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6.04.23 07:55최종 업데이트 16.04.2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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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미국 병원 체험기上

인턴에게 '일'을 시키지 않는 일본

임태홍 씨는 올해 겨울 의사 국가 고시를 치른 후 일본과 미국 병원을 체험했다. 그는 현재 공중보건의사 재직 중이다.
 
 

"충격적인 만남이라는 것이 있다.
처음 보는 순간 일체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망연자실 멈춰서 있게 되는 그런 만남이 있다.
벼락이 꽂혀 등줄기로 전류가 치달린 듯한 순간이다.
그런 만남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인생이 풍부하다.
만남의 대상이 사람일 수도 있고 책일 수도 있고 영상일 수도 있다.
음악과의 만남일 수도 있다."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 중』 - '다치바나 다카시'
 


본과 1학년 말 겨울, 미지의 세계를 책 속에서 발견했던 그때가 내겐 첫 '충격적인 만남'이었다.

이른바 '무엇을 모르는가'를 알게 되는 '무지의 지', 즉 소크라테스적 순간이다.

그 후로 4년이 지난 2016년 겨울, 나는 지금 도쿄와 뉴욕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낯선 대도시 안에서 겨우 만원이 들어있는 얄팍한 지갑을 매일 들여다보며...

 
다치바나 다카시라는 일본 저널리스트의 개인 도서관. 난 그의 팬이다. 다치바나는 책이 넘쳐나 빚을 내면서까지 고양이 빌딩(빌딩 밖에 고양이 얼굴이 그려져 있다)을 짓고 수만 권의 책을 보관했지만, 이내 도서관이 다 차버려 월세로 방을 구해 따로 책을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의과대학

기본적으로 일본의 의과대학은 6년제(2+4학제)고, 크게 국립과 사립으로 나뉜다.
 
국립대학은 '구제국대학'이란 역사를 가지며, 도쿄대학과 교토대학을 필두로 오사카, 도호쿠, 나고야 등 쟁쟁한 경쟁 대학들이 포진해있다.
 
이들 의대는 각 현에 분포해, 해당 지역의 의료를 책임진다.

무조건 인서울을 고집하는 우리와는 달리, 일본 고교생은 고향에서 진학하길 선호하고 일본 국립대학은 저렴한 학비와 양질의 교육을 앞세워 지방 인재를 흡수하고 있다.

iPS(유도만능줄기세포)로 노벨상을 받은 야마나카 신야는 고베대학 출신이고, 작년 선충의 기생 감염에 대한 새 치료법으로 같은 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 역시 국립대 출신이다.

사립대학은 입시 자체가 국립과는 달라, 대학별로 본고사 형태의 입학시험이 존재한다.
 
게이오 의과대학이 사립의과대학 중 최상위권이며, 내가 다녀온 토호대학 역시 사립대다.
 
 
동경대를 구경하러 갔는데 마침 학력고사 날이었다.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모습. 



일본의 수련과정

토호대학은 오모리, 오하시, 사쿠라 세 개의 부속 병원을 갖추고 있으며, 하네다 공항의 클리닉을 운영하는 도쿄의 중위권 사립의대다.

사립의대는 한 학기 수업료가 수천만원에 가까워, 주로 비싼 학비를 감당하는 학생들이 진학한다.
 
나는 많은 일본 의사와 의대생을 만나면서 '당신 부모님은 의사입니까?'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아왔다.

그도 그럴 게, 내가 만난 의사나 의대생의 부모 중 열에 아홉은 의사였다.

 
일본 의대 본과 4학년 학생들. 당시 국가고시가 몇 주 안 남은 상태라 공부에 매진 중이었다. 4~5명이 한 자습실에 모여서 공부하는데, 인터넷 강의가 보편한된 것 같았다.


일본의 수련과정은 한국과 조금 다르다.

한국의 인턴 과정과 유사한 견습의는 기간이 2년으로, 그 과정을 마쳐야 수련 받을 전문과를 선택할 수 있다.
 
전공마다 수련 기간이 미세하게 다르지만, 큰 틀에선 한국과 유사하다.
 
