지 진행하고 있지만, 위기 조짐은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4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은 스리랑카의 국채손실이 심화하며 디폴트를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7월 만기가 도래하는 10억 달러 규모의 국채는 이날 달러당 59센트로 이날 7센트 하락, 2020년 5월 이후 최저가격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통신은 "개발도상국 가운데 최대폭 하락으로, 투자자들이 스리랑카의 부채상환이 어려울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진단했다.

◆스리랑카에 무슨일이 = 스리랑카의 경제불안 요인은 관광수업 감소와 정부의 무리한 국채발행에 따른 대외채무 증가로 요약된다. 2019년 부활절 테러로 국내총생산(GDP)의 5% 가량을 차지하던 관광수입이 줄다가 이듬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인의 발길이 끊겨버린 영향이 컸다. 스리랑카의 관광수입은 2018년 역대 최고치인 43억8000만달러를 기록했지만, 2020년 84.5%, 2021년에는 94%가 급감한다.
항구, 도로 등 대규모 인프라 개발을 위해 중국 등으로 부터 차관을 도입, 기존 외채 상환을 위해 국채를 발행한 점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일각에서는 스리랑카가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에 호응하려다 대외부채의 늪에 빠졌다고 보기도 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향후 10년 내 만기가 예정된 국채는 125억5000만달러(약 15조2419억원)에 달한다.
여기에 2019년 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이 포퓰리즘적 세금감면을 실시해 국가 수입을 약화시켜 둔 악수도 한 몫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유가 급등 악재까지 겹치며 810억달러 경제 규모의 스리랑카 경제는 경기 침체와 급격한 인플레이션에 빠지게 된다. 당국은 금리 인상과 현지 통화 평가 절차, 비필수 물품에 대한 수입억제 조치를 단행했다. 3월 소비자 물가는 한 해 전보다 19% 상승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속도였다.

◆격화하는 시위와 정부의 무력대응= 3년 전 대통령으로 선출된 라자팍사를 향한 스리랑카인들의 불만은 고조되는 추세다. 에너지 수급 불안으로 3월부터 가계와 기업이 매일 정전을 겪었고, 이달 들어서는 정전 시간이 13시간에 달하기도 했다.
주유소에는 줄이 늘어서고, 필수식품은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라자팍사 대통령의 사택 밖에 몰린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기도 했다.
정부는 국가비상사태 선포에 이어 통행금지령,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접근제한 조치 등으로 대응해 민심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시위대는 'GOTA(고타바야 라자팍사 대통령) go home'을 외치고 있으며, 이는 SNS의 해시태그 유행으로까지 번졌다.
최근 대규모 내각 사퇴 과정에서 스리랑카는 난달랄 위라싱게 전 중앙은행(CBSL) 총재를 신임 총재로 지명하기도 했다. 스리랑카는 이날 아지트 니바르 카브라알 현 총재가 집권내각 사임으로 물러나고, 추가적인 통화정책 검토를 무기한 보류한 상태였다.
위랑싱게 총재는 IMF 부총재로 재직하던 2011년 중앙은행 부총재로 임명됐었고, CBSL의 통화정책위원회와 외환준비금관리위원회의 의장을 역임한 바 있다.

◆부랴부랴 대책 내놨지만…단기개선 기대난망= 스리랑카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올해 1월 약 200만명에 이르는 소득지원 대상자를 위한 10억달러 규모의 구제방안을 발표하고, 관광수입 회복을 위해 백신 접종 완료자의 격리를 면제하는 등 돌파구를 모색하기도 했다.
연초에는 인도와 4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실시하고, 중국 측에는 부채상환 재조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코로나19 이전부터 이어진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와 대외채무 증가, 루피화 약세 등이 누적된 경제 위기는 단기간 내에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
스리랑카는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중점협력국으로 올해 한국의 대스리랑카 ODA 확정액은 967억원에 달한다.
최근 한국과의 교역 규모도 회복세에 있었다. 2021년 한국의 대스리랑카 수출은 전년대비 67.3% 증가한 2억8800만달러이고, 수입은 27.8% 증가한 1억4200만 달러를 기록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주요 수출품은 합성고무, 합성수지, 윤활유, 아연도강판, 편직물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편직제의류, 나프타, 직물제의류, 기타 식물성재료, 의류·액세서리 정도다.
김현정 기자 alpha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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