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박선미 기자] IBK기업은행이 올해 연이어 터지는 ‘조’ 단위 국제 소송전으로 고초를 겪고 있다. 올해 초 미국에서 6조원 단위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린 데 이어 최근 홍콩에서 1조9000여억원 규모로 국제 소송을 당한 것이다. 국내 은행들의 해외 진출이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돌발적인 법적 리스크 를 사전에 충분히 검토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무역금융회사 안타니움 리소스 등 8개사로부터 1조860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해 법적 대응 중이다. 원고측이 제기한 손배 청구금액은 15억7640만달러에 환율 1180원을 적용한 것으로 기업은행의 지난해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자기자본의 7.4%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원고측은 기업은행이 신탁업자 지위에서 체결한 매출채권매입계약을 위반했고, 이로인해 손실이 발생했으니 은행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원고측은 지난해 4월 홍콩국제중재센터에 첫 소송을 제기한 후 같은해 12월 손배 청구금액을 4억8700만달러(당시 환율 1093원을 적용하면 약 5324억원)로 확정했다. 하지만 당시 청구금액이 공시 기준에 못 미쳐 시장에 내용이 알려지지 않았었다. 원고측은 최근 손배 청구금액을 더 늘려도 된다는 판단하에 금액을 확장해 신고했고, 이를 홍콩국제중재센터가 확인해 기은에 알렸다.
기은은 원고측이 청구한 손배 금액(1조8601억원)을 다 물어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강력히 대응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원고측과 매출채권매입계약을 직접 맺도록 지시한 자산운용사가 부실화되면서 벌어진 일"이라며 "신탁업무를 담당한 수탁사 기업은행에까지 손배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기은은 수탁사로서 투자신탁재산을 한도로만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은은 이와 관련해 "이번 손배 청구는 매출채권매입계약의 준거법인 영국법을 따르더라도 근거가 없다"며 "소송전이 진행되더라도 손배 결과가 기은의 재무상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자신했다.
기은이 과제로 안고 있는 ‘조’ 단위 국제 소송은 또 있다. 올해 1월 1998년 발생한 주 케냐·탄자니아 미국 대사관 테러 사건 피해자들이 기은을 상대로 55억2109만달러(약 6조5011억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건이다. 배상청구금액은 기은 자기자본의 25.26%에 달한다.
미 법원은 이란 정부가 테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손해배상을 해야한다는 판결했고, 원고측은 이란 정부로부터 테러 배상을 받지 못하자 기은을 상대로 이란 중앙은행 명의 계좌에 있는 자산을 배상금으로 지급해달라고 요구하며 소송을 걸었다. 미국이 2018년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면서 기은의 이란 계좌는 동결된 상태다.
올해 7월 미 법원은 ‘불편한 법정지(forum non conveniens)’ 원칙에 근거해 원고측이 제기한 소를 각하하고 한국에서 소송을 진행하라고 명령했다. 원고측은 불복해 항소, 현재 법적다툼을 진행 중이다. 원고측이 미 법원 판결 결과에 굴복해 한국에 다시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한국·미국·이란 간 외교 관계까지 얽혀 있는 문제로 쉽게 결론이 나지 않고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들의 글로벌 진출이 적극적인 상황에서 국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법적인 리스크도 사전에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선미 기자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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