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4.13 06:04최종 업데이트 19.04.13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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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의대 신설 주장, 싸구려 진찰료·대형병원 선호로 인한 의료수요 착시 현상

포퓰리즘 아닌 국민을 위한 적정 의사인력 수급 정책 마련 필요

[칼럼]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대한민국 총선과 대선 시즌에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특징적 공약이 있다. 바로 의대 신설이다. 특정 지역에서의 의대 신증설 내지 의사인력 확보가 마치 거센 표심의 기류로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략적 계산에서인지, 큰 선거판에서는 여지없이 유력 후보들 간에 경쟁적으로 유려한 장밋빛 색채로 이런 공약을 내놓고 있다. 

2019년 기준으로 의사국시 합격자 수는 총 3115명인데, 국내 모대학의 보건경제학자는 의과대학의 정원을 3600명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는 검증 안 된 주장을 단골메뉴로 제시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의과대학 정원을 현재의 수준보다 두 배 가까운 6,000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노동계의 주장도 있다.

얼마 전 세계의학교육연합회(WFME)에 “대한민국의 한의사는 의사 역할도 한다”라는 무지한(?) 내용의 서신을 보내 국제적 망신을 자초한 것으로 알려진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대로라면 이미 의대 정원은 4000명에 달한다. 이렇게 보면 선거 때 마다 등장하는 의대 신증설 문제와 다양한 형태로 무늬만 바꿔 ‘우회상장’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로 유급을 당한 학생과 휴학생을 비롯해 탈북인 출신 의사와 외국 의대 졸업자 등 우리나라 의사국시에 응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수험생들을 합친 국시 응시자는 총 3300명에 이른다. 여기에 외국에서 공부한 해외파 의대출신 인력이 점차 증가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의사인력 문제는 ‘증원하는 것’이 당면과제가 아니라 다양한 루트로 유입되는 자연발생적 ‘순증 인력 문제’가 더 시급한 대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적정한 의사 인력은 어느 수준인가

국가에서 필요로 하는 적정 의사인력을 어느 정도 신뢰성 있게 추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이다. 현재의 연구 방법으로는 적정 인력의 근사치 추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과거 문민정부라는 이름을 내건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의과대학 신증설이 우후죽순처럼 돋아나 당시에 인가된 의대 수를 양 손가락으로 꼽기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또한 역대 정권들은 목포나 순천과 같은 일부 지방도시가 의료기반시설이 취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의대 신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의대 관련해 현 정부에서도 폐교된 서남대의 정원을 근거로 공공성을 내세운 의학전문대학원을 신설하겠다고 했다.

공공의대란 이름을 내걸어 인력을 배출하면 정부가 바라는 근사한 공공의료가 저절로 구현될 것이라는 논리의 허구성은 흡사 오십보백보 인듯하다.  이는 선진화된 보건의료 정책에 목말라하는 일반 국민들을 위해 진정성 있는 정책이나 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 고민했다기보다는 단순히 표심을 겨냥한 정략적 산술 방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필자가 의학교육평가원장으로 근무한 경험에서 보면 정부와 해당 주무부처는 전문성과 진정성에 근거한 부실대학의 질 관리 보다는 정치적 계산에만 몰입해 주판알만 굴리다 의사결정의 적기를 놓칠 수 있다. 결국 학생과 부모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만 안겨줬던 서남대 폐교사태는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은 고등 범죄에 불과했다. 

적정한 의사인력 수급을 위한 정부 정책수립은 늘어나는 보건의료 인력을 감당해 낼 시장규모와 인건비부담, 고용가능성, 의료전달체계, 건강보험 재정 등 다양한 요소와 기존의 보건의료 정책이 그려내는 큰 그림과 일관성을 같이 해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대학병원이 필요하다는 요란하고 막연한 주장과 남발되는 공약은 다시 생각해볼 문제다. 전문 영역의 경우 민심기반 정책이 반드시 민주적이지도 않고 본래의 목적과 크게 어긋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정한 의료인력 판단할 수 있는 제도개선부터 
  
지난 1990년에 캐나다 정부는 일부 보건경제학자들의 이론을 근거로 의대 정원 감축을 전격 단행했다. 의사 수를 줄이면 자연스레 보험 청구 건수의 감소로 이어지면서 결과적으로 의료비 절감 효과가 나타난다는 주장에 힘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캐나다의 무의촌이 급속히 증가했다. 무의촌 문제는 결국 거대 국가적 정치 쟁점으로 불길이 번져 고심 끝에 외국의사의 영입을 결정하게 이르렀다. 이로 인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백인의사들이 캐나다 외국의사 유입대상으로 첫 번째 타깃이 됐다. 당시 약 100명의 백인의사가 조건부 면허로 캐나다에 이주했고, 2년 내 캐나다 의사국가시험을 통과하는 조건으로 정식 의사 면허 부여의 특혜가 주어졌다. 

우리나라에서 의사인력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들은 대개 OECD 통계를 기초로 해서 의료 인력 수급의 단순비교를 통해 나온다. 여기에는 모든 나라의 의사 역할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한편으론 다른 보건경제학자들은 이미 의사증가율이 OECD 국가를 앞질러 머지않아 의사과잉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보태고 있다.  

이와 같은 인구대비 의사 수에 대한 판단을 하는 것은 오류의 요소가 매우 크게 잠재돼 있다. 이는 우리나라와 의사 수가 많은 선진국과 의료 형태나 사회문화적 배경과 여러 가지 상황들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의사 수가 많은 나라는 일차 의료의 개념이 분명한데 반해 우리나라나 미국, 일본 등은 전문의 진료가 주된 형태이다. 

이렇게 싸구려 진찰료가 갖는 정부주도형 의료의 도덕적 해이가 만들어낸 신기루와 같은 허수의 의료 수요와 문재인 케어 이후 날로 심화되는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지지하기 위한 의사인력 증원은 이미 세계 최고의 의료접근성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실상과는 그 논리와 주장이 정면 대치된다. 

무엇보다 정확한 현재의 의료 인력에 대한 파악조차 힘들어 앞으로 이 문제를 보완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적정 의사인력에 대한 예측과 제도적 설계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앞에서 보여주는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보건의료인력 추계를 위한 전문적인 공공기구와 보건의료 인력에 관한 전문가 양성이 우선 첫 출발이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더 이상 고도성장 시절의 의료도 아니고 그렇다고 GDP대비 의료비 지출을 선진국과 같이 10% 이상 쓸 각오와 여력이 있는 나라가 아니다. 이를 적정 의료 인력의 양성 정책은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의료인 인력추계의 난제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견지하고 있는 공통된 원칙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바로 약간 모자라는 정도의 의사 수를 유지하는 형태다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전문직종인 의사인력의 과잉 배출이 가져올 사회적 피해나 윤리적 파장이 크다는 것을 다양하고 많은 경험에서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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