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18.12.30 05:16최종 업데이트 18.12.30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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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한 해를 정리하며…응급의학과 전공의를 선택한 이유

[칼럼] 여한솔 대한전공의협의회 부회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새벽 3시, 잠시 비워진 응급실 화이트 베드를 보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해 몇 마디 적는다.

내가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때는 스무 살 때부터다. 학창 시절 때에는 그렇게 보라고 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도서관의 수많은 책이 스무 살 청년에게 무한한 지적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날마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신문 기사에 눈을 돌려 그때부터 언론 기사를 정독하는 습관이 생겼다. 정치 경제 사회의 전반적인 현안들에 대해 관심을 끌었고 이 중에서도 의료계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사회 부문에 더욱 관심이 생겼다.

그런 나에게 의료계 현안들에 대해 불을 지펴주셨던 것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개원의로 일하시며 의료계의 불합리한 점들을 이따금 말씀해주셨다. 의사가 의사답게 환자를 보지 못하는 수많은 제약과 비정상적인 제도들을 듣고 홀로 고민했다. 의료계 문제들을 고민하면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이를 정리하기 위해 내 나름의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도 이 때부터였다. 당장 다가오는 본과시험을 잘 쳐야겠다고 걱정하는 시간보다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며 사는 게 더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무사히 의대를 졸업하고 천국만 같았던 공보의 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지옥 같은 인턴 생활을 하는 중에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제한된 인턴 수준의 술기와 끊임없이 반복되는 행정업무로 인턴 생활에 무기력감을 느낄 때, '응급실 근무'는 인턴 시간을 그저 그렇게 보내는 개념이 아닌 '무언가를 배운다'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문제가 있는 환자를 평가하기 위해 문진과 신체 진찰 이후, 적절한 검사와 처방을 통해 환자의 증상에 대한 향후 치료계획을 세우고 적재적소 환자의 정밀한 치료가 필요한 진료과로의 인계까지 거쳤다, 신호등이 마비된 8차선 사거리에서 얽혀있는 차들을 빠르게 정리해 보내주는 교통경찰 같은 역할이 나에겐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일차적으로는 다양한 증상의 환자를 경험하는 임상에 대한 즐거움이 있는가 하면, 전문의를 취득한 이후의 삶을 고려했을 때도 응급의학과는 꽤 매력적이다.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서 가장 큰 문제를 딱 두 개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의료인의 행위가 평가절하되는 만성적 저수가'와 '의료전달체계의 붕괴'를 꼽는다. 

앞서 언급한 의료정책에 대한 고민과 글쓰기를 위한 가장 적합한 진료과가 어디일까. 왜곡된 의료시스템이 깊숙이 정착된 열악한 의료현장을 몸소 경험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일까 고민하면 몇 가지 떠오르는 곳 중 한 곳이 응급실이었다. 일할 때는 경황이 없어 이런 생각할 틈이 없겠지만,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기에는 바이탈(vital)을 다루며 여러 진료과가 함께 분주하게 움직이는 응급실 현장으로 충분할 것 같다. 그렇기에 더더욱 응급의학과는 나에게 매력적인 과였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겪을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응급실 현장은 주취자가 의료진에게 쏟는 폭언으로 이미 얼룩져버렸고, 의료진에게 향한 주먹과 칼부림의 위협은 항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이 길을 이미 경험했던 선배 의사들과 부모님은 이러한 결정을 한 나를 한사코 말렸다. '밤을 꼬박 새워가며 진료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느냐' '환자 보호자에게 너도 험한 꼴 당할 수 있다' '너도 까딱 잘못하면 너의 의지와 상관없이 소송 걸려서 밤잠 못 이루며 고생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이미 원서를 내버리며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을 지날 각오를 다지고 말았다. 운명이라 생각하며 의연히 어려운 한 걸음을 내딛겠다.

'세상엔 왜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을까'라며 쓸데없는 생각 하는 와중에도 119 사이렌 소리가 들리고 카트에는 질병으로 신음하는 환자들은 쏟아진다. 모두에게 부끄럽지 않은 실력을 갖추기 위해 수많은 선배 의사들이 닦아놓은 의업의 길을 감사히 걸을 응급의학과 전공의 생활을 이어갈 한해를 기대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의료정책의 부조리함에 대해 지치지 않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다가올 새해를 기도하며 준비하련다.

마지막 모두에게 꼭 해 드리고 싶었던 한마디와 함께 글을 마친다. 다 같이 고생했던 한해 이 정도 한마디는 밤잠 함께 설친 의료인 동료들에게 할 수 있지 않나…

"어려운 의료계 시국에도 괘념치 않고 환자들을 위한 치료에 여념 없었던 의사, 간호사 동료 선생님들 2018년 한해에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가올 새해에도 여전히 힘들겠지만, 그래도 다 같이 함께 힘냅시다. 모두 건강히 지냅시다. 화이팅!"

메디게이트뉴스 (news@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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