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2.08.05 12:12최종 업데이트 22.08.0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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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송주한 교수와 아산병원 간호사의 부고가 전해준 '경고장'

살얼음 위 필수중증 의료체계...더 이상은 의료진의 '희생'에 기댄 운영은 안 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지난달 말 두 명의 의료진이 세상을 떠났다. 한 명은 세브란스병원에서 중환자를 전담하던 송주한 교수였고, 또 한 명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였다. 송 교수는 4년 전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진 뒤 지난달 27일 운명을 달리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는 근무 중이던 지난달 24일 뇌출혈이 발생했고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에 들려온 두 의료진의 부고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의료계의 해묵은 문제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주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의료체계, 특히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필수중증 의료체계가 의료진의 희생 덕분에 지탱돼 왔다는 사실을 말이다.
 
고(故) 송 교수는 생전에 밤낮없이 중환자들을 곁을 지키며 동료 선후배들의 존경을 받던 의사였다. 하지만 맘 편히 눈을 붙이는 날이 많지 않았던 그는 자신의 몸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의 사망 사건으로 밝혀진 국내 뇌혈관외과 의사들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해당 분야를 선택하는 후학들이 줄어들면서 적지 않은 나이의 교수진들이 고강도의 근무와 당직을 이어왔고, 그나마 버티던 교수들 중 개원가로 떠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무엇이 필수중증 분야 의사의 부족과 그로 인한 과로를 일상으로 만든걸까. 의사들도 사람이다. 위험한 상황과 자주 대면해야 하고, 근무 강도도 높은 진료과들을 피하게 됐다. 통상 그런 진료과들은 저수가로 수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탓에 병원도 해당과 의사의 채용을 꺼렸다.
 
몸만 축 나고 일자리가 없어 미래도 불투명한 분야에 지원하는 의사가 있을리 만무하다. 자연스레 인력이 줄었고, 근무 환경이 더욱 열악해지며 다음해 지원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래도 정부와 국회는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했다. 의료계의 요구대로 수가를 올려주는 일은 당장 여론과 표에 도움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따금 지친 의사들이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만큼만 숨통을 틔워 줄 뿐이었다.
 
병원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수익이 안 되니 어쩔 수 없다며 의사들의 과로를 방치했다. 실려 온 외상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사투를 벌여야 했던 이국종 교수가 그랬듯, 돈도 못 벌고 동료 의료진들 고생만 시키는 과의 의사들은 환자를 살리고도 병원의 눈치를 봐야했다.

결국 정부∙국회의 무관심과 병원의 방치 속에 몸과 마음이 갈려나가는 것은 의사들이었다.
 
사실 필수중증의료 분야에서 경고음은 오래 전부터 울려왔다. 소아청소년과는 전공의 지원율이 지속적으로 추락하며 이미 응급진료 인프라 붕괴가 진행 중이고, 신생아를 받아왔던 산부인과는 줄지어 폐업하고 있다. 외과, 내과 등의 상황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필수중증의료가 살얼음 위에 놓여있다는 의사들의 목소리는 배부른 소리 취급을 받아왔다. 누군가가 죽어나가는 사건이 있을 때만 잠시 언론과 정치권의 주목을 받을 뿐 이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또 언제 그랬냐는듯 의료진의 희생 위에 간신히 지탱돼 온 살얼음 위를 무심히 오가고 있다. '쩍, 쩍'하고 여기저기서 금 가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이런 상황을 개선해야 할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은 굼뜨다. 이대로는 모두가 차가운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아버릴 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오히려 일각에선 의대 정원 증원 카드를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전가의 보도’라도 되는 마냥 휘두르고 있다. 단순히 의사 인력만 늘려봤자 수가 인상 없이는 병원들이 기피과 의사들을 채용하지 않을 거란 의사들의 주장은 밥그릇 챙기기로 치부돼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보’같은 의사들은 오늘도 개인적 삶을 포기하고 부나방처럼 환자들 곁으로 뛰어들고 있다. 그리고 그들 덕분에 매일같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우리의 가족과 친구와 이웃들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의 희생에 기대 필수중증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에 전해져 온 두 의료진의 부고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경고장'이다. 지쳐 쓰러진 의료진에 국민들이 힘을 실어주고 정부와 국회도 팔을 걷고 지원에 나서야 한다. 

의사들이 자신의 삶과 자부심이 붕괴되지 않고서도 환자들을 맘껏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 그리하여 고 송주한 교수와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과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게 의료진은 물론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길이다.

오늘도 모든 의료진이, 그들이 살려내려 애쓴 환자들이, 무사히 하루를 넘기고 사랑하는 이들 곁으로 돌아갈 수 있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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