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게이트뉴스] 대만(타이완)은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로 근현대사를 공유하는 부분도 많다. 대만에서 서양의 현대의학은 우리나라보다 한세대 정도 앞서 도입됐고, 일본의 식민 통치도 겪었다. 대만의 ‘의(醫) 문화’ 역시 우리나라처럼 중앙정부 중심적이고 서양의 전문 직업성이 바탕이 되는 자율과 자주 개념의 미숙함도 우리와 유사하다.
흥미로운 점은 대만의 의료도 의료과오에 대한 ‘형사화(criminalization of medical malpractice)’ 문제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심각한 정책문제로 대두된 바 있다. 두 나라 모두 동아시아 지역의 의료체계이고, 높은 의료 접근성, 사회보험, 의료사고에서 형사고소의 활용, 필수 의료 기피와 자연발생적 방어 진료의 우려라는 비슷한 궤적에서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며 고민하고 있다.
대만이나 우리나라 역사에는 춘추전국시대에서 살아남은 법가(法家)와 유가(儒家)의 전통이 아직도 강하게 존재한다. 두 나라 모두 서양의학의 전통인 전문직에 대한 자율보다는 진한시대(秦漢時代)의 율(律)과 영(令)의 역사적 전통이 오늘날 법률과 시행령으로 진화해 전문직에 대한 독립성을 초월한다. 역사와 문화적 배경 탓인지 대만에서는 의료분쟁이 생기면, 민사보다는 형사고소를 먼저 추진하는 현상이 매우 강하다고 한다.
여기에는 한국과 매우 유사한 이유가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복잡한 의료과실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 민사소송보다는 형사고소를 통해 검찰의 수사와 전문가 감정을 통한 수사 자료를 확보한 이후에 합의 절차 또는 민사 배상 경로를 찾는 것이 상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대만의 연구도 형사절차를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로 검사가 의료과실 판단에 필요한 조사에 관여하고, 형사절차가 합의를 압박하는 효과가 있었음을 지적하는데, 서양의 법문화에서는 형사소송을 민사에 활용해 형사소송이 고유목적이 아닌 민사소송의 수단이 되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로 간주 될 수 있다.
대만, 2017 의료법 개정, 전문가 임상적 재량 인정 형사책임 ‘문턱’ 합리적 조정
대만에서 1987~2018년 의료분쟁 감정자료 1만 737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의료소송 가운데 형사 사건이 82.5%, 민사가 17.5%를 차지했다. 형사 사건이 민사사건의 약 4.7배 규모다. 다만 이 수치는 모든 의료분쟁이나 모든 사건에 의사가 관여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통계 자체로써 해당 연구 데이터베이스에 들어온 의료소송의 구성비다. 대만 정부도 당시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대만은 이 문제 때문에 2017년 의료법(Medical Care Act) 제82조를 개정해 형사책임의 문턱을 높였고, 이후 연구를 통해 형사소송과 유죄율이 실제로 감소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우리나라의 복지부에 해당하는 대만의 위생복리부는 의료사고를 형사소송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 환자 보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방어 진료와 응급 및 중증 분야의 의료인력 이탈을 초래한다고 우려했다.
2017년 대만의 법 개정 핵심은 의료인의 형사적 책임을 보다 명확하게 규정하고 그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핵심적인 개념은 의료인이 의료행위의 과정에서 주의의무를 위반해 환자에게 상해 또는 사망을 발생시킨 경우에도, 합리적인 전문적 임상 재량(reasonable exercise of professional clinical discretion)의 범위를 넘어선 경우에 형사책임을 부담하도록 하고, 과실 여부를 판단할 때 당시의 의료 수준을 비롯한 의료시설, 근무조건, 긴급성 및 기타 관련 상황 등을 종합적이고 객관적으로 고려토록 한 점이다.
이것은 의료는 상황에 따라 교과서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문으로 표현하면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불가피한 ‘제약(constraints)’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 중인 ‘12개 중과실’과는 그 개념이 매우 다르다.
우리나라는 현재 행위 유형을 먼저 정해 12개 중대한 과실일 경우 형사 특례를 제외하려는 법안이 발효를 앞두고 있다. 여기에서 ‘특례’라는 단어로 마치 의사들에게 특혜를 주는 듯한 인상도 풍긴다. 하지만 실제로 특례는 전혀 아니다. 대만을 비롯 대부분의 나라들은 구체적인 행위 목록을 만들지 않는다. 전체적인 행위 목록은 그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의사가 합리적인 전문적 임상 재량의 범위를 벗어났는가와 특히 판단할 때 당시 의료 수준·시설·근무조건·긴급상황 등을 고려했는가를 꼼꼼히 살피도록 했다.
대만의 ‘2017 개정’은 허용된 위험(allowed risk)으로 설명한다. 의료행위는 본질적으로 불확실성, 합병증, 환자의 기저질환, 시간적 압박, 제한된 의료자원 등을 모두 포함한다. 말 그대로 완벽한 것이 아니다. 당연히 나쁜 결과가 발생했다는 사실만으로 형사상 과실을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다. 적절한 진료를 했음에도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은 사회가 어느 정도 허용된 의료 위험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만 법 개정 후 유죄율 현저히 감소 우리나라 年 최고 40여 건 ‘처벌 공화국’ 유지
그렇다면 대만은 법 개정 이후 과연 형사 사건이 실제로 감소했을까? 지난 2001~2020년 대만의 의료분야에 대한 형사 사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총 249개 형사 사건, 335명의 의료인에 대한 피고인을 확인했다. 그 가운데 79명이 유죄로 분류돼 전체 피고인 기준 유죄 비율은 약 23.6%로 분석됐다. 연간 20~40건의 형사처벌을 차지하는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월등히 낮은 수치다. 그럼에도 대만은 여전히 선진국과는 차이를 보인다.
연구자들은 2017년 의료법 제82조 개정 이후 의사 1만 명 당 형사피고인 비율이 유의하게 감소했고, 2016~2020년의 유죄율도 연구 기간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음을 보고했다. 그렇다고 대만에서 의사의 형사책임을 없앤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의료과실로 환자가 사망하거나 상해하게 하면, 형사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만 판단할 때 단순히 ‘결과가 나빴다’가 곧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가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주의의무를 위반했고, 그 위반 내용이 합리적인 전문적 임상 재량의 범위를 넘어섰는가를 면밀히 살피도록 이성적으로 형사처벌의 문턱을 높인 것이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대만의 연구에서 2000~2014년 확정된 의료분야의 형사 사건 436건 중 전공의와 관련한 사건은 40건이었고, 관련된 전공의는 54명이 포함됐다. 사건의 최종 판결까지는 평균 77.2개월, 약 6.4년이 걸렸고, 5명의 전공의가 최종 유죄판결을 받았다. 전공의 사건의 82.5%에서 지도 전문의(attending physician)가 공동피고인이었다. 이처럼 전공의 관련 문제도 우리나라와 놀라울 만큼 닮아있음을 알 수 있다.
‘대만의 변화’를 요약하면, 대만에서 의사에게 형사책임을 인정받으려면 합리적인 선에서 전문가의 임상 재량 범위를 넘어섰음을 판단하고, 당시의 의료 수준·시설·근무조건·긴급상황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보다 선진화된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대만 위생복리부 역시 법 개정 당시에 밝혔듯이 의료의 결과는 환자의 조건과 질병의 복잡성, 의료자원과 전문적 재량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정부가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강조했다는 점이다.
<참고 문헌>
Ming-Ta Hsih et al. Correlation Between Malpractice Litigation and Legislation Reform in Taiwan Over a 30-Year Peri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