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는 더 커지는데 정부 정책 방향은 '환자 강제 수용'…"무작정 받으면 뒷감당 누가 하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최근 '응급실 뺑뺑이' 문제 개선을 위한 입법이 나오고 있지만 오히려 의료계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응급실 사법리스크 등 산적한 문제는 그대로 둔 채, 자칫 환자 수용만 강제할 소지가 있다는 취지다. 실제로 소송 리스크가 커지면서 응급실 근무를 기피하는 풍조가 확산돼, 응급실 의사 연봉이 최근 2년 사이 3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회는 26일 응급환자를 이송하는 구급대원 등이 응급실에 신속하게 연락해 환자 수용 가능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전용회선(핫라인)을 설치하는 내용의 응급의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응급의료 전용회선을 설치한 기관은 이를 상시 가동할 수 있도록 전담 부서를 지정하거나 담당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국회는 '응급실 뺑뺑이'를 해결하겠다는 취지지만 도리어 현장 의료계에선 불안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결국 정부·여당의 정책 방향성이 응급환자 강제 수용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환자의 응급실 강제 수용을 위한 빌드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응급실 뺑뺑이를 문제로 부각시켜 정부에서 어떻게든 성과로 내보이고 싶은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 의사들 커뮤니티에선 최근 '응급실을 그만두자'는 토로가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다. 의정갈등을 겪으며 응급의료 체계는 더 왜곡됐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전문의가 더 늘었지만 그만큼 지역 응급의료기관들은 다 망가져버렸다. 새로 배출되는 전문의도 부족한 상황이라 최소 1~2년 이상은 이렇게 유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장 의사들이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로 꼽는 것은 단연 응급실 사법리스크다.
실제로 지난 27일 4살 김동희 군 '응급실 뺑뺑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가 응급환자 수용을 거부한 소아응급실 당직의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119구급차로 이송 중인 응급환자 동희 군을 권역응급의료센터 의사가 수용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응급의료법 제6조 제2항의 응급의료 요청 기피에 해당한다"며 "당시 응급실에서 치료받았던 전체 응급환자의 중증도 분류에 따른 의료진의 처치 내용을 모두 확인한 결과 동희 군 관련 응급치료 요청을 기피할 만큼 위중한 환자는 없었다"고 판단했다.
한 응급실 당직 의사는 "해당 사건에서 의료계도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 다만 점차 응급실 근무 의사들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점차 커지고 있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라며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의사도 응급실에서 근무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이번 '응급실 뺑뺑이' 재판부 판결과 관련된 X(트위터) 게시물 갈무리.
의사 사회 내 공분도 크다. 한 의사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응급실 포화상태에서 소아심정지 환자가 119를 타고오는 경우 살려내지 못하고 업무상 치사로 유죄를 받고 금고2년을 받거나 살려냈지만 후유장해가 남았다는 이유로 유죄를 받고 5억 손해배상을 한다"며 "만약 환자를 못받겠다고 하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유죄를 받고 벌금 500만원이 선고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그는 "무죄라는 옵션이 없는 상태에서 응급의는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의사들 사이에서 응급실 기피 현상이 진행 중이다 보니 최근 응급실 의사들의 연봉은 타과 중에서도 인상률이 가장 가파르다.
의정갈등을 거치며 응급의학과 전문의 급여가 많게는 3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수도권 대형병원 교수는 "이제 세전 6억 아래론 종합병원급에선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상급종합병원도 5억 정도는 돼야 진료교수, 촉탁의를 뽑는다"고 말했다.
이형민 회장은 "응급실 의사들의 급여가 상승한 부분은 시스템의 혼란에서 초래된 것이다. 안그래도 사람이 부족한데 일하겠다는 인력 조차 없다 보니 당연히 사람이 귀해지고 급여가 뛰는 것"이라며 "여기에 지방과 수도권의 월급 역전 현상까지 벌어지면서 지방 응급실엔 돈을 많이 올려줘도 사람이 없다"고 전했다.
이 회장은 "이번 (김동희 군 응급실 뺑뺑이) 사건에 대해 응급실 의사들 사이에선 '시스템이 문제'라는 자조 섞인 얘기가 나온다. 물론 사망한 환자 입장에서 황당하고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환자 수용이 애매한 상황에서 강제로 환자를 받게 되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하나. 결국 이런 식이라면 환자 수용에 있어 응급실 의사들은 더 소극적으로 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반면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동희 군 사건은 우리나라 의료사고 피해자와 가족, 유족이 형사고소를 할 수밖에 없는 울분과 입증의 어려움을 시청각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며 "정부와 국회에 관련 제도와 입법 개선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