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9.04.11 10:05최종 업데이트 19.04.1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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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죽음 내몰고 환자 안전 위협하는 '전공의 과로 현상' 반복되는 원인은

[전공의 과로사②] 대형병원 쏠림현상·근무시간 조작 등 전공의법 위반·전공의법 한계

전공의들은 늘 힘들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의료계 밖에 있는 국민들은 도대체 전공의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기에 항상 힘들다고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의료계 안을 들여다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드라마와 같은 영상 콘텐츠를 통해서고 다른 하나는 환자나 환자 보호자로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다. 드라마에서 비춰지는 대학병원 전공의들은 바쁘고 힘들어도 언제나 단정하고 아름답다. 병원에서 보는 전공의들은 회진할 때나 수술 전에 동의서를 받을 때만 볼 수 있고 나머지 시간에는 얼굴도 보기 어렵다. 이는 왜곡됐거나 단편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전공의 과로사' 기획은 국민들에게 전공의들이 왜 과로할 수밖에 없고 전공의 과로가 환자의 안전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자세히 보여주기 위해 마련 됐다. 전공의를 둘러싼 근무일지를 재구성해 보여주고 전공의 과로 현상이 반복되는 원인을 짚은 다음 대안은 무엇인지 제시하고자 한다.

전공의 과로사
전공의는 정말 과로에 노출돼 있을까... 대학병원 외과 전공의의 36시간 근무일지
② 전공의 죽음 내몰고 환자 안전 위협하는 '전공의 과로 현상' 반복되는 원인은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 질적 수준 높이는 열쇠... '전공의 과로사' 문제 해결할 실마리는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정다연 기자] 전공의들은 환자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맨 처음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대처한다. 하지만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수면 부족과 불충분한 휴식, 영양 부족 등은 전공의들을 과로사로 내몰 뿐 아니라 처방 실수 및 투약 오류 등 환자의 안전에도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전공의 과로 현상'이 해결되지 않고 반복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대형병원 쏠림 현상, 잡무로 인한 업무 과중, 전공의법 위반, 전공의법의 한계 등 네 가지로 추려서 짚었다.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전공의 과로에 미치는 영향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3월 18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2017년 빅5 의료기관의 진료비가 전체 5.5%에서 2018년 6.23%로 전체적으로 20% 가까이 상승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빅5 병원을 포함해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은 오래 전부터 지속됐고 꾸준히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뾰족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전공의 60%가 상급종합병원에 몰려 있기 때문에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전공의의 업무를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대형병원일수록 전공의 수가 많지만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 수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호소했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 A씨는 "환자들이 끊임 없이 밀려 온다. 처음엔 일손이 이렇게 부족한데 왜 정부가 전공의 정원을 늘리지 않는지 의문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체 의사 수가 적은 게 아니었다. 내가 일하고 있는 대형병원의 문제였다"며 "파견을 갔던 중형병원에서는 전공의 수가 적었는데도 환자 수가 적어 대형병원보다는 버틸만 했다"고 밝혔다.

A씨는 "그렇다고 병원이 환자들에게 우리는 환자가 이미 많으니 오지 말라고 할 수 없는 일이다"며 "일선에서 환자들을 보는 전공의들의 업무는 가중되고 그러다보면 전공의들이 퇴근을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잠도 자지 못하고, 씻지도 못하고, 밥도 먹지 못하면서 일을 한다"고 말했다.

A씨는 "대형병원 쏠림 현상은 전공의 과로로 이어진다. 전공의들은 처음엔 버티지만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수련을 그만둔다. 전공의들이 중간 수련병원을 관두고 나간다고 해서 그 인력이 충원되는 것도 아니다. 남은 전공의들이 그만둔 이들의 몫까지 나눠서 맡아야 하기 때문에 과로는 배가 된다"고 지적했다.

수련만으로도 벅찬데 잡무까지 떠맡는 전공의들

전공의들은 의사로서 환자들을 보고 수련을 하는 업무만으로도 벅찬데 수련과 전혀 관련이 없는 잡일 때문에 업무가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공의를 막 시작한 인턴과 낮은 연차 레지던트들은 수련과 전혀 관련이 없는 교수 심부름, 논문 복사 등 잡무를 하느라 수련 외 추가 업무를 했다. 이는 전공의의 수련을 방해하는 행위이자 환자의 안전을 침해하는 행위로 마땅히 금지돼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전공의 잡무에 대한 문제는 끊이지 않고 있다. 전공의 수련을 지도하는 지도전문의의 역할과 책임을 밝힌 교육 자료는 지도전문의는 전공의가 논문작성을 위한 인력이 아님을 명확히 인지해야 하고, 논문 작성은 최소한의 수준에서 의학적 사고를 기르기 위해 이뤄져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특히 지도전문의의 학문적 이득을 위해 전공의가 논문작성에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7년에는 전북 지역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가 잡무로 인한 수련 과정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그는 교수가 논문을 쓰는데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해외 학회에 참석하는 교수를 위해 여행지를 정리했다. 또 교수 논문을 위해 환자 관련 데이터를 엑셀 파일로 만들기도 했다. 잡무가 전공의 주요 업무가 되는 셈이다. 이 전공의는 당시 잡무로 인해 전공의로서 수련 받는 시간을 침해 받았고 이 때문에 하루에 1~2시간 밖에 자지 못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2년이 지난 2019년에도 전공의들이 수련병원에서 수련 대신 잡무를 처리하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수련기관은 행정사무 할 사람의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전공의에게 행정 업무를 맡겨서는 안된다는 내용 역시 지도전문의 교육자료에 명시돼 있지만 일부에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 

전공의 B씨는 "진료실적 증거자료로 쓰이는 수련환경평가 서류, 환자 스케줄 조정 등과 같은 진료 행정 업무, 당직 스케줄표 정리 및 배부 등 각종 의국 내 비서 행정 업무, 교수 개인 심부름 등을 여전히 전공의들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B씨는 "교수들이 자신의 자동차, 카메라, 컴퓨터 등 수리를 위해 맡겨달라고 전공의에게 시키는 경우도 있고, 운전기사 노릇까지 시키는 경우도 있다"며 "전공의들에게 카드를 주고 구매 대행을 시키는 교수도 있다"고 말했다.

