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2.18 06:22최종 업데이트 19.02.18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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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인권 보호하려다 의료인 안전은 어디에…강제 입원 완화 철회해야

미국의 정신보건법, 한국과 달리 정신질환자 타살·자살 위험을 사회 문제로 규정

[칼럼] 네바다 주립의대 내과 유지원 교수·그린스펀 행정대학원 사법경찰학과 박성민 교수·고려대의대 흉부외과 황진욱 교수(네바다주립대 보건대학원 방문교수)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의료인에 정신질환자 자살·타살사고 예방 책임과 강제 입원 허용

196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에 재학 중인 타티아나 타라소프라는 여대생이 교내에서 피살됐다. 범인은 같은 학교 같은 기숙사에 사는 대학원생인 프로젠짓 포다로 타티아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거절당하자 13인치에 이르는 칼로 타티아나를 8번에 걸쳐 찔렀다. 당시 포다는 범행 전 교내 정신과 의사인 래리 무어를 찾아가 타티아나를 죽이겠다는 의사를 표현했다고 한다. 

타티아나 부모는 캘리포니아 주립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학교가 제대로 주의 의무를 준수하지 않아 발생한 책임을 물었다. 6년간의 소송 끝에 캘리포니아 연방대법원은 정신보건서비스 의료인은 앞으로 발생할 의도적 피해자를 보호 의무를 갖는다는 취지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주(일명 블루스테이트 지역)에서는 정신보건 서비스 의료인이 자살 및 타살사고 예방 책임을 지도록 했다. 동시에 공화당 지지주(일명 레드스테이트 지역)보다 간편하게 자살 및 타살 위험을 갖는 환자들을 강제 입원하는 진료문화가 자리 잡았다. 

대체로 블루스테이트에서는 공공 보건의 권한이 강력해 성병 및 전염병도 정신질환과 비슷하게 의료인이 보건소 및 공공기관에 보고할 의무를 갖는다. 예를 들면 필자들이 근무 지역인 네바다주(블루스테이트 지역)에서는 정신보건 전문 의료인이나 의사가 아니어도 이른바 L2K, ‘legal hold’를 보호자 동의 없이 발동 할 수 있다. 48시간동안 공권력의 도움을 받아(주로 지역 경찰 인력) 외래에서 진료 중 자살 및 타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병원 응급실에 인도할 수 있다. 48시간 이내 정신과 전문의가 포함된 병원 위원회에서  ‘legal hold’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한국을 포함해 감정 표현 부분에 ‘죽고 싶을 정도’가 포함될 경우 본의 아니게 ‘legal hold’가 작동될 수 있다. 즉, ‘아퍼서 죽을 정도’(This pain is killing me)라는 한국어 표현을 죽을 의지를 지향하는 의미로 잘못 통역되면 ‘아파서 죽을 작정(will die due to pain)’으로 영어를 주언어로 하는 의료인들에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웃지 못할 광경이지만, 네바다주 동료 의사가 입원한 한국 환자 표현을 앞문장처럼 잘못 알아들어 ‘legal hold’는 아니지만 정신과 의뢰를 넣고 정말 자살의도가 있는지 여부를 거친 후 퇴원을 늦추는 경우를 봤다. 그만큼 자살 위험이 조금이라도 존재할 경우 이를 무시하고 퇴원시키는 위험, 즉, 주의의무 소홀에 대한 위험을 의사가 혼자 떠안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타티아나 증례처럼 자살이나 타살 예고 정보를 알고 있는 의료인은 ‘legal hold’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 의료인은 불고지죄로 형사처벌을 받는 근거가 된다

정신보건법에 강제 입원 절차 완화, 의사 안전 보호 반영 안돼   

2016년 한국 헌법재판소는 정신보건법 제24조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려 정신보건법 개정을 필요로 하고 정신건강복지법이라는 새명칭으로 2017년 5월부터 시행하도록 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입원 요건이 엄격해지고 입원적정성심사위원회를 설치해 입원 뒤에도 불법적 혹은 부당한 강제 입원을 완화하도록 감독하는 절차가 추가됐다. 

이는 정신질환자 환자 인권 보호 측면에서는 환영할 만하다. 하지만 故 임세원 교수 피살 사건을 돌이켜보면 정신 질환자를 돌보는 의료인들의 자기 보호 권한을 빼앗아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법과 제도는 사회 구성원의 합의로 이뤄진다. 하지만 다수결 의사결정 구조에서 다수가 소수의 이해구조를 무관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소수를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치철학자 존롤(John Rawls, 1985)은 ‘공정으로서의 정의: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정치적인(Justice as Fairness : Political not Metaphysical’ 저서에서 사회구성원 합의 과정에서 소수(의사의 안전 보호)의 이해가 반영되지 못한 다수(정신질환자 인권)의 이익 추구는 폭력적 과정으로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사회적 행동이 사회 규범으로 자리잡기 전에 강제 입원 허용을 

한국 사회의 객관적 지표를 냉정하게 평가해보면 불신의 사회다. 불신 사회가 낳은 결과가 故 임세원 교수 사건에서 나온 반사회적 행동이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 배경과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의 제도적 틀 안에서 정신질환자가 의료인을 정신신체적 위협하는 반사회 행동은 최근 발의된 이른바 임세원 4법(진료거부허용, 정신질환자 의료인 상해 처벌 강화, 외래 강제치료 명령제, 비상공간 확보 의무 등)으로 막기에는 부족하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2017)에서 발표한 38개국 Better Life Index(계량경제에서 나오는경제지표가 아닌 개인의 삶의 질을 측정하고 모아 사회의 총체적 삶의 질을 수량평가)에서 한국은 주거와 교육은 10권 이내 비교적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지만 ‘지역사회’ 평가는 38개국 중 유일한 0점(10점만점)으로 꼴찌를 기록했다.(그림 1 참조. 출처: OECD, Better Life Index, 2017) 

구체적 평가 방법은 전주와 창원에서 주거와 상업 지역에서 면접조사를 했고, ‘다른 사람이 내가 어려울 때 도와줄 것으로 믿느냐’는 질문에 답한 결과다.
 
사회학자들(Yamagishi T, Cook KS. Generalized Exchange and Social Dilemmas. Soc Psychol Quart. 1993;56(4):235-248)에 따르면 사회구성원의 불신 구조는 주고받는 직접적 사회 구성원에만 불신이 그치지 않고 (generalized reciprocity) 관찰자인 제3자에도 쉽게 반사회행동이 파급된다.(social contagion) 종국에는 개인적인 도덕적 기능이 마비돼 반사회행동이 사회구성원의 규범으로 자리잡는다. 실험적으로 반사회행동의 사회규범화 과정으로 진행은 이미 죄수실험, 온라인모델등에서 입증됐다. (Zimbardo P. The Lucifer effect: Understanding how good people turn evil". JAMA. 2007;298 (11): 1338–1340)
 
▲몰개성화가 반사회 행동으로 이끄는 Zimbardo 행동모델
2017년 시행된 정신건강복지법은 불신 사회 문화배경을 갖는 한국에서 정신질환자를 담당하는 의료인들에게 기회적 불공평성을 담고 있다. 임세원 교수 사건에서 나온 반사회 행동이 사회적 감염(social contagion), 몰개성화를 거쳐 사회적 규범으로 굳어지기 전에 ‘강제 입원을 허용 완화를 철회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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