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 정부는 임기 초기 4차 산업혁명 대응계획을 통해 AI·빅데이터·자율주행 기술개발의 적극 지원을 천명했다. 이에 따라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지원책을 가동, 지속적으로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유행 이후에는 국가발전전략으로 한국판 뉴딜 계획을 발표하고 실행에 임하고 있다.
과거 대규모 국가재원 투자계획과 달리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와 이를 전개하기 위한 관련 산업 육성정책을 동시에 실행하고자하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최근 필자가 종사하는 SOC분야에서도 체감형 공공사업 시행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포착돼 관련 업계는 물론 일반 시민에게도 주목을 받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2월 ‘ITS(지능형교통체계) 혁신기술 공모사업’이라는 유래 없는 공공사업 발주방식을 시도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동안의 공공사업 발주는 수요기관에서 물품 또는 공사의 목적물을 설계해 정해진 요구 규격과 물량을 바탕으로 입찰계획을 수립하고 낙찰자를 선정해 사업을 시행하는 형태다. 이 같은 사업발주방식은 예산 규모의 범위 내에서 요구 규격과 물량을 확정해 사업자로부터 제안을 받거나, 적격심사 후 낙찰금액에 따라 낙찰자를 선정하는 등 이른바 국가계약법 틀 안에서 일반적으로 이뤄진다. 사전 설계를 통해 예산을 낭비하지 않고, 정해진 규격대로 납품 받거나 공사를 시행하므로 안정적으로 공공사업을 추진하는데 초점을 맞출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ITS 혁신기술 공모사업’은 제안자의 자격과 기업의 규모 등을 따지지 않고 사업 제안의 기회를 부여해 국민이 실생활에서 항상 접할 수 있는 ITS에 혁신적 서비스를 도입하고자 기획됐다.
기존 발주방식에서 혁신기술을 도입하기란 간단하게 실천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기획을 통해 설계를 하고, 발주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이미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는 자재나 제품을 기초로 단가와 물량을 확정해 전체 설계금액을 산출해야한다. 이후 계약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등 이런 제도의 틀을 준수해 발주해야하는 상황에서 혁신기술을 도입하기 위해 소요되는 시간은 결과적으로 신속하게 예산을 집행하는데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산하 민간단체인 한국지능형교통체계협회를 이번 공모의 전담기관으로 지정하고, 일련의 과정을 일임해 혁신기술 도입이라는 본 취지와 목적을 살리면서 공모사업을 추진했다. 파격적인 조건도 내걸었다. 참가자격과 구축사례, 보급률 등 공공사업 발주의 기존 틀에서 따져야만 했던 조건들을 모두 제거하고, 순수하게 아이디어와 서비스 실효성에 초점을 두고 제안서를 접수하고 평가할 예정이다.
보수적 시각에서는 공공재원이 투입됨에도 불구,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공모방식이 무모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려는 2단계를 거치는 공모 제안 방식으로 해소했다. 먼저 1단계 제안은 제안의 참신성과 파급효과를 중점적으로 평가해 후보군을 압축하고, 선정된 후보군을 대상으로 2단계에서 상세화된 제안서를 추가 접수 받아 사업 시행능력과 서비스 실현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방식을 말한다.
2월 말, 1단계 제안에 대한 접수와 평가가 진행됐다. 최초 혼란과 흥행 실패 우려와는 달리 개인과 사업자, 연구기관을 포함해 무려 57개 참가의향서가 접수됐다. 공공발주를 위한 설계에서 착안할 수 없었던 참신한 아이템들도 다수 제안됐다고 한다. 이 공모사업은 총 100억 원 규모로, 국토부의 여느 사업과 비교해 크지 않는 사업 규모지만, 민간주도의 혁신기술 공모사업으로서 첫 단추를 잘 끼운 파격 발주방식으로 좋은 선례를 남길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향후 ITS 혁신기술 공모사업과 같은 완전 개방형 공모형태의 공공사업발주 방식이 다른 분야에서도 적용되길 희망한다. 효율성과 혁신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획기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선하 대한교통학회장(공주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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