휴게시간 보장 않고 전공의 근무시간 조작하는 수련병원

전공의법은 전공의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보건복지부의 부실한 감독과 미약한 처벌로 인해 이 마저도 잘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이 보장하는 전공의의 휴게시간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또 수련병원들은 공공연하게 전공의들의 전자의무기록(EMR) 접근을 제한해 전공의들의 근무시간을 축소하는 등 조작을 일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엄연히 의료법 위반으로 전공의들의 과로뿐 아니라 환자들의 안전에도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행위라는 지적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 12일 전공의 과로 실태 파악을 위해 93개 수련병원에 소속된 전공의 665명을 대상으로 '업무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휴게시간을 알 수 없거나 전공의 수련계약서에 명시된 내용 대로 휴게시간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는 무려 89.8%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34.9%는 휴게시간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응답자의 39.4%는 그나마 주어진 식사시간도 항상 방해받는다고 답했다.

설문 결과에 따르면, 전공의들은 '점심시간이 5분도 되지 않는다', '밥 먹는 시간은 자기 전까지 하루에 30분 정도다', '5일에 2회 정도 식사를 할 수 있다', '2주간 점심식사를 해 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전공의 A씨는 "점심시간이 따로 없다. 병원은 점심시간이라고 밥 먹으러 다녀오라는 분위기도 아니다. 죽지 않으려고 틈틈이 과자 같은 것으로 때우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굶었다가 당직 시작 직전에 몰아서 밥을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전공의들의 전자의무기록(EMR) 접속을 차단해 전공의 근무시간을 실제보다 축소하는 등 조작을 하는 수련병원도 많다. 이는 전공의의 주당 최대 근무시간인 주 80시간 근무를 지키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공의법 위반사항이면서, 동시에 당직 근무하는 전공의의 이름으로 다른 의사의 이름으로 처방을 한다는 점에서 의료법 위반사항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제대로 된 조사도 하지 않고 손 놓고 방관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제보를 통해 전공의의 전자의무기록(EMR) 접속 차단을 확인한 병원만 해도 서울에 2곳, 부산에 2곳, 대전 1곳, 대구 2곳, 경남 1곳, 충남 1곳 등 전국에 총 9개 수련병원이다.  

대전협 이승우 회장은 "수련병원의 EMR 접속 차단 조치는 전공의법에 따른 법정 상한 근로시간인 주 80시간을 초과해 전공의들이 근무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한 꼼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전공의법의 한계... 최대 근무시간이 최소 근무시간이 된 규정

전공의법은 수련병원이 전공의에게 4주의 기간 동안 평균 1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하는 수련을 시키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수련병원이 전공의에게 연속해서 36시간을 초과해서 수련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전공의법은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는 전공의가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의료 인력이기 때문에 만일의 상황을 대비해 법이 규정한 전공의의 최대 근무 시간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규정은 수련병원이 전공의들을 합법적으로 착취하는 최소 근무시간으로 악용하는 데 쓰이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36시간 연속 근무 조항은 전공의들의 무리한 당직 근무 반복을 법적으로 용인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문제는 잦은 당직 근무가 병원에 상주하는 전문의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당직 근무 환경 자체가 가지는 업무 부담을 늘리고, 이에 따라 전공의들을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으로 몰고 간다는 점이다. 이 역시 전공의 과로사와 환자 안전 위협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전공의 A씨는 "전공의들에게 36시간 근무는 일상이다. 나는 지금도 일주일에 3번은 36시간 연속근무를 한다. 병원에서 의사가 당직 근무를 한다는 것은 주간 정규 근무를 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노동이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자고 있다가 잠깐 일하는 그런 수준의 노동이라고 생각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36시간 연속근무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A씨는 "지방에 있는 수련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들은 더하다. 8일 연속 당직 근무를 하는 곳도 있다"며 "전공의법을 위반하면 수련병원은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다. 개선 조치는 없다"고 덧붙였다.

대전협이 실시한 '업무강도 및 휴게시간 보장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89.32%는 야간 당직시 연속 5시간 이상 수면이 제공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32%는 불충분한 수면으로 업무를 안전하게 수행하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고 답했다.

설문 조사에서, 전공의들은 '당직시 연속 수면시간이 2시간이 채 안 되는 것 같다', '당직 콜이 계속 오던 것이 익숙해서 당직이 아니더라도 잠이 계속 깬다', '당직을 서고 나면 너무 졸려서 환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환자를 착각하여 다른 환자에게 검사를 하거나 투약할 뻔한 적이 있다', '당직 후 다음날 주간 근무 시에는 항상 두통과 멍한 상태, 손 떨림, 흐려진 판단력을 가지고 환자 수술을 보조하고, 침습적 시술과 처치를 한다. 그런 날이면 부끄럽게도 외래 진료시에도 중요소견을 놓치고 환자를 보내는 경우도 다수 있다'고 밝혔다.

정다연 기자 (dyjeong@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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