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류태민 기자] 정부의 공급 확대 방안이 곳곳에서 벽에 부딪치고 있다. 이달말 ‘13만호+α’ 규모의 신규택지를 공개하는 등 공급확대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신규 공공택지는 물론 공공재개발, 도심공공 복합개발사업 등이 삐걱거리는 모습이다. 주민 의견 수렴 절차 없는 일방통행식 공급 대책의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동작구 흑석2구역, 동대문구 신설1구역, 성동구 금호23구역 일부 주민들은 공공재개발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이날 오전 서울시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공개질의서도 전달할 계획이다.
공공재개발은 지난해 8·4대책에서 정부가 제안한 새로운 공급 방식이다. 공공이 정비사업에 참여해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물량의 최대 50%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대신 여러 인센티브를 주는 제도다. 흑석2구역과 신설1구역은 1차 후보지, 금호23구역은 2차 후보지로 선정됐다.
비대위는 "서울시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주택공사(SH)가 지주의 의견을 무시한 채 사유재산권 침탈을 시도하고 있다"며 "삶의 터전을 빼앗고 대다수 지주의 재산권 침탈을 획책하며 졸속 추진되는 공공 재개발 사업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14일에는 여의도주민협의회가 공공 개발을 반대하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부지 앞에서 시위를 열기도 했다. 정부는 8·4대책에 따라 여의도 63빌딩과 성모병원 사이에 위치한 LH부지에 공공주택 300가구를 건설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임대주택 건설 계획은 서울시의 기존 계획에 심각하게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협의회는 2차에 걸친 대대적인 청원 운동을 벌였고 현재 8000명이 넘는 주민들이 반대 의견을 담은 청원서에 서명했다.
협의회는 무엇보다도 주민 열람이나 주민 의견 수렴 등의 아무런 절차 없이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점에 반발했다. 조재숙 회장은 “여의도 주민들은 그동안 정부와 서울시의 규제로 재건축의 길이 막혀 반백년이 지난 아파트에서 안전을 위협 받으며 힘겹게 살아왔다"며 "주민들과의 기초적인 소통도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정부에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 소통 절차가 없으니 목소리도 이런 방식으로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주민들의 반발이 심해지면서 과천청사 4000가구 공급 계획은 이미 틀어진 상태다. 이에 더해 1만 가구로 가장 규모가 큰 노원구 태릉골프장도 환경파괴·교통대란 등을 이유로 극심한 반대에 부딪히며 공급계획 차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공복합개발 후보지 철회 요청 잇따라… 공급 계획 차질 빗나
2·4대책의 핵심인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 역시 후보지들의 반대가 속출하며 난항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6차 도심 공공주택복합사업 후보지 선정된 서울 중구 약수역 인근 지역 주민들은 지난 14일 사업철회 요청을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도심 공공주택복합 개발에 반대하는 모임인 ‘3080공공주도반대연합회(공반연)’에 합류했다고 밝혔다. 약수 역세권 일대는 1324가구 대규모 공급 예정지다.
약수 역세권 비대위 관계자는 "제대로 된 사전조사나 주민동의 없이 갑작스럽게 후보지로 지정되면서 주민들의 사유재산권이 침해받고 있다"면서 "반대 의사를 가진 주민 동의를 모아서 국토부에 공식적으로 사업철회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업에 반발하는 다른 지역에서도 주민 반발이 거세지는 모양새다. 최근 약수역 인근 구역을 시작으로 영등포역 인근, 미아사거리 동측, 신길15구역, 미아역 동측, 인천 굴포천 등 곳곳 지역에서 공반연에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특히 도심 공공복합사업 뿐만 아니라 2.4대책 일환인 주거재생혁신지구 후보지 대전 대덕구 주민들도 사업에 반발하고 나섰다.
올해 초 2·4대책을 통해 처음 도입된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은 자력 개발이 어려운 낙후 지역의 사업성을 개선해 공공 주도로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후 현재까지 6차례에 거쳐 56곳의 후보지를 공개했다. 공반연 측은 이 중 절반에 가까운 26곳의 후보지에서 현재 연대에 참여한 상태라고 밝혔다.
곳곳에서 주민반발이 거세지면서 사업 이탈 지역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제대로 된 사전조사나 주민동의 없이 지구 지정만 한다고 사업이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금처럼 사업 철회를 요청하는 지역이 계속 늘어나면 공급계획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부 주택 공급 대책의 잡음이 갈수록 커지면서 주택공급에 대한 불신에 수도권 집값이 날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이미 발표된 예정지조차 추진이 더딘데 정부가 용산 한가운데 신규택지를 개척한다고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냐"면서 "신규택지로 1000만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해도 집값은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일갈했다.
임온유 기자 ioy@asiae.co.kr
류태민 기자 righ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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