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공업단지.
[아시아경제 송승섭 기자] "정비사업이요? 그럼 공장 문 닫아야죠."(서울 문래동 A용접사 대표)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의 도심 주택 공급 확대 방안으로 제시된 준공업지역 개발사업 추진이 본격화하면서 사업 성공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국토부와 서울시가 7일부터 '민관 합동 준공업지역 순환정비사업' 공모에 나선다고 전날 밝히면서다. 순환정비사업이란 철거되는 건물의 소유자나 세입자에게 이주처를 제공하고 여기에 새로운 건축물을 올리는 방식이다. 인근에 산업시설이 입주할 수 있는 '앵커(Ancor)'를 짓고 빈 공장 부지에는 주거시설을 짓게 된다.
특히 이번에 추진하는 순환정비사업은 공공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토지주와 공동 시행사로 참여해 노후 준공업지역에 산업ㆍ주거 복합공간을 조성하는 것이다. 시는 앞서 주거시설 확대를 위해 산업용지 확보 비율을 50%에서 40%로 낮출 수 있도록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한 상태다.
생계 터 잃을라…기대 보다는 걱정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기자가 최근 방문한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일대 준공업지역은 오히려 기대보다 우려가 큰 분위기였다. 개발로 자칫 삶의 터전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문래동에서 15년 넘게 판금 작업을 해온 양모(51)씨는 "공장 작업은 대부분 소음과 먼지를 유발하기 때문에 주거지와 조화되기 쉽지 않다"며 "다른 입주 시설로 가야 하는데 여의치 않아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관할 영등포구청은 최근 일부 재개발 과정에서 노후 공장에 인근 지식산업센터 입점을 권유하고 나섰지만 업체들은 현실적으로 무리라는 입장이다. 이 지역에서 철공소를 운영하는 최모(63)씨는 "무거운 중장비 기계를 이용하는 공장이 많아 이사 비용만 수천만 원씩 들 것"이라면서 "기계 작동 시 소음과 진동을 유발하기 때문에 2층 이상에는 입주하기도 어렵다"고 비판했다.
"섣부른 변화, 본연의 기능 상실 부작용"인근 구로구 온수산업단지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온수산업단지에서 철물점을 운영하는 B씨는 "여기는 집을 얼마나 지을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산업을 더 활성화시킬 것이냐를 고민해야 하는 곳"이라며 "노후 공업시설 현대화를 위해 규제를 완화해서 증축 등을 허용해주는 게 더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지역의 한 공장주 역시 "대부분 공장에 대형 기계가 설치돼 있어 지식산업센터나 앵커시설로의 이주는 비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공업지역을 주거지역으로 바꾸는 식의 섣부른 변화는 본연의 기능을 상실하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공청회에서 "일부 공업지역 개발 사례를 보면 용도지역 변경 등으로 지식산업센터 등을 건립하는데, 공업지역이 가져야 할 기능을 상실했다는 게 문제"라면서 "미국엔 공업지역 건물주가 수익이 많이 나는 근린생활시설이나 주거지역으로 바꾸는 것을 방지하는 인센티브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영성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역시 "우리나라 공업지역은 그간 관리 및 지원 방안이 전혀 없었다"며 "공업지역이 다른 용도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래동 공업단지의 한 철공소. 일대 종사자들은 "중장비 기계 사용으로 먼지와 소음이 심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주거복합시설에 들어가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준공업지역이란공업지역 가운데 경공업이나 환경오염이 적은 공장을 수용하는 곳이다. 전용공업지역 및 일반공업지역과는 달리 주거시설과 상업ㆍ업무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 현재 서울의 준공업지역은 총 1998만㎡로, 주로 ▲영등포구(502만5000㎡) ▲구로구(428만㎡) ▲금천구(412만㎡) 등 서남권에 집중돼 있다. 성동구에도 205만㎡의 면적이 지정돼 있다. 과거 1970~1980년대 성장기에 중요한 일자리 기반을 마련했지만 산업 고도화 과정에서 점차 기능을 상실하며 노후화를 겪고 있다.
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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