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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 이르면 내년으로 예상된 SK하이닉스의 중국 우시공장 내 반도체 첨단장비 도입이 미국의 대(對) 중국 견제로 무산될 위기에 놓이면서 하이닉스 뿐 아니라 우리 정부 역시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미중 갈등으로 지지부진한 매그나칩의 중국 자본 매각 건보다 훨씬 풀기 어려운 사안인 만큼 정부도 뾰족한 수를 찾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갈수록 높아지는 미국의 대중 제재 수위에 우리 기업이 희생양이 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22일 정부에 따르면 하이닉스가 국내 도입한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향후 중국에 반출하려면 산업통상자원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전략물자 수출통제를 위한 국제조직인 '바세나르 체제'는 EUV 장비를 수출통제품목으로 지정하고 있다. EUV 장비는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로, 네덜란드가 독점 생산 중이다. 이 장비를 수출하려면 물자가 있는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국내 도입된 장비를 반출할 경우 우리 정부, 네덜란드에서 중국으로 직접 수출시 네덜란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에 따라 하이닉스가 국내에 있는 EUV 장비 반출을 원할 경우 산업부는 대외무역법상 전략물자수출 허가 여부를 15일 이내에 결정해야 한다.
앞서 하이닉스는 지난 2월 4조7500억원을 투자해 ASML과 5년간 EUV 장비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천 공장 D램 생산라인에 최근 EUV 공정을 적용한 점을 감안하면, 1~3년 기술격차가 있는 우시공장에는 이르면 내년 또는 2023년 EUV 장비 도입을 계획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정부 안팎에서는 하이닉스가 국내 도입된 EUV 장비의 중국 반출 허가를 신청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는 삼성전자, 하이닉스 등 우리 기업이 생산하고 있지만,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장비 시장은 미국, 유럽 기업이 주도한다.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우시 공장 첨단화를 추진하려다가 미국에 더 큰 보복을 당하는 사태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이닉스가 EUV 장비 중국 반출을 신청하더라도, 정부가 허가를 내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앞서 매그나칩도 중국 자본에 매각을 추진했지만, 중국과 갈등을 겪는 미국이 제동을 걸면서 우리 정부 역시 기술유출 우려를 이유로 매각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EUV 장비가 수출통제품목으로 지정된 상황에서 기술유출 우려, 국제동향 등을 감안해서 정부가 반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미중 갈등 국면에선 하이닉스의 신청이 들어와도 허가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하이닉스 역시 반출 신청 행위 자체가 주는 시그널이 있고 향후 더 큰 피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의 반대 속에서 중국 반출을 추진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우리 기업들이 미중 테크 경쟁의 희생양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하이닉스의 EUV 장비 독점 사용 후 폐기, 사용 후 네덜란드 반납 등 대안을 찾아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며 "기업 독자적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라 정부가 나서 미국과 이 문제를 협의해야 한다"고 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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