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7.10.26 06:00최종 업데이트 17.10.26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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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케어 성공열쇠는 '일차의료' 활성화

[칼럼] 유지원 네바다주립의대 교수

정부-지자체 협력, 일차의료인 우선 양성 필요해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윤영식 기자] 필자는 미국 한 의대에서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내과 의사이고, 환자의 상당수가 메디케이드 가입자이다. 지난 여름 어느 일요일 새벽 2시, 콜센터에서 84세 혼자 사는 흑인 할머니가 잠이 안 온다고 연락이 왔다. '헐, 어쩌라고'하며 속으로 생각했지만 심각한 건강 문제는 없는 걸 확인했다. TV나 라디오를 켜지 말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면서 좋아하는 책을 읽으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반대로, 필자는 최근 두 돌이 지난 딸이 갑자기 열이 나서 보호자 역할로 담당 주치의에게 금요일 밤에 연락했다. 이후 주말 당직인 소아과 주임교수가 토요일 오후까지 두 번 더 전화로 상담을 해줬다. 그는 딸의 질환이 편도선염이라고 진단하며 주말 동안 집에서 상비약을 먹이고 주중에 외래진료를 받으라고 했다. 보통 미국 일차의료 담당 의사들은 동료 의사들끼리 기간을 나눠 저녁 또는 주말에 환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상담 전화를 받는다.
 
일차진료 의사는 보험에 가입된 환자에게 연락을 받으면 적절히 답을 해줄 의무가 있다. 대게 48시간 이내로 제한을 둔다. 연락 방법은 전화, 이메일, 팩스 등 다양하다. 오바마 케어 이전에 미국에서 보험이 없는 환자(무보험자)라면 외래에서 이런 일차진료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다. 무보험자는 마치 풍선효과처럼 상급병원에서 바로 진료하고 입원 진료를 받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 외래 진료비 보다 입원 진료비의 부담이 훨씬 크기 때문에 무보험자는 진료비가 무서워 아프지 말아야하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었다.
 
이번에는 상황을 바꿔 병원의 입장을 들어보자. 병원은 무(無)보험자에게 입원진료를 해주고도 입원비를 제 때 받지 못해 적자가 누적되고, 일부 영리병원은 무보험자의 입원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생겼다. 무보험 환자는 일차의료에 이어 입원 진료도 하지 말아야 했다. 말 그대로 공급자와 수요자, 어느 쪽도 만족하지 못하던 최악의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오바마 케어가 탄생한 것이다.
 
오바마 케어의 가장 큰 골격인 메디케이드 혜택 확대(Medicaid expansion)는 무보험자의 메디케이드, 즉 저소득층이나 장애인의 국가보험으로의 편입을 늘린다는 것이다. 최근 오바마 케어 실시 후 미국 의료시스템의 변화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는데, 미국의학협회지(JAMA)에 실린 내용을 보면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2014년 무보험자의 메디케이드 편입을 늘린 19개주(州) 병원은 메디케이드 편입을 늘리지 않은 25개주 병원보다 병원 진료비의 미수금이 줄어들고 병원 경영 수지가 개선됐다. 이에 대한 해석을 두고 논문의 저자인 워싱턴 도시연구소(Urban Institute, Washington DC)는 일차의료의 강화에 따른 문지기(gate keeping)효과로 메디케이드에 편입한 무보험자들의 의료 이용을 적절히 조정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얼마 전 한국에서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밑그림이 발표됐다. 의료정책과 경제성 평가를 연구하는 필자도 그 배경과 밑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다. 미국보다 의료비 부담이 적은 한국에서는 급여서비스 확대로 환자들의 부담이 줄어들지만, 대신 의료 이용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행중인 의료법 테두리 내에서는 의료 이용량 증가에 따른 제도적 장치가 여의치 않다. 이를 위해 지난 19대 국회에서 일차의료 발전 특별법이 발의됐고, 20대 국회에서도 일차의료보건학회를 중심으로 관련 법안의 발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 일차진료를 담당하는 필자의 경험에서 볼 때, 문 케어가 성공하려면 일차의료가 활성화돼야 한다. 일차의료를 담당하는 의사에게 환자가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한다. 이 때 저평가된 일차 의료수가의 인상이 동반돼야 한다.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인구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증가, 대형병원 쏠림 현상 등에 대한 보완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을 위해 일차 의료기관은 외래 및 재활 중심, 상급 의료기관은 급성 환자나 희귀난치성 환자 치료 등 분업화된 진료체계 정립이 필요하다. 일차의료 의료기관과 의뢰 의료기관 간에 원활한 정보 공유 인프라도 구축해야 한다.  
 
일차의료가 활성화되려면 앞으로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가 많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 방안이 나와야 한다. 또 미래 의사 양성의 우선순위를 일차의료인으로 정해야 한다. 기존의 세부 전문의나 퇴직의사도 일차의료를 통해 새로운 의료전달체계에 쉽게 자리잡도록 도와주는 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칼럼 # 유지원 # 의료정책 # 경제성평가 # 네바다주립의대 # PCORI

윤영식 기자 (column@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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