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출생아 수 감소라는 인구 구조적 절벽보다 더 무서운 속도로 모체·소아 진료 인프라가 해체되고 있다.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신생아중환자실(NICU) 전공의 지원이 사실상 전무하며, 이는 단순한 인력 부족을 넘어 필수의료 생태계의 존립을 위협하는 신호다. 최근 지방의 분만 공백과 소아 응급실 셧다운은 필수의료 붕괴가 눈앞에 닥친 국가적 재난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 위기를 극복하고 소아·분만 의료 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단편적 손실 보충을 넘어 행위별 수가의 구조적 혁신, 사법 리스크 완화 및 공제 체계 구축, 그리고 대대적인 국가 재정 투입이 입체적으로 결합되어야 한다.
1. '산과-NICU' 연계성의 특수성 반영과 거점병원 특별 지원
대한병원협회 유경하 회장은 2026년 5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과의 면담에서 "고위험 분만 체계는 산과 진료와 NICU 진료가 동시에 수행되어야만 유지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산과 의사가 있더라도 신생아 중환자를 담당할 소아청소년과 인력이나 NICU 인프라가 없으면 분만실을 가동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 분만 공백을 막기 위한 거점병원 지정 및 당번제 운영 등은 임시방편일 뿐이며, 상시 인력 대기 비용과 적자를 개별 병원의 사명감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한계에 다다랐다. 정부는 거점병원 및 당번제 운영에 따른 실질적 손실을 전액 보전함은 물론, 산과-NICU 연계 인프라 유지를 위한 파격적인 특별 재정 지원을 즉각 단행해야 한다. 병원계 역시 경영진과 현장 전문가가 참여하는 '소아·분만 필수의료 정상화 TF'를 가동하여 실현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고 정부와 다각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2. 행위별 수가의 한계 극복과 '공공정책수가'의 전면 확대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필수의료 보상 체계 개편은 고위험·고난도 분야에 대한 국가 재정 투입 의지를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존 검사 중심 과보상 구조에서 벗어나 인력 투입과 위험도가 과중한 산과·소아·응급 분야로 보상 축을 이동시킨 방향성은 타당하다. 산모의 중증도, 재태주수, 체중, 지역 불균형을 고려해 권역 모자의료센터 중심 보상을 차등화하고, 고위험 분만 및 NICU 입원료 가산을 상향한 점도 현장의 요구를 일부 반영한 성과다.
그러나 대한병원협회가 강조해 왔듯, 단순한 행위별 수가 인상만으로는 고사 직전의 인프라를 살릴 수 없다. 환자 수가 적더라도 24시간 진료 체계를 유지해야 하는 지역 특성을 고려할 때, 진료량과 상관없이 기본 인프라 유지 비용(Stand-by cost)을 보장하는 공공정책수가 및 사후보상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 지방 거점병원에 대한 지역 우대수가 가산 폭을 파격적으로 올려 의료진이 현장을 지킬 실질적 유인을 제공해야 한다.
3. 일본 사례의 시사점: '무과실 보상제도'의 발전과 사법적 안전망 구축
수가 인상과 더불어 필수의료 현장을 지키기 위한 핵심 과제는 사법적 위험(Legal Risk)과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정부의 '필수의료 고액 배상보험 지원 사업'을 통한 보험료 국고 지원은 의미가 있으나, 형사 처벌의 공포와 높은 자기부담금 구조는 필수의료 기피를 해결하기에 한계가 명확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한병원협회 차원의 '필수의료 배상책임 공제조합' 신설이 시급하다. 민간 보험의 손해율 증가에 따른 보장 한도 문제를 넘어, 병협 주도 공제조합에 정부가 재정을 출자하는 구조를 만든다면 사고 배상 위험을 안정적으로 분산할 수 있다.
나아가 일본의 '산과 의료보상제도(産科医療補償制度)1)' 발전사는 구체적인 이정표를 제시한다.
○ 2009년 제도 도입과 보상 구조
- 일본은 분만 중 발생한 중증 뇌성마비 아동(신체장애 1·2급)에 대해 과실 유무와 무관하게 일시금 600만 엔과 20년 분할금 2,400만 엔을 합쳐 총 3,000만 엔(약 2억 7천~3억 원)의 보상금을 공공 안전망으로 지원한다.
○ 재원 조달 및 과실 분리 메커니즘
- 이 제도는 산모의 건강보험 '출산육아일시금'에 보상제도 부입금2)을 가산해 재원을 조달하며 공적 보험과 연동된다. 특히 '보상(환자 구제)'과 '원인 분석(재발 방지)'을 엄격히 분리해 원인 규명 보고서가 분쟁 소송의 증거로 악용되지 않도록 설계함으로써 의사의 사법 리스크를 대폭 낮췄다.
○ 기준 완화 및 2025년 '특별급여 사업' 확장
- 2022년 재태주수 28주 이상이면 원칙적으로 보상 대상에 포함하도록 요건을 완화한 데 이어, 2025년 1월부터는 과거 엄격한 기준 탓에 소외되었던 아동·가족을 구제하기 위해 '산과 의료 특별급여 사업(1,200만 엔 일시금 지원)'을 5년간 한시 시행하며 사각지대를 메우고 있다.
한국 역시 단발성 보험료 지원을 넘어 불가항력적 의료사고에 대해 국가가 100% 책임지는 '전면적 무과실 국가보상제도'를 확립하고, 형사처벌 감경·면제를 명시한 '필수의료 특별법'을 완수해야 한다.
4. 결론: 필수의료 정상화를 위한 대대적인 국가 재정 투입
소아 응급, 신생아, 고위험 분만 현장의 인력 유출은 골든타임을 넘어 매우 위급하게 진행되고 있다. 거점병원 적자 보전, 공공정책수가 과감한 투입, 병원협회 배상책임 공제조합 신설, 그리고 무과실 보상제도의 국가 책임화 없이는 소아·분만 의료 인프라의 소멸을 막을 수 없다.
소아·분만 의료는 시장 논리에 맡길 수 있는 일반 서비스가 아닌 국가의 미래가 걸린 필수 공공재다. 단순 예산 재배치를 넘어 국가 재정의 파격적이고 대대적인 전면 투입이라는 결단이 필요하며, 정부와 의료계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