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현재 대한민국 의료계를 뒤흔들고 있는 의사 증원 논쟁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고 있다.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일 뿐, 의료 공백과 지역 불균형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얼마나' 늘릴지에 대한 성급한 결정이 아니라, '어디에, 어떤 의사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한 정밀한 데이터 기반의 청사진이다.
국가와 지역 단위의 정밀한 의료 수요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국가 전체와 각 지역 단위별로 필요한 의사 수를 분과별, 그리고 1, 2, 3차 의료기관별로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이러한 기초적인 데이터조차 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기댄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주치의 제도가 시작되지 않은 상태에서 1만 명이 넘는 가정의학과전문의가 이미 배출됐다. 이는 명백한 '수요 없는 공급'의 사례로, 제도의 뒷받침 없이 인력만 늘리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보여준다. 이는 비단 가정의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의사제를 도입한다면서 외과 의사만 잔뜩 지역으로 보낸다고 가정해 보자. 해당 지역에 외과적 수술 수요가 없다면 그들은 할 일이 없다. 그 지역에 필요한 의사가 노인성 질환을 다룰 내과 의사나 응급 환자를 볼 응급의학과 의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역별 특수성을 고려한 분과별, 의료기관별 수요 파악은 지역의료를 살리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이다.
국립암센터, 보훈병원 등 특수 공공병원의 내원 환자 데이터 분석도 중요하다. 이들 환자의 거주지, 직업군 등을 분석하면 특정 지역과 집단에 어떤 의료 수요가 집중되는지 파악하고, 보다 효과적인 공공의료 정책을 수립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훈련 자원의 왜곡, 과잉과 부족의 엇박자
현재 전문의 수련 제도는 심각한 자원 배분 왜곡을 겪고 있다. 전공의 수련은 개인의 희생과 노력뿐 아니라, 한정된 국가 자원을 투입하는 공공적 성격을 띤다. 그러나 이 자원이 실제 의료 현장의 수요와는 동떨어진 곳에 배분되고 있다.
지금 의료 현장에서는 수술에 필수적인 마취통증의학과와 응급 판독을 포함한 영상의학과 의사 부족이 가장 심각하다. 안과, 이비인후과 등 삶의 질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의 의사들도 부족하다. 반면, 흉부외과, 신경외과, 외과 등은 실제 수요에 비해 너무 많은 전문의를 배출하고 있다. 일례로 매번 미달되는 것으로 언급되는 흉부외과 전공의 정원은 우리나라보다 인구가 7배나 많은 미국의 정원과 비슷하다. 이는 명백한 자원 낭비이며, 왜곡된 수련 구조가 낳은 비극이다. 정밀하게 분석된 국가적, 지역적, 인구학적 의료 수요에 맞춰 수련 정원을 재분배하는 외과적 수술이 시급하다.
지속 불가능한 미래, 인구 구조 변화와 건강보험 재정
우리는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서 있다. 노인 인구의 의료 수요를 무작정 다 따라가는 것이 과연 옳은 방향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필요하다. 폭증하는 의료 수요를 쫓아 의사 공급을 무작정 늘린다면, 그로 인해 유발될 막대한 의료비용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당장 3년 뒤 건강보험 재정 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이는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이다.
의사는 면허를 취득하고 나면 본인의 생계를 위해 최선을 다해 진료 활동을 할 것이다. 공급이 늘면 수요 또한 늘어나는 '유인 수요'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결국 전체 의료비의 폭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의사 수 논쟁의 초점은 양적 확대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질적 배분과 시스템 개혁으로 전환돼야 한다. 성급한 증원 결정은 또 다른 의료 왜곡을 낳을 뿐이다. 먼저 국가와 지역의 진짜 필요를 정밀하게 진단하고, 그에 맞는 '의료 인력 지도'를 그리는 것이 순서다. 이성적이고 데이터에 기반한 논의만이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