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삼선병원 배장환 심혈관중재시술연구소장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지역의료를 살리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이다. 표를 잃을까 봐 말하지 않을 뿐 대통령부터 7급 공무원까지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다.”
좋은삼선병원 배장환 심혈관중재시술연구소장은 9일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열린 의료정책연구원 제14차 의료정책포럼 ‘바람직한 지역 의료체계 거버넌스 구축방안 모색’에서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의 수도권 유출을 막는 정책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지역 의료기관에 인력과 재정을 투입해도 환자가 의학적 필요와 관계없이 수도권 대형병원을 선택하는 구조를 그대로 두면 지역의료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배 소장은 충북대병원 순환기내과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며 권역응급의료센터장과 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장 등을 맡았고, 현재 부산 좋은삼선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환자·보호자 요구 아닌 의사 판단으로 상급병원 가야”
배 소장은 지역의료 문제를 해결하려면 거버넌스 구축에 앞서 의료전달체계의 기본 원칙부터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의과대학에서는 환자가 1차에서 2차, 3차 의료기관으로 이동하거나 다시 지역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환자나 보호자의 근거 없는 요구가 아니라 의사가 판단해야 한다고 가르쳤다”며 “지역의료를 살리려면 이 원칙부터 다시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난도 수술이나 특수치료가 필요한 환자는 정부가 교통비까지 지원해 수도권 상급병원으로 신속히 옮겨야 하지만, 지역에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환자까지 수도권으로 이동할 필요는 없다는 설명이다.
배 소장은 “수도권으로 진료받으러 가는 환자가 모두 지역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권역 안에서 진료받도록 행정적인 유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권역 내 의료기관을 이용하면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의학적 필요 없이 권역 밖 의료기관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본인부담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환자가 지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은 표를 잃을 수 있어 누구도 쉽게 말하지 않는다”며 “그러나 지역에서 치료 가능한 환자의 수도권 유출을 그대로 둔 채 의료인력과 재정만 투입해서는 지역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달체계 가르치던 예방의학 교수들, 정부 가면 말 없어”
배 소장은 의료전달체계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예방의학·의료관리 전문가들이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정작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의과대학에서 의료전달체계의 중요성을 가르치던 예방의학·의료관리 교수들이 중앙정부로 가면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의료전달체계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자원을 투입해도 지역의료를 살릴 수 없다”고 말했다.
지역의 예방의학 연구자와 현장에서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의사 사이의 소통이 부족한 점도 문제로 꼽았다.
배 소장은 “예방의학과 임상의학이 유기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며 “임상의사가 보기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 나오고, 예방의학자가 보기에는 임상의사의 주장이 집단이기주의처럼 보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역 보건정책을 자체적으로 설계할 지자체의 역량도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지역 보건의료계획과 자료 분석을 주로 의과대학 예방의학 교수 등이 담당하고 있지만 지자체 보건부서가 이를 실제 의료정책으로 발전시킬 역량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1년에 몇 번 모여 밥 먹는 거버넌스 필요 없어”
배 소장은 지역 거버넌스가 형식적인 협의체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앙정부는 대학병원과 권역센터 중심의 중증·응급진료체계를 구축하고 지자체는 지역의료원을 별도로 운영하면서, 지역 안에서 의료기관별 역할을 조정하는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대학병원과 가까운 의료원에도 동일한 중증진료 기능과 고가 장비를 갖추지만 이를 운영할 전문의와 간호인력은 확보하지 못하는 중복투자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배 소장은 “시간이 갈수록 좋은 건물과 비싼 장비는 있지만 실제 중증환자를 치료할 시스템은 없는 상황이 된다”며 “각 의료기관이 똑같은 기능을 갖추려 하기보다 역할을 나눠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병원과 권역 거점병원은 심근경색 응급시술과 고위험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지역의료원은 회복기·지역사회 재활과 방문진료 등 대학병원이 담당하기 어려운 기능을 맡아야 한다는 제안이다.
환자 상태에 따라 대학병원과 의료원, 지역 의원을 연결하는 의뢰·회송체계를 마련해 한정된 인력과 장비를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배 소장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지역 의료기관이 무릎을 맞대고 기관별 역할과 환자 흐름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며 “지역 거버넌스가 1년에 몇 차례 모여 밥을 먹는 수준에 그친다면 아무런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에서 치료할 수 있는 환자는 지역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고 불균형한 상황에서도 환자를 살릴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정책 설계 역량을 키워야 한다”며 “결국 필요한 것은 정치적 결단”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