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 반 지속됐던 의정갈등이 상대적으로 젊은 전공의와 의대생 위주 투쟁이었던 것과 달리 이번엔 개원가 내부 동향이 심상치 않다. 대체조제 활성화법안,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 강행 등이 개원가에 직접적인 타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최정섭 회장은 "개원가에선 거대 여당의 힘으로 법안들이 통과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집행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 등의 비판으로 회비 수납에도 어려움이 커졌다. 제2의 의정갈등은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아울러 새 정부와 거대 여당이 집권 초기엔 의협과 입장과 목표가 비슷했지만, 의사보다 많은 수를 차지하는 약사, 간호사단체의 로비와 더불어 향후 선거 표심을 의식하고 '포퓰리즘'식으로 다시 각종 악법들을 추진하고 있다는 게 최 회장의 견해다.
현재 대한의사협회 집행부의 대응에 대해선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서 기대감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크다'는 평가도 제시됐다.
그는 "전공의 복귀 과정에서 집행부의 그릇된 판단이 아쉽다. 결과적으로 의협 회장과 대의원회 의장이 큰 결단을 내리지 못했고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서 기대를 했지만 여러 정책법안이 나오면서 우려가 현실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다음은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 최정섭 회장과 메디게이트뉴스 인터뷰 일문일답 내용이다.
Q. 의대 증원 사태라는 큰 갈등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부·여당이 오히려 한의사 엑스레이, 성분명 처방, 의료기사법 등 이른바 '의료 악법'들을 연이어 추진하고 있다. 의정갈등 직후 이렇게까지 의료계를 압박하는 정부·여당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 정권의 의료농단의 종말에는 현 여당과 의협의 바람이 비슷했다. 농단의 종지부를 찍고 의협과 새로운 동지애로 국민을 행복하게 하자는데 의의가 있었고 실제로 (집행부도 이런 이유로 여당에) ‘올인’했다고 생각한다. 비록 현 여당이 과거 간호법, 수술실 CCTV설치법, 의사면허 박탈법 등에 있어 의협에 반하는 법을 통과시켰더라도 이후에는 법안 문제에 있어 합리적 해결 모색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보건복지부 장관 청문회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여당 내의 약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출신 의원, 특히 임상 경험이 부재한 의료사회주의 의사들이 경쟁처럼 국민을 생각한답시고 의협을 향해 질투하듯 쓰나미 법안들을 발의하고 있다. 의사는 14만 명이고 약사는 50만 명, 간호사는 90만 명이다. 해당 법안들은 로비와 선거 표를 의식한 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여당의 책임자는 고유 영역을 벗어나는 행위의 법안들을 자제해야 한다.
특히 미수급 의약품을 미끼로 대체조제 활성화법, 한의사 X-ray 허용법, 약국 내 예방접종 허용법안, 의료기사법, 최근 문제시되는 검체검사 위‧수탁 제도 개편, 건보공단의 특사경법안 등 법안은 결국은 국민에게는 피해와 전공의들에게는 필수의료 기피를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Q. ‘제2의 의정갈등’이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국 협의회장으로서 의대 증원 사태 때와 비교해 지금 개원가 현장의 분위기는 어떤가.
새로운 정권과는 그동안의 여러 악법들 문제로 서운한 관계였지만 이전 정권과는 조금은 다를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오히려 반대로 의협을 향한 고유영역의 선을 넘어서는 법안들이 너무 많고 개원가에선 거대 여당의 힘으로 통과될 것이라는 우려가 매우 크다. 지역 법안 공동발의자에 대한 우려 섞인 목소리와 집행부는 ‘도대체 무엇을 하느냐’ 등의 비판으로 회비 수납에도 어려움이 커졌다. 제2의 의정갈등은 이미 시작됐다.
Q. 올해 1월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장으로 선출되며 ‘의협 회무를 돕고, 바르지 못한 길을 갈 땐 질책과 충언을 하겠다’고 밝혔다. 9개월이 지난 지금, 의협 집행부의 대응을 총괄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나.
정권이 바뀌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집행부의 그릇된 판단이 아쉽다. 6월 대선 전에 여러 번 대선 후보자의 복귀촉구, 교육부의 5월 말 마지노선 등으로 의대생, 전공의 복귀에 있어 집행부 수장과 대의원회 의장이 큰 결단을 내리지 못함에 큰 아쉬움이 있다. 그때 복귀했더라면 더블링, 수련문제의 복잡한 환경이 해결됐을 것이다. 새 정부와의 관계 설정에서 기대를 했지만 최근 발의되는 여러 정책법안으로 우려가 현실이 돼 가고 있다.
Q. 현 집행부의 대응 전략에 보완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과거 정권들에서도 의료계를 옥죄는 법안들이 크게 1~2개씩 대두됐고 그럴 때마다 의협이 중심이 돼 규탄대회를 개최해 막아왔다. 집행부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대처하는 것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하나씩 법안들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것을 보면 결과론적으로 아쉽기만 하다.
집행부는 중요 문제 대처에 있어 의협 내의 주요 거버넌스 회의의 활성화와 더불어 시도회장단의 조력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내부적으로 더욱 긴밀한 관계 설정이 필요하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은 먼저 협의회장들에게 보고하고 소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