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이즈 공동 창업자 크리스토 카르만(오른쪽)과 타베트 히링쿠스 / 사진=와이즈 홈페이지 캡처
[아시아경제 임주형 기자] 기술의 발달은 '돈의 국경'마저도 허물었다. 영국의 해외 송금 업체 '와이즈' 이야기다. 지난 2010년, 대형 은행들의 불편한 해외 송금 서비스에 불만을 품은 한 에스토니아 출신 이주노동자가 설립한 스타트업에서 시작한 와이즈는 불과 11년 만에 전세계 80개국에서 수천만명이 이용하는 테크 기업으로 거듭났다. 와이즈는 어떻게 영국 핀테크(fintech·금융 기술) 업계의 간판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은행 수수료에 지쳐…이주 노동자가 설립한 '와이즈'
와이즈는 지난 2010년 영국의 수도 런던에 설립된 스타트업이다. 당시 사명은 '트랜스퍼와이즈(transferwise)'였다. "현명하게 송금하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다. 와이즈를 창업한 이들은 일찍이 동유럽의 소국 에스토니아에서 일자리를 찾아 영국으로 건너온 IT 노동자 두명으로, 두 사람의 이름은 각각 크리스토 카르만과 타베트 히링쿠스였다.
당시 두 사람에게는 문제가 있었다. 영국의 거대 회계기업 '딜로이트'에서 일하던 카르만은 파운드화로 월급을 받았지만 고향에 있는 가족에게 유로화로 돈을 보내야 했다. 반면 히링쿠스는 유로화로 월급을 지급 받았지만 영국에서 살려면 파운드로 환전해야 했다.

영국 핀테크 기업 '와이즈' 로고 / 사진=위키피디아 캡처
두 사람은 대형 은행의 환전·해외 송금 시스템에 의존해 파운드화와 유로화를 교환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은행들이 환전과 송금의 대가로 터무니없이 높은 수수료를 요구했을뿐더러, 서비스 이용에 드는 시간도 너무 길었다. 자칫 환율이 바뀌어 거래 시간 당시보다 더 큰 손해를 보는 일도 흔했다.
이 문제는 크리스토와 히링쿠스가 창업을 결심한 2010년대에 특히 심각했다. 당시 런던에는 유로존(Eurozone·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대륙 통화 지역) 경제 위기로 인한 실업난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해 온 노동자들이 수십만명 이상에 달했는데, 이들 모두 환전·송금 관련 문제를 겪고 있었다. 높은 수수료를 지불하느라 팍팍한 외국 생활이 더욱 쪼들리기 일쑤였다.
소비자들의 이런 불만을 감지한 크리스토와 히링쿠스는 자신들이 직접 나서 은행보다 더욱 간편하고 저렴한 송금 서비스를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IT 기술을 응용한 새로운 송금 체계를 구축했다. 트랜스퍼와이즈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IT 기술 접목해 기존 금융업계 뒤흔들다
트랜스퍼와이즈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할까. 사실 매우 간단하다. 트랜스퍼와이즈는 환전·송금 서비스를 시행하는 모든 나라에 자신들의 전자 지갑을 만들어 뒀다가, 필요할 때 돈을 꺼내 고객들에게 지급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 사는 A씨가 미국에 사는 B씨에게 돈을 보내려 한다고 가정해 보자. 트랜스퍼와이즈는 A씨가 보내려는 파운드화의 액수 정보를 받은 뒤, 실시간 환율을 적용해 그와 동일한 가치의 달러화를 자사의 미국 계좌에서 빼내 B씨에게 전송한다. 이후 A씨의 계좌에서 송금액을 받아 자사 영국 계좌에 담는다.
즉, 실제로 A씨와 B씨 사이에서는 거래가 발생하지 않는다. 대신 A씨가 보낼 액수와 B씨가 받을 액수만큼 트랜스퍼와이즈의 영국·미국 계좌가 각각 지불·수령을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을 통해 트랜스퍼와이즈는 복잡한 국제 송금 절차 없이 사실상 실시간에 가까운 환전·송금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기존 금융업에 IT 기술을 접목해 훨씬 경쟁적인 서비스를 만들어낸 사례다.

와이즈는 기존 대형 은행들의 비싼 수수료 문제를 꼬집는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쳐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 사진=와이즈 유튜브 채널 캡처
트랜스퍼와이즈는 첫 공개와 동시에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설립 이후 10년 만인 지난해까지 누적 13억달러(약 1조5500억원)의 벤처 투자금을 유치했으며, 지난 7월에는 기업 명칭을 '와이즈'로 바꾸고 런던 주식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하기까지 했다. 13일 기준 와이즈의 시가총액은 92억파운드(약 15조원)에 이른다.
사업 초기 특유의 공격적이면서도 '발칙한' 마케팅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은행 환전 서비스의 비싼 수수료 문제를 꼬집으며 트랜스퍼와이즈는 투명한 요금제를 운용한다는 취지로 지난 2014년 '낫씽투하이드(nothingtohide·아무것도 숨길 게 없다)' 나체 시위를 진행, 소비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이로 인해 기업은 매년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매출은 매년 40~50%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에 공개된 실적인 지난 1분기 매출은 약 1억2350만파운드(약 2000억원), 같은 기간 동안 처리한 송금액은 무려 164억파운드(26조원)에 달했다.
◆자산 관리 확장 나선 와이즈, 제2의 페이팔 될까
와이즈는 이제 영업 확장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난 8월 와이즈는 '에셋(assets·자산)'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자산 관리 서비스를 공개했다. 단순히 고객들의 돈을 다른 화폐로 바꾸거나 해외로 송금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주식 등 여러 자산을 관리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본격적인 금융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글로벌 투자 전문 업체 '모틀리 풀'은 와이즈의 행보를 세계 최대 온라인 송금 기업 '페이팔'과 비교하고도 했다. 모틀리 풀은 와이즈의 성장사가 페이팔의 창업 초기와 유사하다며 "페이팔이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시장 표준으로 자리 잡았듯이 와이즈도 비슷한 공세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페이팔은 단순히 송금 체계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서비스들을 축적해 '슈퍼 앱'으로 거듭났다. 이제 와이즈가 이 길을 점진적으로 따라가려는 것 같다"며 "페이팔은 전자상거래 같은 새로운 기술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와이즈가 미래에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아직 판단할 수 없지만, 이 핀테크 회사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은 매우 흥분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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