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시간 24.01.09 04:31최종 업데이트 24.01.0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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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 의사 못 믿어 '잘하는' 서울로…무시받는 지역의료 현실

강릉 응급실 폭행 사건∙이재명 대표 서울대병원 전원, 지역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 보여줘

사진=챗GPT가 그려준 서울대병원으로 쏠리는 환자들. 

[메디게이트뉴스 박민식 기자] 최근 의료계를 분노케 한 강릉 응급실 폭행 사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서울대병원 전원 등의 기저에는 공통적으로 지역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료계는 지역의료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신설 등은 물론 어떤 정책도 효과를 내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한다.
 
9일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6일 새벽 강원도 강릉 소재 한 병원에서 낙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의 보호자가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폭행과 욕설을 하는 일이 발생했다.
 
두부외상에 대한 평가가 필요해 CT 촬영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환자 보호자는 “촌놈 의사가 말투가 건방지다” “촌 병원에서 무슨 검사를 하느냐”며 욕설과 함께 주먹을 휘두른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병원이 지방에 위치한 병원이란 이유만으로 의사를 무시하며 폭력을 행사한 셈이다.

"촌 병원에서 무슨 CT 검사 하나" "수술은 잘하는 곳에서 해야"
 
이에 앞서 피습을 당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부산대병원에서 서울대병원으로 헬기로 전원한 것에 대해서도 지역의료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지적이 쏟아졌다.
 
특히 같은 당 정청래 의원이 “목은 민감한 부분이라 후유증을 고려해 (수술을) 잘하는 곳에서 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부산시의사회는 “의료기관을 서열화하고 지방과 수도권을 갈라치기 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에 대해 의료계는 지역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 깊이 자리하고 있단 방증이라고 분석한다. 분야별로 수도권 병원들에 못지않거나 더 뛰어난 실력과 인프라를 갖춘 지방병원들이 있음에도 현실에서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려간다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가 수술을 거부했던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의 경우 국내 최초의 독립형 외상센터로 전담 전문의가 17명이고, 병상수는 124개에 달한다.
 
규모 뿐 아니라 실력도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수준이다. 국내 예방가능 외상 사망률이 2010년 35%에서 최근 10%까지 떨어졌는데, 부산대병원은 해당 수치를 지난 2022년에 일찌감치 6%까지 낮췄다. 당초 정부는 2025년까지 10%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부산대병원은 목표를 초과 달성한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의 서울대병원 전원과 정청래 의원의 발언으로 이런 사실들이 모두 무색해졌다. 의료계는 이번 사건이 부산대병원을 비롯한 지방 병원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도 부정적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환자 없는 '지방', 의사들도 꺼리는 악순환…지역의사제∙공공의대는 해답 안 돼
 
문제는 지방의 일선 의료현장에서는 이 같은 일들이 부지기수로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방 소재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유방외과 A 교수는 지난해 10월, 유방암 진단을 받고 병원을 찾아왔던 환자와의 일화를 SNS에 올렸다.
 
A 교수는 암 진단을 받고 놀랐을 환자를 걱정하며 현재 상태부터 진행 정도 예상, 검사 이유, 치료 방법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환자에게서 돌아온 답은 “암은 서울 가야 한다던데 검사만 좀 빨리하면 안 될까요”였다. A 교수는 유방암의 표준치료 확립으로 치료경과와 예후가 전국적으로 동일하다고 설득해 봤지만 환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A 교수는 “치료의 선택은 환자의 자유니 잘 가시라고 할 수밖에 없었지만 씁쓸했다”며 “그래도 ‘서울에 어느 병원, 어느 교수님한테 가면 돼요’라고 묻는 환자도 있었으니 이 환자는 평범한 편이라고 위안한다. 날 믿고 우리 병원을 믿고 치료받는 분께 잘하자”라고 했다.
 
의료계는 지역주민들의 지방병원 기피가 지역의 의사 구인난으로 이어지며 악순환을 불러오고 있다고 했다. 의사 입장에서도 환자가 떠나는 데다 자부심을 갖기 힘든 지방 근무를 피하고, 의사 부족은 재차 환자들의 서울 병원 선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속초의료원 응급의학과 여한솔 과장은 “속초에서 일하면서 환자나 보호자들로부터 무시하는 듯한 말을 많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넘겨 왔다”면서도 “국민들의 지역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의료진들이 지방 근무를 꺼리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승자박인 셈”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지역의료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지역의사제∙공공의대 신설 등의 정책만으로는 지역의료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의료계의 반대에도 지역의사제∙공공의대를 밀어붙이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국민들 사이에 지역의료를 열등하게 보고 서울의 빅5병원에 가는 게 당연하다는 정서가 만연해 있다면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 지역의대 신설 등은 아무런 효과가 없을 것”이라며 “유력 정치인도 헬기를 타고 서울대병원으로 가버리는 현실에서 지방의료를 살리겠다는 어떤 정치적 공약도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라고 했다.

박민식 기자 (mspark@medigat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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