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도전문의·교육전담지도전문의·수련지도전문의 역할 나눠야”…실질적인 예산 확대 필요성 제기
12일 대한의학회 학술대회가 개최됐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전공의 수련교육원을 설립하고 역량 기반 수련교과과정과 현장평가 체계를 마련하더라도, 이를 실제 수련 현장에서 수행할 지도전문의의 역할과 지원체계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도 개편이 안착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공의 수련교육 개편의 핵심은 전공의가 실제 환자 진료와 술기 수행 과정에서 필요한 역량을 갖췄는지 지도전문의가 관찰·평가·피드백하는 체계를 구축하는 데 있는 만큼 현실적으로 지도전문의의 교육시간 보호와 보상체계, 정부의 제도적·재정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한국의 1년간의 인턴 수련은 시간 중심 구조로 역량 기반 교육과정의 핵심인 ‘역량 도달 여부에 따른 수료’와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대한의학회는 12일 서울성모병원 옴니버스파크 플렌티컨벤션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한국 전공의 수련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주제로 패널토의를 진행했다.
전공의 수련교육원 출범…"현장 적용형·역량 중심으로 전환해 수련의 질 제고"
이날 박용범 대한의학회 수련교육이사는 전공의 수련교육을 둘러싼 기존 논의가 일회성 과제와 TF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연속성을 갖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박 이사는 “TF가 생겼다가 과제 종료 후에는 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성과물이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어려움들이 있었다”며 “지식과 경험 축적, 연계성, 전문성 심화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의학회는 지난 5월 11일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전공의 수련교육 상설기구로 전공의 수련교육원을 설립했다. 전공의 수련교육원은 교육과정 연구·개발, 평가, 지도전문의 역량 개발, 교육·연수, 수련기관 평가 등을 담당한다.
박 이사는 향후 수련교육 체계가 현장 적용형·역량 중심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련 교과과정을 개발할 때 현장에서 적용 가능한지, 정말 역량을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으로 계속해서 수련 교과과정을 개발·발전시킬 예정”이라며 “역량 중심의 수련 평가 체계를 구축하면 전공의 수련의 질이 제고되고 환자 안전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도전문의 제도와 관련해서도 “적절한 보상 체계가 필요하다. 이 보상 체계가 있어야만 지도전문의 제도가 잘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시간 채우는 수련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평가하는 수련으로
박연철 연세원주의대 교수는 역량 기반 수련교과과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인턴 수련의 법적 목표가 “의과대학에서 배운 지식을 기반으로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고, 독립적으로 환자를 진료하고 처치할 수 있는 역량을 함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역량을 지식·술기·태도 등을 통합한 관찰 가능한 능력으로 정의하고, 관찰 가능하기 때문에 측정과 평가가 가능하다고 짚었다.
박 교수는 "기존 수련이 1년, 3년 등 법령상 정해진 시간을 채우는 ‘시간 기반’ 구조에 가깝다면, 역량 기반 교육은 무엇을 가르쳤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중심에 두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의 인턴 수련은 여전히 법령상 1년으로 정해져 있어 역량 기반 교육과정의 핵심인 ‘역량 도달 여부에 따른 수료’와는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인턴 대상 연구에서 인턴들이 스스로 혼자 진료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며, 현재 수련이 실제 독립 진료 역량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는 전공의가 실제 환자 진료와 술기 수행에서 어느 수준까지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지를 지도전문의가 관찰·평가해야 한다는 의미로, 박 교수 역시 역량 기반 교과과정 도입이 곧 지도전문의의 교육·평가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내 평가는 여전히 서면·최종평가 중심…“현장평가 미흡”
박현미 고려의대 교수는 국내 전공의 수련평가가 실제 진료 현장에서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는 이유로 평가 방식과 인식의 괴리를 짚었다. 현재 전공의 평가는 전문의 자격시험이나 MCQ 등 지식 중심 평가, 로테이션 종료 시점의 최종·서면평가에 치우쳐 있어 실제 환자 진료와 술기 수행 과정에서 전공의가 어떤 역량을 보이는지 충분히 기록·관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교과서나 문헌 지식, MCQ 같은 것은 엄청 잘하고 있다. 전문의 자격시험도 글로 잘하고 있다”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실제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실 안에서 수술을 할 때 평가가 돼야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내 인턴 평가체계에 대해 “최종 평가 중심으로 많이 운영되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공통된 평가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고 기관별로 차이가 컸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교수들이 전공의를 관찰하고 피드백한다고 생각하지만, 전공의들은 이를 공식적인 교육·평가로 인식하지 못하는 차이도 컸다. 