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주택자 할 돈도 없고, 마음도 없는데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40대 직장인 A씨는 1주택자로 있다가 자녀 교육 문제로 이사를 결심하고 소위 ‘갈아타기’를 위해 올해 3월 주택을 매입한 후 이사를 한 상태다. 잔금까지는 9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기에 기존에 살고 있던 집을 매물로 내놓은 한편, 6월에는 신규 주택구입목적의 주택담보대출를 받아 중도금을 내기도 했다. 문제는 기존에 살던 집이 전혀 팔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연말까지 기존 집이 팔리지 않을 경우 신규 주택 구입에 대한 잔금 지급은 물론, 은행 대출까지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A씨는 "매도가도 1억원 이상 낮추고 중개업소 수십곳을 발이 닳도록 찾아가봤고, 심지어 수십만원짜리 ‘집 잘 파는 방법’ 상담도 받아봤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다"고 토로했다.
A씨처럼 일시적 2주택자가 된 실수요자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아파트값 급등에 따른 피로감과 금리 인상,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거래절벽’ 현상이 갈수록 심화된 탓이다. 매수세가 줄면서 재고 매물은 쌓이고 있다. 부동산 정보업체 아실에 따르면 10월 중순까지 4만 건을 밑돌던 서울 아파트 매매 매물은 이날 기준 4만6000건에 달했다. 서울 지역 공인 관계자들은 "매물이 늘었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시적 2주택자들은 고가주택 소유자나 투기성 다주택자가 아님에도 다주택자에 대한 세율이 적용되면서 올해 종합부동산세 중과라는 날벼락을 맞은 상태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았을 경우 정해진 기간 내 기존 주택을 처분하지 못하면 대출이 회수되고 3년 동안 관련 대출을 받지 못하게 될 상황마저 처하게 됐다. 지난해 6·17 대책에서 처분·전입 의무기간이 6개월로 더 줄어든 탓이다.
이미 각종 규제가 예고된 가운데서도 집 거래를 원활하게 만들기 위한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나왔다. 하지만 귀를 닫은 정부는 연일 "집값 고점이 꺾였다"고 자평하며 하락 안정세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반면 시장에서는 오히려 내년 집값이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최근에는 내년 대선을 의식한 정부와 여당의 엇박자로 인해 선의의 피해가 잇따르는 모습이다. 집을 팔라며 각종 정책을 내놨지만 정작 팔고 싶어도 팔 수 없게 만든 책임은 누가 져야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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