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09.11 06:18최종 업데이트 23.09.11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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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제약회사는 어떤 의약품을 판매했을까

[약 만드는 사람들] ① 독일 머크, 19세기 아편으로 과학화·산업화…러·미 이어 중국까지 진출

사진: 머크 그룹의 시작이 된 엔젤약국(자료=머크 홈페이지).

[메디게이트뉴스 박도영 기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회사를 알아보려면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660년대 당시 조선은 17대 국왕인 효종이 재위하고 있었다. ‘하멜 표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이 조선에 머물렀던 시기기도 하다. 중국에서는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넘어간 뒤 4대 황제인 강희재가 즉위했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과 30년 전쟁을 마치고 프랑스가 루이14세로 대표되는 절대왕정 시기를 맞이해 국력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프리드리히 야콥 머크(Friedrich Jacob Merck)가 1668년 독일 다름슈타트에서 엥겔 아포테케(Engel-Apotheke, 엔젤약국)를 인수했다. 머크 그룹(Merck Group)이 시작된 곳이다. 이후 13대째 이어오며 머크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제약사로 자리잡았다. 엔젤약국은 현재까지 머크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17세기 약국에서는 어떤 의약품을 판매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당시 약사들은 식물과 동물, 광물을 사용해 의약품을 제조했다. 지금과 같은 의약품의 형태는 아니나 약국 명령(pharmacy orders)과 세금으로 품질과 가격이 관리됐다고 전해진다.

약학이 과학의 분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이다. 머크 역시 이 시기 큰 변화를 겪는다. 그 중심에는 에마누엘 머크(Heinrich Emanuel Merck)와 아편(opium)이 있었다.
 
사진: 하인리히 에마누엘 머크(자료=머크 홈페이지).

1816년 설립자의 후손인 에마누엘 머크가 엔젤약국을 인수했다. 에마누엘 머크는 약학 실험실에서 의학적 효과로 당시 과학계에서 큰 관심을 가졌던 식물 성분인 순수 알칼로이드를 제조하는데 성공했으며, 19세기 전반 과학 중심 기업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이러한 물질을 대량으로 제조,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제약 및 화학 공장 설립으로 이어졌다.

에마누엘 머크는 아편과 그 성분을 밝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826년 ‘Magazin für Pharmazie’라는 잡지에 모르핀(morphine) 제조에 관한 과학 논문을 발표했고, 1827년 모르핀을 상업적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모르핀은 아편의 주요 성분으로 중추신경계에 있는 오피오이드 수용체에 작용해 진통 효과를 발휘한다. 현재도 일반 진통제로는 효과를 볼 수 없는 말기 암환자의 통증, 수술 후 통증 등을 줄이는데 사용된다.

1848년 그 아들인 게오르그 머크(Georg Merck)는 아편의 새로운 알칼로이드인 파파베린(papaverine)을 발견했다. 일곱번째로 알려진 아편의 알칼로이드로, 모르핀과는 구조적, 약리학적 작용이 다르다. 발견 후 수십년 동안 독특한 약리 작용 메커니즘과 치료 가치가 확립되지 않아 사용되지 않았다. 현재는 진경제로 위장관, 담도 경련 감소 및 통증 완화제와 말초순환장애 등 치료제로 사용된다.

1860년 독일의 화학자인 프리드리히 뵐러(Friedrich Wöhler)를 통해 코카 잎에서 새로운 유기 염기, 즉 코카인(cocaine)이라 불리는 알칼로이드 발견 사실이 보고된다. 당시에는 활력을 주고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물질로 생각됐다. 그러나 머크는 의료적 사용에 주목했고, 1884년부터 코카인 생산과 판매에 뛰어들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머크는 “코카인이 독약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의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가치 있는 약제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머크가의 윌리(Willy)와 칼 에마누엘(Carl Emanuel)이 코카인 연구에 전념했고 1896년 훗날 노벨상 수상하게 되는 리처드 빌슈테터(Richard Willstätter)와 수십 년간 협력해 코카인의 구성과 합성을 규명하는데 성공했다.
 