박 교수는 “지도전문의들은 많이 하고 있다고 느끼고 계신다. 나는 교육을 잘하고 있고 피드백을 잘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사실상 인턴은 나는 안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차이점이 크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간극을 줄이기 위해 실제 진료 현장에서 전공의의 수행을 직접 관찰하고, 그 내용을 기록한 뒤 피드백으로 연결하는 일터 기반 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가 도구를 활용해 지도전문의와 전공의가 평가 내용을 명확히 공유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 공통 평가 기준과 모바일·온라인 기반 기록 시스템, 교육 시간과 인력 지원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지도전문의 역할·시간·보상 구체화해야 수련개편 작동”
가톨릭의대 박시내 교수는 앞선 논의들이 현장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한국형 지도전문의 제도를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전공의 수련교육이 역량 중심으로 가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수련을 마칠 무렵 적절한 수준의 역량을 갖추고 국민 건강을 돌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지도전문의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 의료 현실을 반영한 지도전문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낮은 수가와 높은 노동강도 속에서 운영돼 온 국내 의료 환경에서는 외국 제도를 그대로 도입하기보다, 현장에서 실현 가능한 방식으로 책임지도전문의, 교육전담지도전문의, 수련지도전문의가 역할을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책임지도전문의는 수련 프로그램과 평가체계를 총괄하고, 교육전담지도전문의는 전공의의 담임교사처럼 교육과 멘토링을 담당하며, 수련지도전문의는 실제 임상 현장에서 전공의를 교육하고 수련 중 평가 일부를 수행하는 구조를 제시했다.
지도전문의가 실제로 전공의를 교육·평가하려면 교육 시간을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책임지도전문의는 업무시간의 30% 이상, 교육전담지도전문의는 15% 이상, 수련지도전문의는 5% 수준을 전공의 교육·평가에 배정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교육에 투입되는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도 필수 조건으로 제시됐다. 박 교수는 역할과 투입 시간에 맞춰 인센티브를 차등화할 필요가 있다며 “적절한 보상이 간다면 더 많은 분들이 전공의 교육에 꾸준히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한국형 지도전문의 제도는 우리나라 의료 현실을 반영해 지도전문의가 수련 현장에서 전공의를 평가하고 피드백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참여 규정을 두고, 그 역할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인센티브로 받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정부 재정 지원 3000억원 불가…법적·제도적·재정적 지원 필요
토론에서는 지도전문의 제도화를 위한 재정 지원과 수련기관 평가 기준에 대한 질의도 나왔다.
임지연 대한의학회 정책이사는 “역량 중심의 전공의 교육과 이를 수행할 지도전문의 제도가 성공하려면 법과 정책, 제도와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며 “국가가 전공의 교육을 지원할 수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지원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임 이사는 책임지도전문의, 교육전담지도전문의, 수련지도전문의의 역할과 보상체계가 제안된 것과 관련해 “지도전문의를 위해 필요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이를 국가가 모두 부담할 것인지, 아니면 수련기관과 어떤 비율로 매칭할 것인지가 궁금하다”고 질의했다.
또 “수련기관 평가에서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는지뿐 아니라 교수 업적평가에 교육 활동이 실질적으로 반영되는지, 지도전문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체인력이 확보돼 있는지도 반드시 평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시내 교수는 예산 문제가 지도전문의 제도화의 핵심 과제라고 답했다. 박 교수는 “현장에서 정말 가장 궁금해하는 부분”이라며 “작년 3000억원 예산이 나오고 올해는 조금 줄어든 상황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해외 사례와 비교해 국내 전공의 수련교육 예산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봤다. 그는 “미국은 1년에 20조~30조원 가까이, 영국은 10조원 정도를 전공의 수련교육 관련 예산으로 받는 것으로 안다”며 “현재 우리가 받는 예산과는 차이가 엄청나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에 8개 과목만 먼저 시행하고, 정부가 책임지도전문의와 교육전담지도전문의에게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예산과 맞물려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훌륭한 의사를 만들어내는 과정은 국민 건강을 담당할 의사를 역량 있게 길러내는 일”이라며 “수련 현장에 있는 지도전문의들의 노고를 국가가 알고, 이에 대한 법적·제도적·재정적 지원이 눈높이에 맞게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