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6.05.12 16:55최종 업데이트 26.05.12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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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니고, 20년만에 뇌종양 치료제 허가…“수술 후 보이지 않는 IDH 변이 세포까지 겨냥”

한국세르비에, IDH 변이 2등급 신경교종 치료제 국내 출시…뇌종양 첫 표적치료제 의미

INDIGO 연구서 질병 진행·사망 위험 65% 감소…“다음 치료 시점 유의하게 지연”

장종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12일 열린 보라니고 국내 출시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발표하고 있다.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20년 만에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은 신경교종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수술적 절제와 방사선·항암치료 중심이던 뇌종양 치료 패러다임에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특히 신경교종은 수술로 종양을 제거하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변이 세포가 주변에 남아 재발과 악성화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초기 발암 변이인 IDH를 표적으로 차단하는 치료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12일 한국세르비에는 더 플라자 호텔 서울에서 IDH 변이 2등급 신경교종 치료제 보라니고(성분명 보라시데닙)의 국내 출시를 기념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장종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신경교종 치료의 미충족 수요와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제로 발표하며 보라니고 허가의 임상적 의미를 소개했다. 이어 김재용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보라니고, 신경교종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을 주제로 보라니고의 글로벌 3상 임상시험 INDIGO 연구 결과를 설명했다.

신경교종, 30~40대 호발…발작·인지저하로 삶의 질 악화

장 교수에 따르면 신경교종은 신경교세포에서 발생하는 종양으로, 가장 흔한 원발성 악성 뇌종양이다. 뇌종양은 다른 암종과 달리 중추신경계 밖으로 전이되는 경우가 드물어 병기보다는 악성도에 따라 1~4등급으로 분류된다. 이 가운데 1등급은 양성에 가깝지만, 2등급부터 4등급까지는 자라는 속도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악성 종양에 해당한다.

2023년 기준 국내 신규 진단 악성 뇌종양 및 중추신경계종양 환자는 약 2000명이며, 이 중 약 80%가 신경교종 환자로 파악된다. 

보라니고는 현재 IDH 변이가 있는 2등급 신경교종을 대상으로 허가됐으며, 향후 3·4등급 및 재발 환자 등으로 적응증 확대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

신경교종은 두통, 구토, 인지·기억력 저하, 언어장애, 운동마비 등 종양 위치에 따른 다양한 증상을 일으킨다. 특히 저등급 신경교종에서는 간질 발작이 주요 증상으로 나타난다.

장 교수는 발작이 반복될 경우 환자의 인지 기능과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고, 운전 제한이나 학업·직장생활 제약 등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저등급 신경교종은 30~40대에서 발생률이 높다. 장 교수는 “이 연령대는 직장, 양육, 가정과 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시기”라며 “환자 개인의 질환을 넘어 가족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신경교종, 완전 절제 어려운 침윤성 종양…수술 후 치료 옵션 필요

현재 신경교종 치료의 표준은 수술적 절제다. 장 교수는 수술로 종양 세포 수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치료의 시작이며, 절제 정도가 예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신경교종은 경계가 불분명한 침윤성 종양으로, MRI에서 보이는 종양을 모두 제거하더라도 실제로는 주변 뇌 조직에 보이지 않는 종양 세포가 넓게 퍼져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뇌는 그 기능을 보존해야 하는 특성상 다른 장기 암처럼 종양 주변을 넓게 절제하기 어렵고, 언어장애·운동마비 등 신경학적 장애 위험 때문에 일부 종양을 의도적으로 남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장 교수는 “수술로 종양을 다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사진상 보이는 종양을 제거하더라도 주변에 보이지 않는 세포들이 넓게 퍼져 있고, 실제 부검에서도 MRI상 보이지 않는 부위에서 종양 세포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신경교종은 수술 후에도 추가 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기존에는 방사선치료와 항암화학요법이 주요 옵션이었지만, 장기적인 인지기능 저하, 세포독성 부작용, DNA 과변이로 인한 악성도 증가 가능성 등 한계가 있었다.

장 교수는 “방사선치료와 항암요법은 효과가 입증된 치료지만 일정 환자에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반복적으로 시행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더 효과적이고 안전한 수술 후 치료 옵션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컸다”고 밝혔다.

IDH 변이 겨냥한 보라니고…“보이지 않는 변이 세포 치료 의미”

보라니고는 앞으로 종양으로 발전할 수 있는 IDH 변이 세포까지 겨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IDH는 세포 에너지 생성과 대사 균형 유지에 관여하는 효소다. 그러나 IDH 변이가 발생하면 2-HG라는 물질이 과도하게 생성돼 종양 발생과 성장, 악성도 증가를 유도한다.

장 교수는 “현재 신경교종 분류에서 가장 중요한 바이오마커가 IDH”라며 “IDH 변이형은 희돌기교종과 성상세포종으로 구분되며, 2등급 신경교종 환자의 80% 이상에서 IDH 변이가 발견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IDH 변이가 단순한 동반 변이가 아니라 신경교종을 일으키는 초기 드라이버 변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IDH 변이가 지속되면 2차, 3차 유전자 변이가 추가로 발생하고, 종양이 커지거나 2등급에서 3·4등급으로 악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보라니고는 IDH1 또는 IDH2 변이가 있는 2등급 신경교종에서, 변이 IDH 효소를 억제해 종양 성장과 악성화에 관여하는 2-HG 생성을 줄이는 표적치료제다.

