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심나영 기자, 송승섭 기자, 송화정 기자] 경기도 의왕에서 프랜차이즈 피자집을 운영하는 이영은씨는 18일 아침, 텅 빈 가게 귀퉁이에 앉아 주거래 은행 앱을 열었다. 새벽까지 뜬눈으로 희망플러스대출 받는 방법을 검색해 1000만원을 신청했다. "배달의 민족 실적을 보니 부부가 하루 10시간씩 일해서 한달에 115개, 하루에 주문 4개도 안되는 판매 수준으로 버텼더라. 배달시장도 포화상태라 개업한 이후 5개월 동안 손실만 800만원 넘게 났다"는 게 이씨의 이야기였다.
이자 상환 미룬 대출자, 결국 채무불이행 처리
한계기업도 중소기업에 집중
코로나19 사태 이후 폭증한 중소기업 대출(자영업자 포함)이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2년 동안 빚을 내 버티며 상환 연체율과 폐업률은 낮아졌으나 대출 상환이 시작되는 순간 부실채권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3월 대출 만기연장·상환유예 종료를 앞둔 중소기업 대출 잔액 132조원 중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자 상환을 미룬 그룹(원금 잔액 5조원)에선 해마다 10%가량(약 5000억원)이 채무불이행 처리되고 있다.
번 돈으로 은행 대출 이자조차 못 갚는 상태가 3년이나 지속된 ‘한계기업’도 중소기업에 집중돼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가 터진 첫해인 2020년말 기준, 국내 중소기업 가운데 16.2%가 ‘한계기업’이었다. 업종별로는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컸던 숙박·음식업이 전년대비 4.7% 늘어난 43.1%로 집계돼 가장 많았다. 조선업(23.6%), 운수업(22.6%), 자동차업(17.8%), 항공업(16.7%) 등의 업종도 높은 비중을 보였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에 정책자금이 투입되지 않으면 폐업하는 기업들이 속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조사결과 한계기업 처지인 제조업 상장기업의 비율도 지난해 3분기 39.1%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30.4%)보다 많았다. 한계기업보다 더 악화돼 영업이익이 마이너스를 낸 기업도 크게 늘어 작년 2분기 26.1%를 기록했다. 산업연구원은 "향후 금리가 인상된다면 그간 저금리와 코로나19 특별 금융에 의존해 온 부실 징후 기업들 중 일부는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했다.
"욕조 입구를 막아놓고 계속 물을 틀어놓으면 넘치는 것처럼 지금 중소기업, 자영업자 대출 상황이 딱 그렇다"는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의 우려처럼, 다음달 9일 대선 이후 대출 증가세는 더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후보는 "당선 즉시 2차 추경, 코로나19로 인한 빚 탕감"을 들고 나왔고 윤석열 후보 역시 "자영업자에 50조를 지원하겠다"는 공약을 밀고 있다. 금융권에선 "새 정부 인수위원회에서 3월 만기연장·상환유예 종료부터 못하게 막고, 자영업자 대출도 더 풀라고 압박하는 게 다음 수순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자본여력 떨어지는 2금융권이 더 위험

더 큰 문제는 은행보다 자본여력이 떨어지는 2금융권에서마저 중소기업 대출이 폭증했다는 점이다. 가계대출 총량규제로 영업 활로가 막힌 2금융권 업체들이 일제히 기업대출 부문을 강화한 영향이다. 2금융권 대출자의 경우 신용이 낮고 재무구조가 취약한 영세기업도 많아 건전성 관리가 우려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말 기준 저축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규모는 57조2705억원을 기록했다. 43조8065억원이었던 전년말 대비 13조4640억원(30.7%) 늘어났다. 아직 12월 지표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한국은행이 관련 통계를 공시하기 시작한 2013년 1월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세다. 가계대출 영업이 갈수록 어려워졌음을 고려하면 12월도 중소기업 여신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올해도 각 업권이 강화된 총량규제 목표를 받아든 만큼 2금융권 중기대출 증가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다. 연쇄 부도 사태 가능성을 포함해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정부는 대책 준비했다고 하지만
정부는 늘어나는 중소기업 대출과 코로나19 금융지원 종료에 따른 부실 발생에 대비해 선제적 채무조정 지원 방안을 마련해놓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9월 중소기업·소상공인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유예 조치를 오는 3월로 연장하면서 내놓은 개선방안에 따르면 상환이 어려운 차주들은 은행권 자체 지원 프로그램 및 프리워크아웃제도 등을 통해 이자감면·장기분할상환 등을 지원받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신용회복위원회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기존에는 다중 채무자를 대상으로 했으나 단일 채무자도 지원하는 한편 코로나 피해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한시적으로 채무조정 제한을 완화하고 이자율 감면도 확대할 계획이다. 또한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중소법인의 부실 채권을 인수한다. 대상은 금융기관에서 매각할 필요가 있는 고정 이하 여신 및 연체 6개월 이상 경과 채권으로, 담보권 실행 유예 및 분할상환, 채무감면 등을 통해 경영 정상화를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부실 규모가 대폭 늘어날 경우 정부가 추가 대책을 마련하거나 자금 지원을 크게 늘려야 할 수도 있다.
심나영 기자 sny@asiae.co.kr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송화정 기자 pancak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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