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1.17 17:06최종 업데이트 23.11.1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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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손상 신생아, 의료진 과실 없지만…법원, 자연분만 위험성 설명안했다고 '2000만원' 배상 판결

환자의 자기결정권 침해 지적…산부인과 "의사의 결정권 무시하는 판결, 모든 의료행위 부작용 설명하다 골든타임 놓쳐"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신생아가 뇌 손상으로 태어난 사건의 보호자가 병원과 의료인을 상대로 1억7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가운데, 2심 재판부가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설명의무 위반으로 2000만원을 선고해 의료계가 술렁이고 있다.

재판부는 출산 과정에서 산부인과 의료진의 과실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자연분만 과정에서의 위험성을 설명하지 않아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산부인과의사들은 결국 분만시 사용되는 모든 행위의 부작용을 일일이 환자에게 설명해 환자가 스스로 유도분만과 제왕절개 중 적합한 것을 선택하게 해야한다는 것이냐며 반발하고 있다.

17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고등법원이 신생아에게 뇌 손상이 발생한 사건을 둘러싼 손해배상 항소심에서 환자 측의 청구를 일부 받아들여 원고인 병원과 의료진에 2000만원과 지연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법원, 자연분만 위한 '옥시토신' 위험성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대법 판례와 배치

앞서 1심은 환자 측의 손해배상 17억원 청구를 기각됐지만 항소심에서는 일부 배상 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의료인에게 다른 과실은 없지만 유도분만 시 투여한 옥시토신의 부작용을 설명하지 않아 설명의무를 위반했다며 환자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당시 상태에 비춰 옥시토신을 투여해 유도분만을 시행하는 게 적합하다고 판단했더라도 의료진은 환자에게 먼저 옥시토신 투여의 필요성과 부작용 등을 설명하고 옥시토신에 의한 유도분만 혹은 제왕절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며 "진료기록에 따르면 유도분만 시행 전 원고에게 이런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앞서 대법원은 2010년 6월 24일 "제왕절개술을 실시할 상황이 아니라면 질식분만(자연 분만)이 가장 자연스럽고 원칙적인 분만방법이므로 의사가 산모에게 질식분만을 실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의무를 위반해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는 판례를 내놓은 바 있다.

즉 질식분만 시 산모 또는 태아의 생명·신체 등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개연성이 있어 제왕절개수술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의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산모가 제왕절개수술을 받을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기 위해 질식분만을 실시할 경우 예상되는 위험, 대체적인 분만방법으로 제왕절개수술이 있다는 점 및 제왕절개수술을 실시할 경우 예상되는 위험 등을 설명할 의무가 있다. 

다만 제왕절개술을 실시할 상황이 아니라면 질식분만이 가장 자연스럽고 원칙적인 분만방법이므로 의사가 산모에게 질식분만을 실시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 등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해서 설명의무를 위반해 산모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는 없다는 해석이다.

이러한 대법원 판례에도 불구하고 고등법원이 해당 사건에서 자연분만 시 투여하는 옥시토신에 대한 설명의무 위반을 이유로 의료인에게 배상책임을 물은 것을 놓고 의료계의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산부인과의사들 "의사에게는 의료행위에 대한 결정 권한 있어…설명하다 골든타임 놓칠 것"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는 "해당 사건에서 옥시토신 사용은 위험한 상황이 아니었으므로 정상적인 질식분만의 과정에서 산과전문의의 객관적 소신에 의한 진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궁극적으로 이런 판결은 결국 분만시 사용되는 모든 행위, 수액부터 각종 항생제와 무통주사, 약 용법, 용량, 증량 방법, 설명서에 기재된 부작용을 일일이 설명 후 환자가 스스로 유도분만과 제왕절개 중 적합한 것을 선택하게 해야한다는 이야기인 듯하다"고 지적했다.

의사회는 "이는 실무상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며, 시간적으로도 비현실적이고 진료에 차질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이 경각에 놓인 초응급상황에서 법적 다툼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주의 의무와 설명 의무를 다하려다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것을, 과연 환자와 보호자가 원할지 의문이다"라고 비판했다.

의사회는 "최근 의료사고와 관련한 일련의 판결이 의료인에게 모든 법적 책임을 전가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의라 함은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 어느 정도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환자 동의 없이도 결정할 수 있다는 권한을 가진 것이다"라며 "의사가 모든 의료행위에 있어 예상되는 결과를 완벽하게 예측하고, 그 이면에 존재할 가능성을 하나도 빠짐없이 파악하며 설명하고 통제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무분별한 의료인에 대한 검찰 입건 및 기소는 필수의료 인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고, 결국 이런 통제 위주의 법적 판결은 위험성이 있는 질식 분만 등을 기피하도록 하는 방어진료를 부추겨 결국 국민의 건강과 생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라며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은 그 분야에 몸담고 있는 의료인이 소신 진료를 할 수 있게 법적으로 보장하고 의사 결정과정의 의사로서의 재량권과 전문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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