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불면증 치료 패러다임이 약물 중심에서 인지행동치료(CBT-I, Cognitive Behavioral Therapy for Insomnia)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는 가운데, 실제 진료 현장에서 CBT-I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디지털 치료제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분당차병원 신경과 신정원 교수는 최근 열린 ‘불면증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와 디지털 치료제의 가능성’을 주제로 열린 메디게이트 웹 세미나에서 만성 불면증 치료에서 CBT-I의 중요성과 처방형 디지털 치료기기 슬립큐의 임상 활용 경험을 공유했다.
신 교수는 불면증이 단순히 잠을 잘 못 자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불면증은 낮 동안의 피로, 집중력 저하, 우울감, 예민함 등 일상 기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으며, 심혈관계·정신건강·신경계·대사·면역계 질환의 위험요인으로도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불면증은 만성화 경향이 뚜렷하다. 신 교수는 “불면증 환자의 상당수는 장기간 증상이 지속되고 반복적으로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패턴을 보인다”며 “만성 불면증에서는 단순히 잠을 재우는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불면증을 지속시키는 행동과 인지 요인을 함께 치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면증이 만성화되는 과정에는 잘못된 수면 행동과 왜곡된 인지가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이 오지 않는데도 침대에 오래 누워 있거나, 침대에서 스마트폰을 보거나, 낮잠으로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행동이 반복되면 수면 효율이 떨어진다. 여기에 ‘오늘 못 자면 내일 망가질 것 같다’, ‘반드시 8시간은 자야 한다’는 식의 불안과 왜곡된 생각이 더해지면 각성이 지속돼 불면증이 악화된다.
이 때문에 만성 불면증의 핵심 치료는 CBT-I다. CBT-I는 수면위생 교육, 자극조절, 수면제한, 이완요법, 인지재구성 등을 통해 불면증을 유발·유지하는 행동과 사고방식을 교정하는 치료다.
신 교수는 “여러 국내외 가이드라인에서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로 CBT-I를 권고하고 있으며, 약물치료는 단기적·보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권고된다”고 말했다.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나 졸피뎀 등 수면제는 남용, 의존, 금단, 낙상 위험 등과 연관될 수 있어 장기 사용에는 주의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문제는 CBT-I가 권고되는 치료임에도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충분히 제공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대면 CBT-I는 일반적으로 6~8주 동안 매주 병원을 방문해야 하고, 1회 치료에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도 제한적이며, 바쁜 외래 환경과 낮은 수가 구조 속에서 1차 의료기관까지 확산되기는 쉽지 않다.
신 교수는 “국내 불면증 치료 실태를 보면 약물 처방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고, 1차 의료기관에서 심리치료 제공은 사실상 매우 제한적”이라며 “불면증 환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접근성이 좋은 1차 의료기관인데, 정작 그곳에서 CBT-I를 제공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한계를 보완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디지털 CBT-I다. 최근 유럽수면학회 가이드라인 등에서도 대면 CBT-I뿐 아니라 디지털 CBT-I를 만성 불면증의 1차 치료 옵션으로 제시하고 있다. 디지털 치료제는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치료 기전을 구현하고, 임상 근거를 바탕으로 허가를 받아 의료진이 처방하는 방식이다.
한독과 웰트가 선보인 슬립큐는 CBT-I를 기반으로 만성 불면증을 개선하는 처방형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으며, 6주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슬립큐에는 CBT-I의 주요 요소가 포함된다. 환자는 앱을 통해 불면증 중증도, 우울·불안, 수면에 대한 왜곡된 인지 등을 평가하는 설문을 진행하고, 매일 수면일기를 기록한다. 이를 바탕으로 수면제한과 자극조절 코칭이 제공되며, 수면위생 교육, 이완요법 콘텐츠, 인지재구성 콘텐츠도 함께 제공된다.
신 교수는 실제 처방 경험을 소개하며 “슬립큐는 처음 1주 동안 수면일기를 작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2주차부터 환자에게 맞는 수면 코칭 시간이 제시된다”며 “환자가 수면일기를 정확히 기록해야 적절한 코칭이 가능하기 때문에 초기 설명과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수면 탐구, 수면 톡톡 등 교육 콘텐츠를 함께 읽어야 수면제한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치료 동기를 유지할 수 있다”며 “환자들이 처음에는 수면제한을 힘들어할 수 있지만, 불면증을 유지시키는 행동과 생각을 이해하면 치료 순응도가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슬립큐의 또 다른 장점으로 환자와 의료진이 데이터를 함께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의료진이 대시보드를 통해 환자의 사용 순응도, 수면일기, 수면 효율, 수면잠복기, 중간 각성, 낮잠 여부, 수면제 복용 패턴 등을 확인할 수 있어 이를 바탕으로 외래에서 환자에게 구체적인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처방 경험상 순응도가 높을수록 효과가 좋았고, 수면일기 작성과 교육 콘텐츠 활용이 중요했다”며 “처방 초기에 설문과 수면일기 작성, 수면 탐구와 수면 톡톡을 반드시 읽도록 안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환자 사례에서도 디지털 CBT-I의 가능성이 확인됐다. 신 교수는 수면제 복용 경험이 없고 불면증 치료 의지가 높은 환자, 수면제를 줄이고 싶어 하는 환자, 수면에 대한 인지적 왜곡이 큰 환자, 침대에 오래 누워 있는 등 잘못된 수면 습관이 있는 환자에서 슬립큐가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약물과의 병용도 가능하지만, 기존 수면제를 복용 중인 환자에서는 감량을 서두르기보다 상태를 보며 천천히 조절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신 교수는 “기존 약물을 유지한 상태에서 디지털 CBT-I를 시작하고, 효과와 환자 상태를 확인하면서 아주 소량씩 줄이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불면증은 단순한 증상이 아니라 여러 질환과 연관된 위험요인이기 때문에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며 “디지털 CBT-I는 약물치료 외에 전문적인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고, 환자들의 치료적 관심과 만족도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독 웰트는 오는 6월 30일 화요일 오후 1시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은 교수가 참여하는
슬립큐 관련 웹 심포지엄을 추가로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웨비나에서는 불면증 진료 현장에서 디지털 치료제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