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실제 촬영률은 4%대에 그치면서 제도가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수술실 CCTV를 원칙적으로 촬영하되 환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에만 촬영하지 않도록 하고, 광범위한 촬영 거부 사유를 삭제해야 한다는 제안이 제시됐다.
8일 더불어민주당 서영석·서미화·김남국 의원과 의료정의실천연대, 건강돌봄시민행동 등 단체가 공동 주최한 '수술환자 알 권리 보장을 위한 국회 토론회'에서 히포크라테스 법무법인 이정민 변호사는 현행 수술실 CCTV 관련 의료법의 핵심 문제로 '환자의 요청을 촬영 요건으로 둔 점'과 '광범위한 촬영 거부 사유' 등을 꼽았다.
이 변호사는 "법 시행 2년 경과 후 실제 촬영률이 4%다. 제도는 존재하나 실질적으로 전혀 작동하지 않는 구조"라며 "설치는 의무화했으면서 촬영 의무에 또 요건을 부과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이고, 촬영 거부 사유도 너무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현행 의료법은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청하는 경우 의료기관이 수술 장면을 촬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환자가 촬영을 원하더라도 이를 먼저 요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환자 절반 이상은 수술실 CCTV 촬영을 요청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법 시행규칙상 의료기관은 안내문 게시 등의 방법으로 촬영 가능 여부를 알리도록 하고 있지만, 환자에게 촬영 요청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직접 설명하도록 한 규정은 없다.
이 변호사는 촬영 제도를 알고 있더라도 수술을 앞둔 환자가 의료진에게 먼저 촬영을 요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수술은 의료진을 믿고 전적으로 자기 몸을 맡기는 것인데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CCTV를 촬영해달라'고 말하기가 참 어려울 것"이라며 "촬영 의무에 환자의 요청을 요건으로 부과하는 것은 이런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이정민 변호사 발표자료 중 일부.
이에 이 변호사는 현행 '환자가 요청하면 촬영'하는 방식에서 '원칙 촬영'으로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찍기 위해 설치한 것이지 찍는 데 또 일정한 요건을 부과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설치를 의무화했으니 당연히 찍는 것이고, 반대로 환자가 거부하는 경우에는 촬영하지 않는 방향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수술이나 고위험 수술, 전공의 수련 등을 이유로 의료기관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예외 사유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설치된 CCTV를 작동시킨다고 응급수술이 지체되거나 수술 위험도가 높아진다고 보기 어렵고, 촬영 자체가 전공의 수련을 저해한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덕성여대 김창보 초빙교수는 특히 중증환자가 집중되는 상급종합병원에서 촬영 거부 범위가 넓어지는 현행 구조를 문제 삼았다.
현행 제도에서는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에 활용되는 전문진료질병군에 해당하는 수술이나 환자의 생명·신체 기능에 위험이 있는 고위험 수술 등의 경우 의료기관이 CCTV 촬영을 거부할 수 있다. 이에 김 교수는 정부가 상급종합병원에 중증환자 진료를 집중하도록 유도하면서 정작 중증환자가 받을 가능성이 높은 수술에는 촬영 거부 사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일수록 수술실 CCTV 촬영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상급 이상의 환자는 동네병원에 갈 수 있는 환자들이 아니다. 중증환자이고 대학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학병원에는 중증질환자를 치료하라고 해놓고 실제로 여기에 해당하는 환자는 병원 입장에서 CCTV 촬영을 거부해도 된다는 조항을 넣어뒀다"며 "법에서는 CCTV 설치를 의무화하고 환자가 신청하면 촬영하도록 했지만 시행규칙으로 내려와 사실상 법이 무력화되는 근거들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증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학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 거절할 수 있는 사유의 범위가 너무 넓어져 있다"며 "이 부분은 보건복지부가 조정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영상 보관기간의 개선 필요성도 언급됐다. 현행 보관기간은 촬영일로부터 최소 30일이지만 의료사고 여부를 환자가 뒤늦게 인지하는 경우 영상이 이미 삭제되거나 삭제를 앞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변호사는"일반적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형사사건을 추천하지 않는데 CCTV 때문에 불필요하게 형사고소를 하게 된다"며 "환자 측에도 안 좋고 의료인도 형사고소를 당해서 좋을 것이 없는 만큼 보관기간을 대폭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이 변호사는 현행 30일인 영상 보관기간을 최소 90일 이상으로 늘리고, 환자 또는 보호자가 요청하면 영상을 열람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상 열람과 관련해서는 "수술에 참여한 의료인들은 수술실 안 정보에 직접 접근했던 사람들인 반면 환자 측은 수술실 안의 정보에 원천적으로 접근할 수 없었던 사람"이라며 "환자 측의 요청이 있는 경우 영상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벌칙 규정의 불균형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CCTV를 설치하지 않거나 촬영 의무를 위반한 경우 벌금 500만원이 적용되는 데 비해 촬영된 영상을 훼손하거나 유출하면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이 적용된다며 "제도의 본질 자체의 규정을 위반한 경우보다 실행 과정에서 벌어진 잘못을 중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형벌의 체계정당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