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3.11.15 06:20최종 업데이트 23.11.1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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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묻따 삭감' 해결하고자 직접 심평원 심사위원된 의사…'심사실명제' 대통령실 청원까지

[인터뷰] 강원대병원 심장내과 이봉기 교수, 심사 통보서에 실명 밝히고 연락처까지 썼지만 심평원에 의해 저지

"심사 받는 의사 보호 위해 책임감 있는 심사 시스템 구축돼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조운 기자] 최선을 다해 환자 진료 나서는 의사들을 허탈하게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요양급여비용 삭감 통보다.

강원대병원 심장내과 이봉기 교수는 심평원의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 않는(아묻따) 식'의 삭감 관행을 해소하고자 직접 심평원의 심사위원으로 분해 근본적인 대책으로 실효성을 갖춘 '심사실명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섰다.

최근에는 대통령실에 심사위원 심사실명제를 요구하는 민원까지 넣었다는 이 교수는 심평원에서 행해지는 깜깜이 심사로 인해 실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라고 지적했다.
 
강원대병원 심장내과 이봉기 교수

실명 숨긴 심사위원, 천편일률적 삭감에 의사들 피해…심평원은 "심사위원 보호 위해 불가피"

우리나라는 '심평의학'이라는 왜곡된 형태의 의료문화가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다. '심평의학'은 의학적 원리에 따른 진료보다 심평원의 급여기준에 맞춰 환자를 치료하게 되는 관행을 의미한다. 

물론 의료보험 급여 항목 심사는 심평원이 해당분야의 의사를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삭감이 자주 이뤄지고 있다.

의료계는 오래전부터 심평원의 무차별 삭감을 막기 위해 '심사위원 심사실명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심사위원의 실명이 공개되지 않다 보니 본인의 심사에 책임감이 떨어져 천편일률적으로 삭감을 내는 사례가 있고, 삭감된 이유를 알고 싶어도 심사위원이 누군지 모르니 이를 듣기 어려운 제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심사실명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의료계의 문제 제기는 국회로도 전달됐다. 심평원도 삭감을 결정한 심사위원의 이름이 공개면 심사위원도 책임감을 갖고 심사가 가능하고 의료계와의 신뢰감도 형성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 2018년 10월 1일부터 '요양급여비용 심사결과통보서' 서식에 담당부와 심사위원 실명을 추가해 이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시행된 심사실명제는 과별·지원별 20여 명의 상근심사위원 중 각 분야 대표위원 성명을 기재하는 수준으로, 사실상 실제 심사를 한 위원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고 있어 책임성이 떨어지는 심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가 시행된 지 5년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깜깜이 심사'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봉기 교수는 "현장에서 해당 분야에 대한 충분한 경험을 갖고 전문성이 있는 사람이 보기에는 전혀 삭감할 부분이 아닌데 이해도가 떨어지거나 경험이 부족한 위원들이 심사를 보는 경우 이해할 수 없는 삭감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심사위원도 의사지만 본인이 주로 하는 분야가 아닌 이상 정확하게 해당 시술에 대해 이해하기는 힘든 경우가 많아 전후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무조건 삭감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삭감 이유조차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는 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성에 가려져 있다보니 책임감이 부족한 일부 심사위원들이 매뉴얼에 맞춰 천편일률적으로 심사를 해 현장에서 보기에는 '날림'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심사를 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불성실한 심사에 대해서는 피심사자의 이의제기가 가능하다. 하지만 2차 심사를 재기하기 위해서는 서류 작업이 필요한데, 6개월 이상 지난 과거 의무기록과 영상자료를 다시 복기하는 등 불필요한 행정업무를 부담해야 한다. 이러한 지지부진한 과정은 의사들로 하여금 정부 업무에 대한 불신과 혐오를 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의료계는 실제 심사를 한 심사위원의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심평원 측은 심사위원 보호를 위해 부득이 실명 공개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이 교수는 "삭감통지를 받으면 심평원 담당자를 수배해 담당 섹터 심평원지원에 연락해 따지는데, 당연히 직원은 그 내용을 알 수 없다보니 심사위원에게 직접 문의하고 싶다고 해도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며 "심사위원이 노출되면 너무나 많은 민원에 시달리기 때문에 보호하는 차원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심사를 받는 현장의 의사들은 보호받을 필요가 없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적어도 누군가의 시술을 평가하려면 그 분야에 인정할 만한 전문가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삭감 업무의 중대성을 고려할 때 심사위원은 책임감을 갖고 업무를 행해야 하며 그러한 차원에서 실명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접 심평원 들어가 이름, 연락처 공개했지만 삭제 당해…"책임감 있는 심사하려면 실명 밝혀야"

이 교수는 이러한 문제를 직접 해결해보고자 직접 심평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다. 이 교수는 심사위원으로 자원했고 결국 올해 심평원 지원의 '비상근심사위원'으로 임명됐다.

그는 "심사를 하면서 추가로 사용된 이유가 납득되지 않은 사례도 분명 있었다. 이럴 때는 삭감을 할 수밖에 없는 사유를 통지서에 최대한으로 성의를 담아 설명했다. 특히 작정하고 심평원에 들어간 만큼 내 이름을 밝히고 심사를 하고 싶었고, 심평원 지원에도 내 이름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실제로 삭감 통지서에 내 이름과 연락처까지 모두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심평원은 이 교수의 실명과 연락처를 모두 지웠고 실명 공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실명을 공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물어보니 심사위원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내가 괜찮다는 데도 다른 심사위원들을 위해 불가피하 하다고 한다. 숨어서 함부로 심사하는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 실명 공개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어 "시스템에서 못하는 것을 개인의 노력으로라도 보완해 보고자 노력했지만 벽에 부딪혔다. 심평원 내규에도 심사자가 자원해 실명을 밝히는 것을 금지하는 바는 없는 것으로 확인했으나 실명 공개는 지속적으로 거부당하고 있다. 이에 대통령실에 청원을 넣는 방법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청원서에 "성실히 부끄러움 없는 심사임무를 수행중인 선의의 심사자의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저로서는 자원해 자신을 밝히고 같은 전문가 동료인 피심사자들과 발전적인 소통을 하며 조국의 의료를 개선해 나가고자 하는 노력을 하고 있으나 행정편의 목적 이외로는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로 부당하게 저지 당하고 있다고 판단해 이렇게 청원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청원서에 궁극적으로 모든 심사자들이 성실히 양질의 심사에 임할 수 있도록 심사실명제가 시행되기를 간청했다. 또 심사실명제의 전격 실시 이전이라도 선의의 심사자들이 자원하는 경우 심사자의 실명을 마음껏 밝힐 수 있도록 길을 터줄 것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그의 심평원 비상근심사위원 임기는 2년으로, 내년이 마지막이다.

이 교수는 "임기가 끝나면 아마도 심사위원을 지속하기는 힘들 것 같다"고 웃으며 "개인의 노력으로라도 해당 문제가 반드시 해결되길 바란다. 심사실명제를 통해 일부 심사위원들이 방만하고 불성실하게 심사하는 관행이 반드시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고 재차 강조했다.

조운 기자 (wjo@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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