사진: 머크 품질 관리 연구소(자료=머크 홈페이지).

머크는 제품의 품질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기록을 보면 1851년 에마누엘 머크가 고객에게 보낸 편지에 “제 시약의 일관된 순도를 보장하며, 불순한 시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에 대해서는 보상해 드리겠습니다”라고 썼다.

1888년 ‘프로 애널리시(pro analysi, 분석용)’라는 라벨이 붙은 ‘순도 보장 시약’을 출시했다. 머크에 따르면 이 시약은 결합 순도 표준에 따라 제조돼 비교 화학 분석의 기초를 만들었다. 동시에 이러한 높은 기준을 모니터링하기 위해 품질 관리 연구소를 설립했다.

머크는 주요 제품인 모르핀과 코카인을 바탕으로 러시아, 미국, 중국 등 해외 진출에도 적극 나섰다.

가장 오래 비즈니스 관계를 맺은 국가는 러시아다. 183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J. D. 스페흐트(J. D. Specht in St. Petersburg)'가 거래 원장에 기재된 첫 고객이다. 러시아 시장이 점점 더 중요해지면서 19세기 말 머크는 러시아 부서를 설립했다. 1887년부터 머크가 발행한 '약물요법 및 약학 분야의 혁신에 관한 E. Merck의 연례 리뷰(E. Merck’s Annual Reviews on Innovations in the Fields of Pharmacotherapy and Pharmacy)'가 1892년부터 1913년까지 러시아어로 출판됐을 정도다.

그러나 1917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러시아와의 거래가 중단됐다. 이후 수십년 동안 러시아로의 직접 비즈니스가 불가능했고, 1990년대 중반 다시 러시아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파파베린을 발견한 게오르그 머크는 1886년 사업가로 회사에 합류한 뒤 1890년 뉴욕에 ‘Merck & Co.’라는 이름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1897년 제품 위조 신고가 급증하기 시작하면서 대미 수출 사업도 큰 성공을 거뒀다. 수입품에 대한 높은 관세가 문제가 되자 자체 생산을 위한 공장을 미국에 세웠고, 1908년 주식 회사로 등록한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으로 머크는 Merck & Co.를 포함한 자회사를 잃게 됐다. 1919년 독일의 E.머크와 Merck & Co.가 분리되며 완전히 개별 회사가 됐다. 현재 미국 머크(Merck & Co.)는 북미에서 'Merck'라는 이름에 대한 독점권을 보유하고 있고(미국, 캐나다 이외 지역에서는 MSD로 알려짐), 독일 머크(Merck KGaA)는 그 외 지역에서 동일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미국에서는 EMD로 알려짐).

중국의 경우 1888년 머크 가문의 8대째 기업가인 윌리 머크가 중국을 방문해 무역 관계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머크에 따르면 문서화된 가장 오래된 비즈니스 접촉은 1897/98년 연례 보고서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름이 알려진 첫 번째 고객은 상하이의 J. 르웰린(J. Llewellyn & Co.)이다. 1911년 상하이의 볼켈 앤 슈뢰더(Voelkel & Schroeder Ltd)를 중국 최초의 대표사로 임명한다. 그러나 모르핀과 코카인 등 주요 제품에 대한 무역 제한이 강화되며 이듬해 매출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33년 상하이에 중국 최초의 머크 자회사인 E. 머크 케미칼(E. Merck Chemical Co.)을 설립하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청산한다. 1995년 머크는 베이징과 상하이에 사무소를 다시 열었고, 1997년에 상하이 E. 머크 인터내셔널 트레이딩(E. Merck International Trading)을 설립하면서 중국에서 자체 법인을 통해 사업을 운영하게 됐다.

박도영 기자 (dypark@medigatenews.com)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기사를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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