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이지원 기자] 한독이 수면제 중심의 불면증 사업을 '측정-치료-재평가'까지 확장한다. 환자의 수면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적절한 치료를 연결한 뒤 다시 효과를 측정하는 구조를 만들어 분절된 수면 진료를 하나의 흐름으로 잇겠다는 계획이다.
한독은 9일 서울 강남구 SJ쿤스트할레에서 'RE:SLEEP 한독 슬립 사이언스, 디지털 기술로 연결하는 수면 건강의 새로운 가능성' 미디어 세션을 열고 수면 비즈니스 전략을 공개했다. 이날 행사에는 한독의 디지털헬스케어 파트너인 웰트와 에이슬립이 함께했다.
한독은 기존 수면 치료제에 웰트의 디지털 기반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의료기기 '슬립큐', 에이슬립의 디지털 수면 기록 의료기기 '크로노트랙'을 연결해 수면 상태를 측정하고 치료한 뒤 다시 변화를 확인하는 구조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모델은 향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 영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한독 김윤미 전무 발표자료 중 일부.
"제품 아닌 환자에서 시작"...한독, 수면으로 디지털헬스케어 확장
한독 전문의약품 및 디지털헬스케어 비즈니스를 총괄하는 김윤미 전무는 수면을 단순한 피로나 삶의 질의 문제가 아닌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건강 영역으로 봤다.
국내 수면장애 진료 환자는 2012년 61만7000명에서 2025년 134만6000명으로 약 2.2배 늘었다. 14년 연속 증가세로 연평균 증가율은 6.2%다.
수면 문제는 특정 진료과에만 머물지 않는다. 한독에 따르면 수면제 처방 환자는 내과 비중이 30.3%로 가장 높았고 일반의 19.7%, 정신건강의학과 16.3%, 신경과 9.4%, 가정의학과 5.0% 등 여러 진료과에 분포해 있다.
김 전무는 수면 문제가 고혈압과 당뇨병, 비만, 폐경 등과도 맞물려 있다고 밝혔다. 수면 문제가 여러 만성질환과 연관돼 있는 만큼 수면을 기존 의약품 사업과 디지털헬스케어를 연결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만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를 예로 들며 수면 역시 개인이 참고 견뎌야 할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의료가 개입해 관리할 영역으로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환자 증가에 비해 현재 수면 진료는 진단과 치료, 이후 관리가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진단 단계에서는 일정 기간 수면 패턴을 살펴야 하지만 직접 작성하는 수면일지는 순응도에 한계가 있다. 수면다원검사(PSG)는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일상적으로 활용하기에는 접근성 부담이 있다.
치료에서도 공백이 있다. 인지행동치료(CBT-I)는 국내외 주요 가이드라인에서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로 권고되지만 시간과 전문인력, 접근성 등의 제약으로 실제 활용은 제한적이다. 치료 이후에도 환자의 기억과 주관적인 보고를 중심으로 경과를 확인하는 경우가 많아 치료 전후 수면 변화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에 한독은 수면 상태를 확인하고 적절한 치료를 연결한 뒤 치료 반응을 다시 측정하는 '지속관리(Continuous Care)'를 수면 사업의 방향으로 제시했다. 이후 진료실 밖에서도 관리가 이어지도록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한독은 2024년 디지털 사업부를 신설한 데 이어 올해 4월 해당 조직을 전문의약품 조직 산하로 이동시켰다. 디지털헬스케어를 별도 신사업으로 두기보다 기존 의약품과 의료진 네트워크에 디지털 기술을 결합해 실제 치료 과정에서 활용하겠다는 방향이다.
최근 에이슬립과 협업한 배경도 이와 연결된다. 기존 수면 치료제와 웰트의 디지털 인지행동치료라는 치료 선택지는 있었지만, 어떤 환자에게 어느 시점에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하고 치료 전후 변화를 확인할 객관적인 측정 영역을 보완할 필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김 전무는 "한독의 수면 비즈니스는 제품이 아닌 환자에서 시작한다"며 "진단과 치료, 관리가 따로 작동해 온 수면 영역을 하나의 흐름으로 잇는 것이 한독 슬립 사이언스의 목표"라고 말했다.
