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03.30 07:58최종 업데이트 17.04.0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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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환자 정보 무단열람했다면

환자의 소중한 정보를 지켜야 할 의사의 의무

[칼럼] Guardian Medical Clinic 서성희 원장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본 칼럼은 현재 캐나다 벤쿠버에서 'Guardian Medical Clinic'을 운영중인 서성희 원장의 글입니다.

세월호, 국정농단 그리고 탄핵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사회의 여러 변화를 지켜보며 안타까워 하는 마음은 비록 머나먼 나라에 살고 있지만 쉽게 변하지 않나 봅니다.

그 중 무엇보다도 저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고 백남기 농민의 병원 입원과 치료 그리고 사망과 관련하여 그 개인의 소중한 정보가 너무도 쉽게 열람되었다는 것입니
다.

지난 해 12월 한 언론에 따르면 고 백남기 농민이 입원 치료를 받았던 병원 소속의 60여명, 그 가운데는 타과 의사, 다른 부서의 간호사, 행정 분야 관계자 등 환자의 진료 및 치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약 220건 진료 기록에 접속했다고 합니다.

단지 치료 과정이 궁금하다는 이유로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의 이목이 집중된 사건이라는 이유로 특정 환자의 소중한 정보가 마구 읽혀지고 그것이 또 다른 곳에서 너무나 가볍게 이야깃거리가 된다는 것이 일개 한 의사로서 분노를 일으키게 합니다.

2008년 10월 제가 전공의 수련을 받던 알칸사 주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습니다. 피해자는 방송국 앵커우먼이었습니다. 퇴근하고 귀가하던 중 자신의 집 앞 현관에서 잔인하게 구타 살해당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미국에서는 어쩌면 새로운 일도 아니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일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사건은 범인을 검거하고 재판을 하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범인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일단락 되었으나 그 재판의 과정에서 살해 피해자의 병원 입원 치료 기록이 두 명의 병원 행정 업무 직원과 그 날 근무일이 아니었던 다른 한 의사에게서 열람되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로 인해 그 병원은 사과문을 발표하고 법원 소송까지 이어지지 않은 몇 명의 직원이 해고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알칸사주 의사협회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그 의사에 대한 벌금과 특정 기간 면허 정지를 명했으며 그 의사가 몸담았던 다른 병원은 급기야 문을 닫기까지 했습니다.

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피해자 어머니가 이 세 사람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법원에서 이 세 사람은 "단순히 컴퓨터로 진료기록을 읽는 것이 죄는 아닐 것 같았다" 라던가 "그 환자에게 도움을 줄 방법이 없나 연구하려고 했다"는 등의 주장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유사하게 미국도 HIPAA(Health Insurance Portability and Accountability Act) 라고 하여 의료보험의 연속성 및 환자 개인 정보 취급에 관한 법안이 있습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6년 승인한 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법에 따라서 기본적으로는 면허가 없는 의료인(의사, 간호사 등)의 환자 치료도 엄격히 법으로 금하고 있으며 외국 의사들의 미국 연수에도 큰 영향을 줄 정도입니다.

일례로 제가 근무하던 당시 미국 의사면허시험을 준비하던 다른 동료 한국 의사선생님에게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제 일상을 보여주던 중 과장님에게 큰 꾸지람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병원을 구경시켜주는 것은 좋으나 환자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거나 전자차트를 함께 보는 일은 없도록 하라고 구체적으로 일깨워주었습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알고 있는 바대로 알칸사주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고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알칸사 주립병원에는 빌 클린턴의 기록도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클린턴 대통령 자신과 그 대통령을 진료했던 의사 외에는) 어떠한 내용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1년차 첫째 달에 있었던 오리엔테이션에서 HIPAA 법률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함부로 유명인의 기록을 '찾기(search)' 메뉴에서 열람하지 말라고 수 차례 들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실제로 이런 유명인의 기록을 열람하려고 찾기기능이라도 활용하면 병원 기록 관리실에서 단 몇 초도 안되어 연락이 옵니다.

호출기 삐삐로 연락이 오거나 아니면 병원 외래 전화로 혹은 과장님이나 다른 스탭들에게 통보가 되기도 합니다.

무척이나 엄격하기 때문에 안 지킬 수가 없는 준수사항입니다.

지난 달 캐나다 밴쿠버에서는 약물 처방 기록이 무단 열람되었다 해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BC PharmaNet 라고 하는 것인데 네 명의 의사가 무단으로 자신이 치료한 적도 없는 환자들의 약물 처방 기록에 접근했다는 것입니다.

아직 BC주 의사협회에서 진상을 파악 중이라고는 하는데 좋은 의도든 아니든 환자의 기록을 무단으로 보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이야기들 합니다.

그러나 그 수많은 정보 중에서 나의 그리고 내 가족의 소중한 병원 및 처방 기록이 떠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종이 차트를 쓰던 시절에는 분실 및 파손이 걱정되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이용한 무단 유출이나 해커에 의한 공격이 걱정되는 시대입니다.

너무나 쉬워진 로그인 및 클릭 몇 번으로 우리가 진료하는 환자들이 소중한 정보가 유출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백남기 # 의무기록 # 서성희 # 메디게이트뉴스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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