장 교수는 “예전에는 보이는 종양이 있으면 방사선치료와 항암치료를 한다는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종양이 제거돼 보이지 않더라도 주변에 흩어져 있는, 앞으로 종양으로 바뀔 수 있는 IDH 변이 세포를 치료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재용 교수 “INDIGO 연구서 질병 진행·사망 위험 65% 감소”
 
김재용 분당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

보라니고의 임상적 근거도 제시됐다. 김재용 교수는 글로벌 3상 임상시험 INDIGO 연구 결과를 중심으로 보라니고가 신경교종 치료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INDIGO 연구는 수술 후 방사선치료나 항암치료를 받지 않은 IDH 변이 2등급 신경교종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된 글로벌 3상 임상시험이다. 보라니고군 168명, 위약군 163명이 참여했으며, 한국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일본 환자가 포함됐다.

연구 결과 보라니고는 무진행생존기간(PFS)을 유의하게 연장했다. 김 교수는 “보라니고를 복용한 그룹은 아직 중앙값에 도달하지 않았고, 위약군은 11.4개월에 도달했다”며 “질병 진행 또는 사망 위험을 65% 감소시킨 결과로, 임상시험 결과를 많이 봐도 거짓말처럼 큰 차이”라고 말했다.

하위분석에서도 효과는 일관됐다. 연령, 성별, 종양 위치, 수술 시점, 희돌기교종 또는 성상세포종 여부와 관계없이 보라니고 복용군에서 유의한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잔여 종양이 있는 환자에서도 종양 크기와 무관하게 위약 대비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김 교수는 “조직검사만 시행하고 종양이 그대로 남아 있는 환자에서도 보라니고를 쓰면 다른 치료 없이 유의미하게 좋은 결과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답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다음 치료 시점 지연·발작 감소 확인…삶의 질도 안정적 유지

INDIGO 연구에서 주목할 또 다른 지표는 다음 치료까지의 개입 시간(TTNI, Time to Next Intervention)이다. 저등급 신경교종은 생존기간이 긴 만큼 전체생존기간(OS)보다 방사선치료, 항암치료, 재수술 등 다음 치료가 필요한 시점을 얼마나 늦출 수 있는지가 중요한 치료 목표가 된다.

김 교수는 “보라니고군은 다음 치료까지의 중앙값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며 “80% 이상이 치료 개시 2년 시점에도 다음 치료 없이 보라니고만 복용하며 안정적으로 지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반면 위약군은 약 2년 이내 상당수가 다음 치료로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종양 성장 억제 효과와 발작 감소 효과도 확인됐다. 보라니고 복용군에서는 종양 성장이 억제됐고 일부에서는 종양 부피가 감소한 반면, 위약군에서는 대부분 종양이 성장했다. 또 보라니고군에서 발작 발생은 총 1541회, 위약군은 5000회 이상으로 나타나 보라니고가 발작 발생을 64% 줄인 것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보라니고는 간질 치료제가 아니라 종양 치료제지만, 종양이 조절되면서 부수적으로 발작도 줄어든 것”이라며 “사회생활과 삶의 질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처럼 간질이 관리되면서 삶의 질과 안전성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김 교수는 “약을 복용한 그룹과 복용하지 않은 그룹 간 삶의 질 차이가 없었다”며 “몇 달, 몇 년 동안 매일 복용해야 하는 약인 만큼 부작용이 중요한데, 약간의 간독성 이슈는 있지만 기존 약제들과 비교하면 안전한 약제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INDIGO 연구에서 무진행생존기간을 유의하게 연장했고, 다음 치료까지의 시간도 의미 있게 늦췄으며, 종양 성장률과 발작 발생률도 감소시켰다”며 “2026년 NCCN 가이드라인에서도 IDH 변이 2등급 성상세포종과 희돌기교종에 대해 보라시데닙이 preferred category 1으로 포함됐다”고 밝혔다.

BBB 장벽에 막혔던 뇌종양 신약 개발…20년 만에 첫 표적치료제 등장

보라니고의 허가는 뇌종양 치료 역사에서 20년 만의 진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2006년 교모세포종 치료제 테모졸로마이드가 식약처 허가를 받은 이후 수백 가지 약제가 임상시험에서 시도됐지만, 약제로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사례는 드물었다.

뇌종양 표적치료제 개발이 다른 암종보다 늦어진 데는 뇌라는 장기의 특수성이 크게 작용했다. 뇌는 외부 독성 물질로부터 중추신경계를 보호하기 위해 혈관뇌장벽, 즉 BBB(Blood-Brain Barrier)를 갖고 있다. 문제는 이 장벽이 항암제나 표적치료제 역시 독성 물질로 인식해 뇌 안으로 충분히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는 점이다.

장 교수는 “폐암 등 다른 암종에서는 최근 5년 사이 면역치료제와 표적치료제 발전으로 예후가 급격히 좋아졌지만, 그런 약제들이 뇌종양에서는 대부분 실패했다”며 “아무리 좋은 약도 뇌 안으로 들어가 작용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신경교종 치료는 오랫동안 수술적 절제와 방사선치료, 제한적인 항암화학요법에 의존해 왔다.

따라서 보라니고는 단순히 신경교종 치료제가 하나 추가됐다는 의미를 넘어, 뇌종양 영역에서 처음 등장한 표적치료제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장 교수는 “다른 암종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표적치료제가 등장했지만, 뇌종양을 대상으로 한 표적치료제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BBB를 통과해 뇌종양에서 작용하는 표적치료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다만 장 교수는 보라니고가 모든 신경교종을 치료하는 약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현재 허가 대상은 IDH 변이가 있는 2등급 신경교종이며, 예후가 가장 나쁜 교모세포종은 IDH 변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보라니고의 대상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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