일본 수련 시스템은 미국의 매칭 시스템을 본떠, 지원자와 병원 사이 우선순위를 고려해 서로 맞는 짝을 맺어준다.

한국처럼 수도권이나 특정 병원의 특정 과에 몰리지는 않고, 각자의 출신 대학이나 고향 등을 고려해 지원한다.

이때 의과대학 성적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아, 적성에 맞춰 소신대로 전문과를 선택할 수 있다.

 
'진보초'라는 유명한 고서점 거리의 한 서점에 있던 인체 모형. 여기를 찾기 위해 지하철에서 길을 묻다 동행한 백발 할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는 홋카이도의 심장 내과 의사였다.




일본의 '진짜' 수련

토호대학이 운영하는 오모리 병원의 소화기내과에 머물던 나는 내시경과 ERCP 등을 주로 참관했다.

한 번은 상부 내시경을 보고 있을 때였다.

옆에 가운을 입고 애 띄어 보이는 사람이 스크린을 응시보고 있었다.

학생인가 싶어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걸었다.

"학생이십니까?"라고 물었더니, "견습의입니다"라고 대답한다.

견습의(우리로 따지면 인턴)가 멍하니 구경만 하는 상황이 잘 이해 가지 않아, 전문의 선생님께 여쭤봤다.

"일본에서 견습의는 무슨 일을 합니까?"

"견습의는 말 그대로 견습을 받는 의사로, 우리 입장에서 보면 의국을 들러주는 손님입니다. 기본 술기를 보고 익혀, 이 시기는 앞으로 어떤 과를 전공할지 충분히 고려하는 때죠."

 
하부 내시경 사진입니다. 일본은 수면 마취를 거의 하지 않았다. 주임 교수님이 “일본은 마취를 거의 하지 않는데, 한국은 거의 필수라지?”라던 기억이 난다. 


그때 문득 우리나라 수련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생각하던 합리적 방식의 수련과 수련의에 대한 존중.

간접 경험만을 했던 그런 세계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한국에서 피교육자와 교육자의 관계는 윤색된 것이다.
 
학교 강단이나 병원,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관계의 불합리성은 전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상급자의 지도로 단순한 잡일이 아닌 꼭 필요한 업무만을 배우고, 과연 내가 평생 어떤 전공에 발을 담글 것인지 체험해보는 시간.
 
'그것이 인턴이라는 과정이 가지는 의미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석하게도 대한민국에선 이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불행한 것은 피교육자뿐만이 아니다.
 
다수의 교육자도 여러 고충을 겪고 있다.
 
바람직하지 않은 시스템의 폐해는 모든 구성원에 적용된다.
 

나는 도쿄 한 대학병원의 일본 의사들 틈에 껴서, 생소한 풍경을 바라보며 비통함과 부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부러운 일본 의료

일본의 의료는 단계별로 매우 잘 나누어져 있다.
 
개인 의원에선 기본적인 환자를 진료하고, 일정 수준을 넘어선 질환은 중소병원에서, 합병증을 가진 중증질환은 대학병원에서 다룬다.
 
의료전달체계가 잘 갖춰진 셈이다.
 
대학병원 의국이 중심이 돼 의국원을 인근 1, 2차 병원에 아르바이트 형식으로 보내는데, 전공의들은 부족한 급여를 이런 파견으로 충당한다.

많은 전문의가 대학에 남기 때문에 의사 1인당 업무도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전공의 아르바이트가 가능하다.
 
일본에서 의국은 평생직장으로, 대부분 전문의가 대학을 떠나는 한국 의사들에겐 생소하다.

나를 지도했던 분도 의국 9년 차, 13년 차 선생님들이었다.
 
앞에서 말한 '각 대학이 해당 지역 의료를 책임진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수련 중이신 박광업 선생님께 연락드렸더니 한국 의사 도쿄대 모임을 데려갔다. 맨 왼쪽부터 한강성심병원 정신과 교수님, 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님, 옥스퍼드 졸업하고 동경대에서 PhD를 하고 계시던 화학과 선생님, 동경대 마취과 박광업 선생님, 그리고 나.

 

#일본의료 #임태홍 #메디게이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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