에이슬립 홍준기 CTO 발표자료 중 일부
크로노트랙, 수면 측정부터 환자 유형 구분·치료 후 재평가까지
한독의 수면 전략에서 에이슬립의 '크로노트랙'은 치료 전 수면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 이후 변화를 '다시 측정'하는 역할을 맡는다.
에이슬립 홍준기 CTO는 현재 수면 진료가 환자의 기억이나 직접 작성한 수면일지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며, 누구에게 어떤 치료를 적용할지와 치료가 실제 효과를 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수면 기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로노트랙은 별도의 장비를 몸에 부착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활용해 14일간 수면-각성 리듬을 기록하는 디지털의료기기다. 스마트폰 마이크로 잠자는 동안 발생하는 소리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총 수면시간과 수면효율, 입면까지 걸린 시간, 수면 중 깨어 있는 시간 등을 데이터로 정리한다.
스마트폰 마이크만으로 수면을 측정할 수 있는 배경에는 소리를 구분하는 기술이 있다. 에이슬립 이동헌 대표는 "수년간 소리의 주파수와 크기, 측정 거리 등을 분석하는 연구를 이어왔으며 함께 수면하는 사람의 소리까지 구분할 수 있도록 기술을 고도화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CTO는 당뇨 환자가 혈당계로 혈당을 측정해 치료와 관리에 활용하듯 수면에서도 객관적인 측정값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환자는 병원에서 처방 코드를 받아 앱에 입력한 뒤 집에서 검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의료진은 측정 결과를 환자의 상태와 치료 방향을 판단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에이슬립은 같은 불면증이라도 수면 양상이 다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측정 결과를 토대로 위상 지연형, 리듬 불규칙형, 과각성 입면형, 수면 유지형, 주관-객관 불일치형, 동반 증상형 등 6개 유형으로 구분하고 유형별 치료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다만 치료 선택 자체는 의료진의 판단 영역이다. 크로노트랙은 판단에 필요한 수면 데이터를 제공하고, 치료 이후 다시 측정해 수면 상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웰트 강성지 대표 발표자료 중 일부
웰트 '디지털'로 불면증 인지행동치료 제공...환자 치료 접근성 향상
크로노트랙이 치료 전후 수면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면, 웰트의 슬립큐는 환자에게 연결할 수 있는 '비약물 치료' 선택지다.
웰트 강성지 대표는 "CBT-I가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로 권고되고 있지만 시간과 전문인력, 접근성 등의 문제가 있다"며 "실제 진료현장에서 환자에게 충분히 제공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웰트는 CBT-I를 스마트폰 앱으로 구현한 처방용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슬립큐를 개발했다.
환자는 의료진의 처방을 받아 기본 6주 동안 수면제한과 자극조절, 인지재구성 등의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환자의 수면 기록을 토대로 개인별 취침·기상 시간을 조정하고 수면교육과 이완요법 등을 제공한다.
웰트에 따르면 임상시험에서 슬립큐 사용 후 불면증 심각도 지수(ISI)는 6.2점 개선되고 수면효율은 14.4% 증가했다. 실제 사용 환경에서 확보한 데이터에서는 이보다 개선된 지표가 확인됐다. 실제로 ISI는 6.4점 개선되고 수면효율은 15.3% 증가했다.
이에 의료기관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강 대표는 "슬립큐의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 등록 의료기관은 7월 누적 1000곳을 넘어섰다"며 "4월 본격적인 영업을 개시하면서 도입 신청 기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도입 신청 의료기관이 1200곳 이상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다만 도입 의료기관 수가 실제 처방 규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강 대표는 "디지털 치료기기가 실제 처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의료진과 환자 모두 새로운 치료 선택지로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현재는 실제 사용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