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0.11 07:05최종 업데이트 23.10.1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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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정지 환자 먼저 돌봤다는 이유로 의사에게 폭언...이게 응급실이냐?

[칼럼] 조성윤 미래의료포럼 상임위원 신경외과 전문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오래 전 일이라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에피소드 하나를 방출한다. 그날 밤은 유난히 응급 아닌 응급 환자가 많았다. 감기 배탈 불면증 등이었다. 며칠 전부터 아팠지만 오늘 저녁 시간이 되니 온 환자, 낮부터 아팠지만 견딜만해서 술 마시다가 온 환자, 내일은 바쁘니 오늘 검사받아야겠다는 환자, 진짜 응급 환자는 한 명도 없었지만 응급실이 거의 꽉 찬 상태였다. 그런 날은 더 바쁘다.

진짜 응급 환자는 검사하고 결과를 보는 동안 환자, 보호자, 의료진 모두 약간의 긴장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 숨죽여 기다리는 상태다. 그런데 이런 응급 아닌 응급 환자들은 보통 말이 많다. 요구 사항이 많다.

"내가 먼저 왔다. 빨리 봐달라. 보호자 의자 달라. 이불 하나 더 달라. 베개가 더럽다. 화장실 청소 좀 해라. 옆 침대 환자가 시끄럽다. 불이 너무 밝다. 춥다, 덥다. 의료진이 불친절하다." 갖가지 불만과 요구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나도, 간호사들도 슬슬 지쳐가고 환자와 보호자들도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경증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멀리서 119 사이렌이 들린다. 응급실 근무자들은 119, 사설 구급차, 소방차, 경찰차 다 구분이 가능하다. 119 구급차도 여유로운 소리를 낼 때가 있고 더 다급한 사이렌을 울리며 들어오기도 한다.

이건 아주 다급한 마음의 119 구급차가 확실하다. 더 다급한 사이렌이 울릴 때는 뇌, 심장 등 중증 환자이거나 이미 심장이 멈춘 상태로 심폐소생술을 하며 이송 중인 경우다. 소리만 듣고 우리는 심폐소생술을 할 준비를 했다.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세동기를 탑재한 응급 카트를 정비하고 나와 간호사 한 명은 입구로 환자와 구급대를 맞이하러 나갔다. 예상한 대로 이미 심폐소생술이 진행 중이었고, 구급대로부터 환자의 상태를 전해 들으며 손을 바꿨다. 심전도를 붙이고 각종 약물이 투약되고 심혈관센터장을 호출했다. 심근경색이었다. 환자는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중년의 남성이라 최선을 다해 심폐소생술을 하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의료진이 희망을 잃고 거의 포기하려던 찰나,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때마침 준비가 끝난 심혈관조영실로 환자를 옮기고 땀 닦고 손 씻고 마무리했다. 응급실을 슥 둘러보니 침대가 텅텅 비어있다. 약 30분간 의료진이 사투를 벌이는 동안 경증 환자들은 스스로 요청해서 귀가한 상태였다. 어느 복통 환자가 다들 수고했다고 박카스를 사주고 가신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응급실에는 응급 아닌 응급 환자가 많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는 심폐소생술 앞에서는 다들 숙연해지고 분위기는 정적이 흐른다. 최근 강원도의 한 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보호자가 나중에 온 심정지 상태의 환자를 먼저 돌봤다는 이유로 1시간 넘게 응급실 의료진을 향해 폭언을 퍼부었고, 참다못한 의료진은 이 보호자를 고소했다고 한다.

뉴스로 알려진 내용에는 경찰이 와도 그 지나친 항의는 계속돼 다른 환자들의 진료를 방해했다. 나도 수차례 경찰을 불러봤지만 경찰도 별 도움이 안 되는, 민원 걱정하는 공무원일 뿐이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응급 환자의 진료를 방해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응급 환자 진료 방해는 범죄다. 경찰도 출동했으면 범죄자에게 범죄자답게 응대해 줘야 한다.

알려진 뉴스 내용에 따르면 그 보호자는 가족이 사우나에서 실신했다고 연락받고 온 모양이다. 교과서적으로 첫 번째 실신 후 의식을 완전히 회복해서 정상으로 돌아왔다면 경과 관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나는 소송이 두려워 첫 실신부터 뇌, 심장 등의 검사를 해보라고 추천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런 검사들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 환자의 상태를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담당 의사가 어떤 원칙으로 진료했을지는 알겠다. 적어도 이 환자는 초응급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다른 환자가 우선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나도 그 판단에 동의한다. 응급실은 의사가 진두지휘해야 한다. 간호사, 구급 대원, 환자, 보호자와 대화하고 그 내용을 참고할 수는 있으나 의사가 결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결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줘야 한다.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는 전쟁터다. 

최근 대한민국 의료가 위기라는 말은 누구나 들어봤을 것이다. 이 상황은 의사만 노력한다고 탈출할 수 없다. 의사를 아무리 욕하고 쪼아 붙여도 될 수 없는 한계가 왔기 때문에 위기라고 하는 것이다. 환자, 보호자, 언론, 경찰, 검찰, 법원, 정부가 합심해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다들 위기의식 좀 가지자.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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