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9.07 07:59최종 업데이트 22.09.07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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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필수의료 살리자는 외침이 매번 메아리에 그치는 이유

치료할수록 적자 초래하는 저수가·의사 채용 어려워 남은 인력 업무과부하 악순환 문제 해결부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하경대 기자] "5년전 국회에서 외과계 몰락을 우려하는 토론회를 실시했다. 당시에도 조만간 수술 의사가 없어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외쳤지만 메아리에 그쳤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필수의료 정책을 바꿔보자는 취지의 국회 토론회에서 대한신경외과학회 김우경 이사장이 한 말이다. 김 이사장의 말처럼 필수의료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수차례 필수의료 문제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수차례 논의도 오고갔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현장에선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한다.  

안타까운 마음에 김우경 이사장이 언급했던 2017년 국회토론회 자료집을 살펴봤다. 무슨 담론들이 오고 갔고 어떤 부분이 개선됐을까. 

당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필수의료과를 살리기 위해 전공의특별법 시행과 함께 입원전담전문의 제도 도입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기피과 전공의 지원율을 높이겠다는 심산이었다. 구체적으로 박 전 장관은 주당 80시간 이하 수련시간 단축을 수행해 수련환경을 개선하고 입원전담전문의 수가를 인상하겠다고 당당히 밝히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나아진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현장을 들여다 보면 절대적인 전공의 수련시간은 줄어들긴 했다. 다만 물리적인 시간만 제한하다 보니 오히려 불법적인 진료보조인력(PA)이 양성되는 등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대한전공의협의회 제22기 집행부 연구팀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실시한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 자료를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자신의 병원이 PA를 운용한다고 응답한 전공의가 70%를 넘었다. 특히 PA로 인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전공의 비중은 2018년에 약 25%까지 증가했다. 실질적인 의료현장을 고려하지 못한 탁상행정의 대표적인 사례다.    

입원전담전문의 제도도 본 사업 전환 이후 1년여가 지났지만 아직도 고질적인 운영 모델의 ▲유연성 부족 ▲저수가 ▲인력 부족과 처우 등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이로 인해 시범사업과 비교해 본사업 운영기관도 45개소에서 48개소로, 입원전담전문의 수도 249명에서 276명으로 소폭 증가에 그쳤다. 당초 기대치에 비해 아쉬운 성적표다. 

의료 현장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정책은 이 뿐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비현실적인 저수가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세간의 관심이 쏠렸던 뇌혈관 수술은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뇌동맥류 개두술을 하고 있는 김용배 교수가 최근 관련 토론회에서 공개한 자신의 원가실적현황 자료에 따르면 그의 의료이익률은 -4%다. 환자를 살리기 위한 신념에 따라 매일같이 고난이도의 수술을 이어가고 있지만, 수술을 할수록 병원엔 손해만 끼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우리나라 수가 수준은 해외 선진국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두드러진다. 한국 뇌질환 수술 관련 수가는 일본의 20% 수준이다. 구체적으로 두개내 종양적출술과 뇌혈관 내 스탠트 수술 수가가 각각 일본의 15.5%, 17.1%다. 뇌동맥류 경부 클리핑 수술 수가는 일본의 21.2%에 그친다.  

최근 복지부는 필수의료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필수의료 확충 추진단'을 발족했다. 공공정책수가 등을 통해 필수의료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인데, 사실상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마지막 기회로 보인다. 

그러나 의료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이제와서 갑자기 해결할 수 있겠나"라는 자조 섞인 질타가 나오고 있다. 지방의 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수가 조금 개선된다고 의대생들이 고생이 뻔히 보이는 전문과나 지방 근무를 지원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산부인과 전문의도 "단순히 과별로 몇가지 문제만 산발적으로 해결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지금까지 쌓이고 쌓인 고질적인 국내 의료시스템의 문제를 이번 기회를 삼아 본질부터 뜯어 고쳐야 한다"고 귀뜸했다.   

국내 필수의료는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한발자국 뒤엔 수술할 의사와 인프라가 없어 환자가 발만 동동 굴러야 하는 '의료 공백'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야 말로 현장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돼야 한다. 특히 대한민국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현장 의료진이 바로 서야 필수의료도 바로 설 수 있다. 그나마 남은 인력들이 적자와 인력난에 허덕이지 않도록 지금이라도 정부의 근본적인 정책적 뒷받침을 기대해본다.  

하경대 기자 (kdha@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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