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예대금리 차이에 기댄 국내은행의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행태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 예대금리(예금·대출금리차)차는 11년 만에 가장 많이 벌어졌다. 여신 심사가 강화된 틈을 타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높이며 배짱 장사를 한 영향이다. 국가 경제가 선진국 반열에 오르는 와중에도 국내 금융사들은 여전히 이자놀이에 치중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17일 아시아경제가 22년에 걸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변동추이를 분석한 결과 2000년부터 이날까지 기준금리는 총 44번 변경됐다. 큰 틀에서의 인상·인하 기조는 총 8차례 바뀌었다. 기준금리 영향을 받는 여·수신 금리는 현시점에 가까워질수록 금융사 입맛에 유리하게 움직이는 경향을 보였다.
기준금리가 0.50%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 5월28일부터 0.25%포인트 인상을 단행한 지난 8월까지 예대금리차는 2.07%다. 11년 만에 최대다. 여신금리 인상 폭이 수신금리 인상 폭보다 3배 이상 가팔랐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신규로 취급한 가계대출 금리는 3.18%로 15개월간 0.37%포인트 올랐다. 반면 저축성수신 금리는 1.17%로 0.10%포인트 증가하는 데 그쳤다.
기준금리 인하국면에서는 대출금리를 천천히 내리고, 수신금리를 빠르게 내렸다. 한국은행은 2018년 11월30일 1.75%였던 기준금리를 4차례에 걸쳐 1.25%포인트 대폭 인하했다. 이 기간 여·수신 금리는 각각 3.63%→2.81%, 1.96%→1.07%로 조정됐다. 대출금리는 0.82%포인트 낮아져 기준금리보다 적게 변동됐다. 수신금리 인하 수준(0.89%포인트)보다도 낮았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금리 장사로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규제·유동성 핑계 삼은 '이자수익 극대화' 전략2000년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여·수신 금리 추이와 대조적이다. 2000년 10월에서 2004년 11월까지 기준금리가 2%포인트 내려가는 동안, 여신금리(4.27%포인트)는 수신금리(3.46%포인트)보다 빨리 줄었다. 이후 다시 금리가 인상될 때는 수신금리(2.49%포인트)가 여신금리(1.78%포인트)보다 빠르게 늘며 예대금리차가 좁혀졌다.
예대마진 극대화에 치중하는 분위기는 정부·금융당국의 가계대출 총량규제와 풍부한 유동성 탓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출증가세를 낮추기 위해 은행들이 금리인상이란 수단을 쓰고 있다는 뜻이다. 또 은행으로서는 유동성이 풍부하고 대출도 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수익성 저해를 감수하고 수신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다.
문제는 서민들의 이자부담이 갈수록 높아진다는 것이다. 코로나19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가계부채 규모가 많이 늘어난 상황에서, 대출금리만 빠르게 올리면 금융소비자들의 편익은 크게 줄어든다. 대출이 어려워진 고객들은 은행이 금리를 올려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다. 최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가계대출 관리를 명목으로 진행되는 은행의 가산금리 폭리를 막아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날 오전 기준 1만4000여명이 동의한 상태다.
이러한 영업관행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의 수장이 직접 금리 조정에는 개입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히면서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전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출석해 "시장금리가 오르고 우대금리가 축소되는 추세"라며 "정부가 직접 개입하기 어렵지만 계속 모니터링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